삶을 단식하는 시간
나는 해외에 살고 있어.
여기 사람들은 거의 다 외지인들이고, 방학이 되면 각자 자기 나라로 돌아가.
여름방학은 길어서 보통 두 달 이상 머무는데, 나는 딱 4주만 한국에 머물러.
애가 셋이라, 예전엔 혼자 애 셋 데리고 다닐 엄두가 안 났어. 결국 남편 일정에 맞추느라 그랬지.
이곳에서 한 달 넘게 아이들과 방학을 보낸다는 건… 음, 그냥 극강의 심심함과 마주 선다는 거야.
정확히는, 그 심심함에게 항복하는 거지. 갈 곳도 만날 사람들도 전혀 없어.
처음엔 너무 답답해서 “여기서 더는 못 살겠다” 싶어 도시로 도망갈 생각도 했어.
실제로 집도 보러 다녔어.
그런데 실행은 못 했고, 시간은 흘러서 벌써 세 번째 여름방학이 됐어.
이번에 한국에서 4주를 보내고 돌아올 때, 이상하게 기대가 됐어.
‘또 얼마나 심심할까?’
‘우리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게 될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마치 단식하는 것 같아.
평소엔 맛있는 거, 먹고 싶은 거 마음껏 먹다가도 가끔 몸을 비워주듯,
이 시간은 나에게 쌓인 자극과 습관들을 비워내는 단식 같아.
몸과 마음이 허전해지는데, 그 허전함 속에서 오히려 나를 다시 만나게 돼.
요즘 우리는 축구를 하고, 기안 84처럼 카레를 손으로 먹어보고, 간식도 만들어 먹어.
바나나를 으깨서 땅콩버터랑 계란 풀어 베이킹파우더랑 섞은 다음 구었는데 영상처럼 부풀지 않고 푹 꺼진 빵을 보면서
그래도 맛은 괜찮다면서 깔깔대는 먹는 모습, 이게 뭐라고 또 행복하다고 웃는다.
‘내 선택에 이유를 붙일 필요가 없다.’
뭘 하는 데에 이유가 필요 없다는 것, 여기에서 자유가 느껴지더라고.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항상 느긋하거나 멋진 건 아니야.
어떤 날은 너무 심심해서 짜증이 나고, 어떤 날은 그 심심함 속에서 뭔가를 발견할 것 같기도 해.
또 어떤 날은 낮잠을 오래 자고 일어나서는 ‘내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현타가 오는 순간도 있어.
그렇게 하루하루 흘러가다 보면, 어쩌면 나는 조금씩 나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어.
그냥 지금은 심심함이라는 아직은 낯선 친구랑 어색하게 같이 있는 중이야.
작년보다 조금 더 친해진 걸 보면 아마 내년에는 더 친해지겠지?
혹시 너는, 마지막으로 정말 심심했던 순간이 언제였어?
그 심심함 속에서 너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을까?
편안했어?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어?
나랑 같이, 그 심심함 속에 조금 더 앉아 있어 볼래?
몸부림치다가 어느 순간 ‘이게 자유였나.’ 느끼게 되는 순간,
그 순간을 같이 얘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