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Netflix)라는 기업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모두들 알다시피 넷플릭스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집콕으로 각종 콘텐츠를 즐기는 삶이 더욱 심화되면서, 넷플릭스에 대한 사람들의 인지도는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여기다 조금 더 확장을 하면 넷플릭스라는 기업이 이른바 FAANG(Facebook, Apple, Amazon, Netflix, Google)이라 불리는 미국의 대표적인 IT 선도 기업 중 하나라는 것까지도 아마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넷플릭스라는 기업이 굉장히 독특한 기업문화와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넷플릭스의 CEO 리드 헤이스팅스와 인시아드(INSEAD)의 교수인 에린 마이어가 쓴 [규칙 없음]에서 넷플릭스의 독특하고도 놀라운 모습을 살펴보자.
책의 제목처럼 넷플릭스에는 규칙이 없다. 휴가 규정이 없고(기간 제한도 없고 승인받을 필요도 없다), 출장 및 경비 승인도 없다(출장 비용이나 경비는 직원이 알아서 사용한다). 그리고 어떤 의사결정도 상사에게 승인받을 필요가 없다. 조금 길지만 책에 언급된 사례를 한번 살펴보자.
파올로 로렌초니는 넷플릭스에 암스테르담 지사로 옮기기 전까지 이탈리아의 스카이에서 일했던 마케팅 전문가다. 그는 이 문제를 옛 직장과 새 직장을 비교하면서 다음처럼 설명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왕좌의 게임>을 스카이에서 독점 배급했습니다. 스카이에 근무할 당시 저의 상사는 제게 <왕좌의 게임>을 효과적으로 홍보할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라고 했어요. 저는 꽤 괜찮아 보이는 아이디어를 하나 떠올렸죠....(중략)... 저는 여러 사람에게 이 광고 아이디어를 들려줬어요. 모두 마음에 들어했죠. 하지만 스카이에서는 무슨 일이든 CEO의 승인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CEO는 이 카피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CEO가 제 아이디어를 퇴짜 놓는 데는 3분 30초밖에 걸리지 않았어요.
...(중략)...
파올로는 이탈리아 지역의 판촉을 위해 넷플릭스에 고용되었다. 넷플릭스에서 인기 좋은 오리지널 <나르코스>는 콜롬비아의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이야기로, 파올로는 처음부터 이 시리즈의 히트를 확신했다....(중략)... 파올로는 무엇보다 그의 새로운 상사이자 마케팅 부사장으로, 싱가포르에 사는 미국인 제럿 웨스트가 그 아이디어를 동의해 줄지 걱정됐다. 경영진의 승인을 끌어낼 수 있을까?
제럿은 암스테르담으로 올 예정이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이 안건을 놓고 몇 주째 이리저리 재고 있었어요. 그가 허락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수포가 될 판이었죠.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전 밤이고 낮이고 그를 설득할 수 있는 말과 문구를 죄다 동원했습니다. 목요일 정오에 그렇게 고치고 또 고쳐 쓴 이메일을 제럿에게 보냈어요. '보내기' 버튼을 누르기 전에, 저는 모니터를 보고 속삭였어요. "제발 승인이 나야 해!"
그날 미팅을 하는데, 너무 초조해서 손이 자꾸 떨리더군요. 이를 감추기 위해서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죠. 그러나 제럿은 회의 내내 인원 보충 문제에 관해서만 이야기했어요. 더는 듣고 있을 수 없었어요. 심호흡을 한번 하고서 불쑥 끼어들었죠. "팀장님, 제가 말씀드린 <나르코스>에 관해서는 언제 의논하나요?"
파올로는 제럿의 입에서 나온 말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뭐 더 논의할 게 있어요? 파올로, 그건 당신이 결정할 일입니다. 내가 뭐 도와줄 일이 있나요?" 순간 벼락에 맞은 기분이더군요. 됐다! 넷플릭스에서는 자신이 내린 결정의 모든 맥락을 공개하는 순간, 기초공사가 끝납니다. 승인은 필요 없어요. 당신에게 달렸죠. 당신의 결정.
-리드 헤이스팅스&에린 마이어, 2020, [규칙 없음]
일반적인 기업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막대한 예산이 드는 중대한 일을 실행하는 데 상사의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다니. 그런데 넷플릭스는 그렇게 돌아간다. 그런데도 이 회사는 이른바 잘 나간다. 2019년 기준 매출액은 200억 달러를 넘고 순이익도 18억 달러에 달한다. 그뿐인가 2002년 나스닥 상장 당시 1달러였던 주가는 지금 500달러 수준에 이르고 있다. 기존 기업 운영의 공식을 파괴했음에도 이렇게나 잘 나가다니. 아니 정확히는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할까?
