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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책은 사람을 잇는 길

글쓰기 교실, 독서모임이 필요할까?

by 수필버거

글쓰기 교실, 독서 토론회에 대한 나의 의견은 회의적이었다. 자발적 고독에 가까운 행위가 독서와 글쓰기라는 생각이 강해서 혼자 읽고 배우고 소화하며 성장하는 것이 독서라고 믿는 쪽에 오래 서있었다. 특히 글쓰기는 터득의 영역에 속한다고 보기에 무슨 무슨 글쓰기 강좌 같은 것에 대해서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기 어려웠다. 뭐, 아주 기초적인 것은 책으로 배울 수 있지 않나 하는 정도의 생각을 갖고 있었다.


코로나 2년 차 어느 봄날의 나른한 오후, 공장 뒤뜰에 있는 플라스틱 테이블에 봉지 커피 한 잔을 타서 놓고 담배를 물다가 문득 궁금했다. 옛 친구들은 잘 살고 있나? 느닷없는 궁금증이 의아했다. 생각나지 않는 시간이 꽤 길었는데 그들의 안부가 난데없이 왜 궁금해졌을까. 잠시 머뭇대다가, 떠오르는 여러 명 중 한 친구에게 아주아주 오랜만에 전화를 했다.


서른 즈음부터 40대 중반까지 만나던 소위 말하는 사회 친구들. 까다로운 내 성미로 가리고 내치고도 곁에 남은 친구들. 내 사업이 심한 부침을 겪기 전, 그러니까 내가 밥이든 술이든 종류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잘 사던 시절의 인연들. 사업이 엎어지고 재기를 위해 용을 쓰는 동안 연락을 끊었다. 아니, 끊겼나? 내 한 몸, 내 가족 건사하기도 벅차서 잊고 살았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

마음 구석엔, 내 사는 꼬락서니가 부끄러워서, 쓸데없는 동정할까 봐, 전화를 피할까 봐, 연락을 끊고 산 것도 있다. 모든 것을 복구하고 의기양양하게 짜잔 하고 나타나야지 하는 마음이었으리라. 예상치 못한 복병 코로나로 인해 이대로 또 주저앉는다면 영영 안 볼 것인가를 생각했다. 그건 아니지. 망가진 건 나일뿐이고 그들은 아주 괜찮은, 좋은 친구들이다. 더 미루면, 내 나이가 몇일까를 계산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문득 생각난 지금이 적기일지도 모른다는 마음과 타인은 나에게 관심은 없고 흥미만 있을 뿐이란 말을 애써 떠올리며 더는 미루지 않기로 했다.

이~야, 오랜만이야 라는 기분 좋은 목소리가 폰을 타고 들었다. 방송국 기자였던 친구는 보도국장이 됐다고 했다. 그래, 시간이 많이 흘렀지.

이왕 내친김에 그 시절 함께 자주 어울렸던 다른 친구에게도 연락을 했다. 이게 누구냐, 살아있냐는 가벼운 타박을 들었다. 하던 사업은 코로나 시국 직전에 타이밍 좋게 매각하고 놀멘 놀멘 지낸다고 했다. 목소리가 밝았다. 점심 약속을 했다.


며칠 후 눈부시게 맑은 날, 비빔밥과 냉면으로 식사를 하고 수성못이 한눈에 들어오는 커피숍 2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내 상황에 대한 질문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소문을 들었겠지. 어제 만나고 오늘 또 본 듯이 대해주는 친구들의 무심한 태도가 배려처럼 느껴졌다.
내게 골프 치냐고 물었고 나는 진작에 끊었다고 답했다. 대한민국 중년은 전부 골프 아니면 등산을 하는 것 같다. 가끔 보기 위한 '꺼리'로 골프를 치냐고 물었을 거라고 짐작했다. 연을 이어가기 위해선 뭐든 매개가 필요한데. 술, 밥은 아닌 것 같고.

