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혼자 도서관에 가려고 집을 나섰는데, 옆에 둘째와 셋째가 덜컥 같이 타버렸다.
“엄마 혼자 가고 싶단 말이야. 이럴 거면 나도 안 가! ”
나는 다시 5층 버튼을 눌렀다.
집으로 들어가려고 번호키를 눌렀는데, 이상했다.
문이 열리지 않았다. 문 위쪽에 낯선 노란 오리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우리 집이 아니다.
호수를 보니 4층이었다.
계단을 올랐다. 분명 5층인데 이번에도 우리 집이 아니다.
집이 사라졌다. 아이들도 사라졌다.
나는 집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계단은 점점 더 거대해졌고 큰 창 밖으로 수박맛 초코파이 상자들이 탑처럼 쌓여있는 것이 보였다. 그때 알았다.
이거 꿈이구나.
꿈이라면, 깨어나야 했다.
그런데 깨어지지 않았다.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집을 계속 찾고 있었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여러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회의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보였다. 어느새 지하처럼 느껴지는 바 안에 들어와 있었다. 중앙에 원형 테이블, 그 주위로 사람들이 빙 둘러앉아 있었다. 그 주변을 돌다가 엄마와 아빠를 보았다. 나는 그 앞에 앉아 손을 뻗었다. 엄마가 내밀어주는 손을 잡으려 했는데, 그 순간 두 사람이 사라졌다. 절망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두려움이 느껴졌다.
“이건 꿈이다. 깨어야 한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깨어나지 않았다.
여기에 영원히 갇힌 걸까?
나는 죽은 건가? 어디에 쓰러져있는 건가? 식물인간처럼, 의식만 남아 이렇게 꿈속을 떠도는 건가? 대체 언제까지?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꿈속에서라도 소리를 내면 현실의 누군가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끙끙대는 소리라도 낼 수 있다면 누군가 나를 깨워주지 않을까.
목이 아팠다. 정말로 소리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책장이 흔들리고 책이 쏟아졌다. 벽이 갈라졌다. 내가 지나가던 사람을 가방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깨어나 보려는 몸부림이었다. 그도 나를 때렸다. 뒤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나를 붙잡았다.
더는 못 견디겠다. 깨어나고 싶었다. 그런데 안 됐다.
언제까지 여기에 갇혀 있어야 하는 걸까.
언제 끝낼 수 있는 꿈일지 몰라 무섭고 절망스러웠다.
차라리 꿈인 지 모르고 헤매고 있는 거라면 좀 나을까?
그 순간,
두 눈꺼풀이 열렸다.
막내 얼굴이 보였다. 바로 내 앞에서 자고 있었다.
나는 돌아왔다. 그렇게 꿈에서 깨어났다.
⸻
그토록 발버둥 쳤지만, 깨어남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특별한 해법도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눈을 뜨는 일이었다.
쉬우면서도, 그토록 어려웠던 일.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보인 건, 먼 해답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진실, 내 아이였다.
내가 보아야 할 삶은 이미 여기 내 옆에 있었다.
내가 요즘 톨레의 책을 필사하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쩌다 꾼 꿈을 톨레의 말로 해석하게 된 걸까?
시간이 날 때마다 한 줄 한 줄 옮겨 적으며 “지금 여기”를 연습한다.
만약 그 책을 필사하지 않았다면, 이건 그냥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가위눌림이었을 것이다.
삶도 꿈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늘 깨어 있지 않으면 꿈꾸듯 살아간다.
그 고통과 방황을 끝내는 길은 더 많은 몸부림이 아닐지도 모른다.
더 나은 곳을 찾아 헤매고, 소리치고, 절망하고 다시 일어나고 욕망하지만 그건 답이 아닐 수도 있다.
꿈속 절망은 눈을 뜨는 순간 사라졌다.
삶도 마찬가지다.
그저 눈을 뜨고 ‘지금 여기’를 보는 것.
그게 다일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