넷플릭스의 이런 '규칙 없음'이라는 기업문화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능력 있는 직원들을 최대한 확보하고 유지하면서 그들이 피드백을 많이 할 수 있는 솔직한 문화를 만들고 강화하며 직원에 대한 대부분의 통제를 없애는 것.
넷플릭스가 이러한 기업문화를 구축하게 된 계기(?)는 사실 CEO인 리드 헤이스팅스의 정리해고 경험에서 시작한다. 넷플릭스 이전 한 회사의 CEO였던 리드는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2001년 직원의 3분의 1을 해고해야 했다. 리드가 해고를 하면서 걱정했던 부분은 이른바 '잔류 인원'의 불만이었다. 위기인 재정 상황, 늘어난 업무량, 떨어진 사기, 그의 표현대로라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라는 걱정은 당연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몇 주가 지나자 회사 분위기는 거짓말처럼 좋아졌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책의 표현을 빌자면 직원들이 마치 사랑에 빠져 물불 가리지 않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리드는 이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중에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팀에 평범한 사람이 1~2명 섞여 있으면 팀 전체의 성과가 떨어진다. 탁월한 인재 5명과 평범한 사람 2명이 함께 있으면 그 팀은 평범한 팀이 된다. 왜일까?
- 매니저의 기운을 빼 최고의 성과를 내지 못하게 만든다.
- 그룹 토의의 질을 떨어뜨려 팀의 전반적인 IQ를 낮춘다.
- 사람들이 싫어할 일을 하게 만들어 능률을 떨어뜨린다.
- 남보다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싶은 직원을 회사에서 나가게 만든다.
- 평범한 사람도 받아준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재능이 뛰어난 베스트 플레이어들이 생각하는 좋은 직장의 조건은 호화스러운 사무실이나 멋진 체육관, 혹은 공짜 스시 같은 게 아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재능 있고 협동심이 강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즐거움이다.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모든 직원이 뛰어나면 서로에게 배우고 서로가 의욕을 불어넣어 성과는 수직으로 상승한다.
-리드 헤이스팅스&에린 마이어, 2020, [규칙 없음]
능력 있는 사람들로 조직이 구성되어 있다고 반드시 출중한 성과가 나는 것은 아니다.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능력 있는 사람들의 솔직한 피드백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은 솔직한 피드백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넷플릭스는 4A 피드백 지침을 활용하고 있다(Aim to Assist, Actionable, Appreciate, Accept or Discard). 그리고 넷플릭스는 직원들의 자유와 책임성(F&R)을 극대화할 수 있게 거의 대부분의 통제를 제거하고 있다(휴가 규정, 비용 규정, 승인 절차, 핵심 성과지표, 출장 규정, 계약 승인, 급여 등급, 의사결정 승인, 성과 향상 계획, 인상 풀, 목표관리법, 위원회에 의한 의사결정, 연봉 밴드, 성과에 따른 보너스).
듣기만 해도 많은 회사원들의 귀가 솔깃해지는 기업문화다. 게다가 넷플릭스는 직원들에게 업계 최고 수준의 보수를 지급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직원들은 능력 있는 사람들이고 그들을 지켜내는 것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그런데 이런 것이 한국에서도 가능할까?
사실 넷플릭스의 '규칙 없음'이 가능하기 위한 기본 전제는 조직을 능력 있는 사람으로 채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회사를 나가야 한다. 이 때문에 넷플릭스는 최고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직원들을 내보낸다. 물론 이 때문에 넷플릭스는 적당히 일해도 퇴직금은 두둑이 지급한다. 그리고 최고라는 것의 기준을 내부 경쟁을 통한 줄 세우기가 아닌 동종 업계에서의 수준으로 정의한다. 하지만 조직에서 일하는 당사자는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릴 수 있다. 이에 넷플릭스는 '키퍼 테스트'를 활용한다. 일을 그만둔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을 붙잡을 것인지를 상사에게 물어보는 키퍼 테스트를 통해 직원은 자신이 현재 어떠한 처지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방식은 솔직한 피드백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조직문화이기에 별다른 부작용 없이 활용될 수 있다.
이런 설명을 들으면 대부분이 한국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기업문화라고 생각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성과가 좋지 않으면 직원을 바로 내보내는 시스템은 한국에서 현실화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도 그럴까? OECD의 고용동향 2018(OECD Employment Outlook 2018)을 살펴보면, 한국의 이직률은 31.8%로 최고 수준이다. 넷플릭스의 본사가 있는 미국의 19.7%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1년 이상 근속한 근로자가 해고되는 비율의 경우도 한국은 3.89%로 미국 2.74%에 비해 높은 수치다. 사실 직장을 다녀본 대부분의 사람은 알고 있다. 면전에서 사장이 "You're fired!"라고 외치는 경우는 없지만, 더 이상 같이 일할 수 없는 수준이라 여기는 사람에게 회사가 어떠한 대우를 하고 있는지를. 그리고 '규칙 없음'에서 중요한 것은 최고가 아닌 사람을 자르는 게 아니다.