이 친구들은 다 책을 좋아한다는 기억이 났다. 책을 보자고 제안했다. 한 달에 한 권 읽고 가볍게 토론을 하자고. 지자체 사무관 친구 한 명을 더해 4명이서 시작하기로 했다. 그래서 시작된 독서 모임, 대책회의(대구 책 보는 모임이라는 뜻)가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책이 대화의 중심을 잡아주니, 곁가지로 뻗어 나가는 얘기도 마냥 한담으로 흐르지 않고 알차고 즐겁다.


작년 12월부터 금년 5월까지 랜선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면서 글을 함께 쓴다는 것에 대한 내 생각이 긍정 쪽으로 제법 기울었다. 여전히 합평과 강의 같은 것은 내게 맞지 않는 옷 같아서 좋아 보이지 않지만, 억지로라도 자주 쓰게 만드는 약간의 강제성과 동료의 격려, 응원은 큰 힘이 됨을 알았다. 책 읽기도 마찬가지다. 친구들과 독서 모임을 하면서 책을 해석하는 다양한 관점이 흥미로웠고,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독창적인 의견을 주고받는 즐거움을 새삼 느꼈다. 같이 운동하고 밥과 술을 먹을 때 보지 못했던 친구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기쁨은 보너스였다. 내가 괜한 섭입견에 갇혀 세상 좁게 살았던 것 같다.


트레바리라는 회사가 있다. 독서 기반 스타트업. 코로나 직전인 2019년에 소프트뱅크에서 45억 원의 투자도 받았다고 한다. 앱 안에 다양한 독서 클럽을 마련하고, 개별 클럽은 클럽장을 섭외하여 맡긴다. 뭉뚱 거려 셀럽이라고 칭할만한 인사들이 '클럽장'이 된다. 주로 4개월 유료 코스인데, 한 달로 나누면 크게 비싸 보이지 않지만, 사람에 따라선 독서 모임 치고 저렴하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는 액수다. 공짜 독서 모임도 많으니까.
모여서 책을 읽는, 이런 사업이 기업가치를 수백억 이상 인정받는 스타트업으로써 투자까지 받았다고? 관심을 갖고 검색을 했다. 관련 자료를 읽으며, 고 이건희 회장의 말대로 그 회사의 본질, 즉 업의 본질을 생각했다. 책이라는 주제를 정해놓은 '워런 버핏과의 점심식사' 경매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책을 매개로 한 인맥 또는 휴먼 네트워킹.


비슷한 독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다양한 커리어 백그라운드를 가진 회원 간의 네트워킹이 생기겠다. 거기에 보태,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거나, 특별한 분야에서 독창적인 경험을 했거나, 자기 분야에서 깊은 성취를 해 본 클럽장과 직접 대면하여 대화를 하는 것이 이 사업의 핵심이라고 본다.

클럽장들의 면면이 화려하고 다양하다. 유명 기업 경영자, 작가, 스몰 브랜드 대표, 이색적인 분야의 인물 등. 그 사람들과 한 달에 밥 몇 끼 사 먹을 금액으로 소모임으로 대면하고 그들의 인사이트를 그들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인 제안으로 보인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이라면 초면이라도 조금 믿음이 생기지 않을까. 책이 주는, 독서라는 행위가 주는 신뢰감 같은 것이 있으니까.

나 포함 넷이 하는 대책회의를 확장해서 트래바리같은 독서 모임을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방이 핸디캡으로 작용할까. 독보적인 성취와 깊고 창의적인 경험을 가진 사람은 전부 서울에만 있을까?

나와 인연이 있는 몇몇이 후보로 적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삶을 충실히 잘 살아온 친구, 한 분야에서 2만 시간, 3만 시간을 보낸 선후배들이 계속 떠올랐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충분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주변에도 많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해볼까?

가끔 사람 많은 곳에 서 있으면, 모르는 사람이 정말 많구나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곤 한다. 오천만 중에, 칠십억 중에 나는 몇 명이나 알고 교류하며 살까. 생각보다 좁게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우주인데. 세상살이는 사람이 알파요 오메가인데.


책은, 어쩌면 아직 만나지 못한 좋은 사람들을 잇는 길, 찾아가는 길일 수도 있겠다.

여름부터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책으로 사람이라는 우주를 만나고 알아가는 일을.

돈 벌자고 하는 일은 아니다. 사는 즐거움 하나 보태려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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