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자매가 우애 좋게 잘 지내는 게 부모로서 얼마나 행복한지 아니? ” 무슨 말인지 나도 안다. 나도 우리 딸들이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 좋다. 흐뭇하다. 그런데 내 엄마가 혹은 시어머니가 그런 얘기를 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형제자매끼리 안 친할 수도 있는 거지, 사이가 안 좋으면 죄책감을 느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효도라는 단어도 비슷하다. 어쩐지 “해야만 한다”는 뉘앙스를 풍기지. 영어에는 효도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다. “Be good to your parents(부모님께 잘해라)” 정도 혹은 “Love and respect your parents” , 사랑을 의무로 규정하는 독립적인 단어는 없다. 그들에게 부모–자식 관계는 그냥 사랑의 연장선이지, ‘의무’의 의미를 품은 단어로 굳이 포장하지 않는다.
요즘도 가르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초등학교 때 배운 삼강오륜은 더 가관이다.
임금–신하, 아버지–자식, 남편–아내. 모두 위계와 의무의 언어다.
그 안에서 “효”는 사랑이라기보다 질서다. 장유유서라는 말도 마음에 안 든다. 유장유서는 안돼? 그냥 먼저 태어난 사람, 먼저 권력을 잡은 사람이 본인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장치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효도를 무겁게 느끼지 않을 것이다. 사랑과 의무를 구분하지 않고, “사랑하면 당연히 하는 거지, 그게 효도지 뭐. ”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아마 그런 사람들은 자기 안의 사랑이 충분히 커서 그 의무가 억지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나도 그렇게 사랑이 흘러넘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내가 느끼기엔 내 안 깊숙한 곳 어딘가에도 사랑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많은 의무들이 그 사랑을 가로막고 있다고 느낀다. 나는 이 질서와 의무에 동의한 적이 없으므로 이런 것들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입시켜 놓은 것에 대해 저항하고 싶다. 화가 난다.
나는 자유롭게 흘러가는 사랑을 원한다. 누군가의 뿌듯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랑거리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내가 사랑하고 싶어서 하는 사랑.
사랑은 강요할 수 없으니까. 의무로 포장되지 않아도, 있으면 자연스럽게 드러나니까. 덜 사랑한다고 해서 죄책감을 품을 이유가 없으니까.
나도 효도하기 싫다. 그냥 사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