넷플릭스 '규칙 없음'의 핵심은 결국 문화다. 조직에 속해 있는 사람들 중에 우수한 사람을 남기고 나머지 사람을 내보내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자유와 책임'(F&R)이라는 기업문화를 조직의 대세, 정확히는 여기서는 이런 식으로 일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이 '규칙 없음'의 핵심이다. 사실 이러한 기업문화가 구축이 되고 나면 새로 입사하는 사람도 그에 적응할 만한 사람을 뽑을 수밖에 없게 되며, 설사 그에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결국 그러한 문화에 적응하거나 스스로 나가거나 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규칙 없음]에서 나오는 것처럼 뛰어난 직원들이 조직에 중심이 아닌 상황에서 '자유와 책임'이라는 조직문화를 보편화시키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그리고 조직이나 기업이 종사하고 있는 일의 종류에 따라 '자유와 책임'이라는 기업문화가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이 부분 역시 [규칙 없음]에서도 언급하고 있다.
-직원과 고객의 건강이나 안전이 철저히 지켜져야 하는 산업에 종사하는가? 그렇다면 R&P(Rules and Process, 규정과 절차)가 답이다.
-한 번의 실수가 재앙으로 이어지는가? R&P가 답이다.
-일관성 있게 동일한 제품을 생산해야 하는 제조업을 운영하는가? R&P가 답이다.
리드 헤이스팅스&에린 마이어, 2020, [규칙 없음]
그런데 문제는 조직 전체가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이상 제조업이라고 R&P만 필요한 세상이 아니다. 안전이 핵심적인 덕목인 기업에서도 변화에 대한 대응과 혁신이 필수적인 것이 요즘의 세상이다. 게다가 제조업의 기업문화가 R&P 중심이어야 한다는 신화를 완벽하게 부셔버린 미라이 공업과 같은 사례도 있다(필자의 졸고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 참조).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넷플릭스의 '규칙 없음'은 한국에서 실현될 수 있을까? 필자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트렌드가 빠르게 변화하고 세계의 많은 기업들이 신상품을 출시하면 테스트베드로 여기는 한국이기에, 변화와 혁신에 대한 사람들 그리고 조직들의 갈망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사실 필요가 있으면 그에 대한 대응은 당연한 것이다. 이미 새로운 기업문화를 내걸고 등장하는 수많은 스타트업과 그런 문화를 따라 하려는 기업들의 수가 꽤나 많아지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자유와 책임'이라는 기업문화는 직원 개개인의 역량을 최대한 믿고 이를 극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핵심은 '믿는다'라고 보아도 좋다. 그리고 '믿는다'의 주어는 물론 CEO를 비롯한 관리자 즉 리더다. 사람들이 모여 형성된 조직이라는 사회는 모든 사회가 그렇듯 권력관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의 한숨 한 번이 누군가의 백 마디 불평보다도 강력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을까? 결국 리더의 태도가 기업문화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의 직간접적인 경험은 아직 그러한 태도를 가진 리더가 한국에 많아지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드백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는 넷플릭스에서 상사가 경험하고 있다는 피드백을 한번 살펴보자. 콘텐츠 부사장인 래리 탄츠가 2014년 넷플릭스에 입사한 후 몇 주 동안 경험한 일이다.
지난 5년 동안 저는 디즈니의 전 CEO인 마이클 아이스너 밑에서 일했습니다. 마이클에게는 부정적인 피드백을 직접 줄 기회가 없었어요. 그곳 상사들은 부하직원들에게 솔직한 말을 할지 모르지만, 반대 방향의 피드백이 있다는 말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죠.
테드는 두 번째 미팅에서 우리 팀 12명에게 몇 달 뒤면 360도 서면 평가를 시행할 것이니 서로 솔직한 피드백을 주는 습관을 붙여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함께하는 작업이 없어도 지속해서 솔직한 비판을 해줄 수 있을 정도로 가깝게 지낼 필요가 있어요. 우리는 리드의 팀원들과 360도 서면 평가를 한 차례 막 끝냈어요. 그때 내가 받은 피드백을 읽어주죠."
저는 정말 당황했습니다. 이 양반이 도대체 뭘 하는 거지? 지금까지 살면서 저의 상사가 자기 동료나 상급자가 자신에 관해 말한 내용을 얘기해 주는 것은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순간적으로 그가 자신에게 유리한 말만 골라 들려주리라 생각했죠. 그는 리드와 데이비드 웰스 그리고 닐 헌트, 조너선 프리드랜드 외에 모든 사람에게서 받은 피드백을 한 줄 한 줄 읽어나갔어요. 좋은 얘기는 하나도 없더군요. 전혀 없지는 않을 텐데 말입니다. 테드는 코멘트들을 상세히 읽었어요. 이런 것도 있었죠.
