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문장은 레고다

단문 강박

by 수필버거

세 아이가 어렸을 때 함께 레고 조립을 많이 했다. 처음 살 땐 특정 모양을 만들 수 있는 세트를 사지만, 한 번 만들고 나면 해체하여 큰 통에 섞어서 보관했다. 그렇게 보관하면 애초의 목적대로 다시 조립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성격이 각각인 세 꼬맹이와 나는 마루 바닥에 조그만 레고 조각들을 쏟아붓고 각자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며 놀았다. 상상하는 모든 것에 열려있다. 떠오르는 모양대로 자동차를 만드는 아이, 비행기를 만드는 아이, 집을 만드는 아이. 자동차에 날개를 달기도 하고, 비행기가 우주선이 되기도 한다. 방 두 개 집은 기지로 확장된다. 몇 시간씩 그러고 놀았다. 각자 만든 것을 설명하고 과한 리액션을 해주며 낄낄댔다.

레고 부품이 작은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작은 조각이 다양하게 쓰일 수 있어서일 수도 있다. 큰 블록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더라.


말하자면, 문장은 조각 같은 거다. 생각의 레고 조각. 나를 조각내서 쓰는 글도 있고, 흐른 내 조각을 주워서 글로 쓰기도 한다.

나를 조각내서 쓰는 글은 목적의 글일 때가 많다. 보여주고 싶어서, 읽히고 싶어서, 주장을 하기 위해서, 설득을 하기 위해서 쓸 땐 내 생각을 잘게 자르고 필요한 조각을 골라 쓴다.

흐른 나의 조각은 문득 발견한다. 새벽에, 아침에, 밥 먹다가, 걷다가, 읽다가 바닥에 흐른, 반짝 하는 조각을 발견하면 주머니에 넣어뒀다가 나중에 꺼내 쓴다. 넘쳐서 흐른 조각도 있고, 딴 것에 붙어 나와서 흐른 것도 있다.



글쓰기 관련 책에 반드시라고 할 만큼 빈번히 나오는 3종 세트가 있다. '당장 시작하라', '매일 써라', '단문을 써라'. 1번과 2번의 반박의 여지가 없는 만고불변의 진리다. 몸으로 밀고 나가야 하는 일은 특히 그렇다.


짧게 쓸 시간이 없어서 길게 썼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처칠, 링컨, 베이컨, 출처가 다양하여 딱히 누구의 말이라고 하기 힘든 말이다. 그만큼 함축적으로 쓰기가 어렵다는 의미만 새긴다.


김훈의 문장은 짧으며 유려하고, 짧지만 꾹꾹 눌러 다 담은 느낌이다.

유시민의 문장은 짧게 툭툭, 권투 스텝으로 빠르게 치고 나가는 느낌이 든다.

느낌은 달라도 짧고 작은 단문은 힘이 있다.

부러우나 따라 하기는 힘들어서 강박만 생겼다. 문장이란 자고로 저래야 한다는. 초기에도 그랬고 여전 그러하다. 이 글도 그런 흉내내기다.


작년인가, 김영하 작가의 에세이를 몇 권 읽었다. 그다지 단문의 제약 같은 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렇게도 쓰는구나, 써도 괜찮구나 했다. 그때 잠시 강박을 풀었다. 죽도 밥도 아닌 글이 나왔다. 아무나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은 확실히 배웠다.


왜 단문이 읽기에 좋을까, 왜 많은 작가들이 단문을 권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말을 글로 쓸 때는 짧게 쓰는 게 좋다. 한국말의 구조 때문이다. 영어 문장은 주어 바로 다음에 동사가 나오기에 주어와 동사의 간극이 짧다. 그래서 그 사람이 말하는 바를 바로 알 수 있다. 동사와 목적어 뒤에 나오는 말은 다소 부수적인 경우가 많기에 사람들은 앞에서 대강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알 수 있다.

한국말은 동사에 해당하는 말이 주어 바로 뒤가 아닌 문장 맨 뒤에 나온다. 그래서 말이 길어지면 주어와 동사의 간극이 벌어져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그것의 풀이가 헷갈리게 된다. 그래서 한국말을 쉽게 하려면 중간에 주어를 설명하는 동사를 적절하게 넣어줘야 한다. 의도적으로 주어와 동사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말은 짧게 쓰면 좋다.

-<ㅍㅍㅅㅅ '왜 단문을 써야 하냐고? 한국말의 구조 때문이다.' (윤여경 씀) 중에서>

작은 조각들이 쓰기에 좋다는 내 나름의 결론과 한국 사람으로서 무의식에 각인된 주 언어의 감각을 이길 수는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글을 쓰고 나면 고쳐쓰기를 하는데, 몇 번 반복해서 읽으며 수정을 한다. 중얼중얼 읽으면 짧은 단문이 입에 짝짝 붙는다. 강원국 작가의 책 제목 '나는 말하듯이 쓴다'처럼 소리 내어 읽어서 편한 문장이 좋다로 방향을 잡았다. 예전에 쓴 적이 있듯이, 내 말투가 내 문장이 되더라.


작은 나의 조각들로 내 생각과 상상을 조립하고 확장한다. 가끔 재밌다. 자주 재밌으면 좋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