-우리 팀에서 보낸 메일에 답장하지 않을 때는 너무 위계적인 것처럼 느껴져서 김이 빠집니다. CCO께서 그런 식으로 일하거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긴 하지만 말입니다. 아마 서로 신뢰를 더 쌓아야 할 것 같습니다. 좀 더 시간을 내어 관심으로 보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팀도 그쪽에 더 많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래된 부부>에 관해 신디에 벌인 당신의 논쟁은 그다지 모범적인 중역들의 의견 교환이라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두 분 모두 좀 더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팀 내에서 공공연하게 드러난 갈등을 외면하지 마세요. 그랬다가 엉뚱한 곳에서 터지면 더 큰 문제가 되어 돌아올 겁니다. 재닛의 좌절이나 로버트 배역으로 인한 갈등은 이미 1년 전부터 불씨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때 정면으로 다뤘다면 지금처럼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하고 사기를 떨어뜨리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테드는 이런 글들을 무슨 슈퍼마켓에서 장 볼 목록을 나열하듯 읽어 내려갔어요. 저는 생각했습니다. '맙소사, 내가 내 부하직원들에게 이런 피드백을 읽어줄 용기가 있을까?
-리드 헤이스팅스&에린 마이어, 2020, [규칙 없음]
여기서의 테드는 지금은 넷플릭스의 CEO가 된 테드 사란도스다. 입으로 말하기는 쉽다. 솔직한 피드백, 자율과 책임의 극대화 그리고 기타 등등의 멋진 말들. 그러나 이를 실행하는 것은 어렵다. 특히 조직의 리더가 보여주기가 아닌 진정한 모습으로 실천하는 것은 어렵다. 아니 어렵다기보다는 불편할 것이다. 권력관계의 상위 혹은 정점에 있는 사람이 스스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사실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다. 필자는 그래서 어렵다고 생각한다. 아직 그런 경우를 직간접적으로 듣거나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망해가는 IBM을 부활시켰던 CEO 루이스 거스너의 책 [코끼리를 춤추게 하라]에 나온 글의 일부를 소개하고 싶다. 한국의 기업과 조직에서 '규칙 없음'을 꿈꾸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10년 가까이 IBM에 있으면서 나는 문화가 승부를 결정짓는 하나의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승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결국 조직이란 조직원들의 가치 창조 능력의 총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어떤 경영 시스템인건 올바른 비전, 전략, 마케팅, 재정 운용을 통해 바른 길로 들어설 수 있으며, 한동안은 잘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사업이든 정부든 교육이든 의료든 인간 활동의 어떤 분야의 기획이건 간에, 문화적 요소들이 그 DNA의 일부가 되지 않고서는 장기적인 성공을 거둘 수 없다. 여러분들도 나처럼 대부분의 기업들이 문화에 대해서 똑같은 말들-탁월한 고객 서비스, 우수성, 팀워크, 주주의 평가, 책임 있는 행동, 성실성 등-을 하고 있음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치 기준들이 모든 회사에서 동일하게 통용되지는 않는다. 즉, 직원들이 실제로 어떻게 일하는가, 서로 어떻게 교류하는가, 무엇에서 동기를 부여받는가는 회사마다 다르다. 한 나라의 문화가 그렇듯이 정말 중요한 규칙들은 대부분 어디에도 문서로 쓰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는 한 곳에 몇 시간만 있어도 그곳의 문화가 무엇을 장려하고 무엇을 억제하는지, 어떤 것에 상을 주고 어떤 것에 벌을 주는지 눈치챌 수 있다. 개인 실적에 보상하는 문화인가, 아니면 팀 활동에 보상하는 문화인가? 모험 감수를 높이 사는 문화인가, 아니면 합의 구축을 중시하는 문화인가?
나는 이제 큰 조직에서 문화가 생겨나고 진화하는 과정에 관한 이론을 갖게 되었다. 성공하는 조직은 거의 언제나 조직을 위대하게 만드는 요소들을 강화하는 강렬한 문화를 발전시킨다. 문화는 그 문화가 생겨난 환경을 반영한다. 하지만 환경이 달라진다고 해서 문화가 바뀌기는 무척 어렵다. 문화는 사실 그 조직의 적응 능력에 큰 장애물이 된다. 기업이 비전을 가진 리더의 창조물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기업의 초창기 문화는 대개 창업자에 의해 결정된다. 즉, 창업자의 가치 기준, 신념, 우선순위 그리고 그 사람의 특이한 성품까지도 기업 문화 형성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 모든 조직은 한 사람의 확장된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루이스 V 거스너, 2012, [코끼리를 춤추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