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사랑에 빠진다면

한 장 여행 그램 003. From, Spain, barcelona

by 키만소리
3.jpg


한장여행그램 003. 여행지에서 사랑에 빠진다면


여행지에서 사랑에 빠진다면

열정의 나라 스페인이 좋을 것 같아

그곳에서는 재고 따지지 않고

그냥 자유롭게 마음껏

사랑할 수 있을 것 같거든




"저기, 이거 제 명함입니다"


그가 멋쩍게 웃으며 명함을 하나 내밀었다. 서양 사람들로 가득 찬 스페인의 어느 작은 게스트 하우스에서 한국 사람이라고는 그와 나 둘 뿐이었다. 한국말로 말하고 한국에서 통용되는 명함을 꺼냈으니 이건 분명 나에게 주는 것이었다.


그와 처음 만난 것은 조식을 먹는 작은 홀에서였다. 태양에 그을린 까만 피부의 그는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고 편안해 보이는 차림으로 슬리퍼를 신고 가이드북을 읽으며 토스트를 먹고 있었다. 서양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아시아인에게 눈길이 가는 건 당연했다. 내 눈길을 읽었는지 그는 책을 덮고 나에게 성큼 다가왔다.


"맞죠? 한국 사람?"

그의 입에게 한국어가 흘러나왔을 때 나는 정말 놀랬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가 장기 여행하는 일본인인 줄 만 알았다. 한국 사람들의 여행자 특유의 옷차림과 행동들이 있는데 그에게는 전혀 그런 모습이 않았기에 일본인이겠거니 생각하고 편안하게 쳐다봤던 것이다. 그는 자연스레 내 테이블로 이동했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아침을 함께 먹었다.


토스트 기계에서 갓 구워나온 빵이 식을 때까지 우리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여행자들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일상적인 대화부터 앞으로의 일정 그리고 자연스레 각자의 삶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식을 끝내는 종소리가 들리고 우리는 짧은 목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비수기 스페인의 작은 게스트 하우스에서 동갑내기 남녀가 만난다는 일은 매우 드문일이지만, 깊은 의미를 담아두기에 장기 여행자들에게는 빈번히 일어나는 일들이었다. 우리의 아침 대화는 그 이상, 그 이하의 의미도 없는 여행자들의 잡담이었다.



하지만 그가 나에게 명함을 주었을 때,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나는 마드리드를 떠나 바르셀로나로, 그는 이비자 섬으로 향했다. 여행 중간에 가이드북을 잃어버린 나에게 그는 자신의 가이드 북은 사진으로 찍어 보내주었고, 이비자 섬이 궁금했던 나는 그의 사진을 통해 대리 여행을 했다. 같은 동시간대, 같은 나라를 여행하고 있던 우리는 매일 밤 여행의 일정을 보고하며 한국 친구들과는 조금 특별한 잡담을 나누었다.


그러던 중, 그는 일정을 조금 앞당겨 바르셀로나로 날아왔고 내가 묵고 있던 숙소 가까이로 가방을 풀었다. 우린 그날 밤에 만나 바르셀로나의 작은 펍이 문을 닫을 때까지 여행 이야기로 쉴 틈 없이 떠들었다. 거리로 쫓겨난 우리는 내가 묵고 있던 숙소의 노점 펍에서 상그리아를 마시며 바르셀로나의 밤거리를 온몸으로 느꼈다.



만약 내가 여행지에서 사랑에 빠진다면, 지금 이 순간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우리의 밤은 꽤 괜찮았다.


한국에서 열병을 앓고 떠나온 터라, 스페인이 내뿜는 자유로운 열정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왠지 이 곳에서는 재고 따지는 그런 지루한 연애 말고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스페인은 여행자들의 마음을 흔드는 그런 나라였다.


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우린 연인의 인연보다는 동갑내기 친구의 인연을 선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여행지에서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로맨틱한 일이지만 그 달콤한 사랑이 차디찬 이별로 돌아섰을 때 여행의 추억까지 무너지고 만다는 걸 나는 너무나 잘 알았기에. 우리는 둘 다 스페인의 여행 추억을 소중하게 갖길 원했고, 각자의 여행을 지키고 싶었기에 친구가 되었다.


친구가 된 우리는 사람들의 우려와 반대로 오히려 돈독해졌다. 서로의 다음 여행을 지지해주고 부러워해주는 그런 여행친구가 되었고, 그는 몇 년 후 나의 결혼식에 한걸음 달려와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넸다.


꼭 여행지에서 사랑에 빠질 필요는 없다.


여행지의 설렘이 당신의 마음을 흔든다고 해서 굳이 yes를 외칠 필요도 없다. no를 외친다고 여행이 주는 설렘이 끝나는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오히려 더 돈독한 결과를 얻을지 모른다. 그때의 나처럼 말이다. 그래도 스페인에서 느끼는 사랑의 끌림은 쉽게 내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니 조심하길. 하하.




한장의 사진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 여행을 합니다.

저와 함께 여행하실 분들은 '한장여행그램' 구독하기 버튼을 눌러 티켓팅 해주세요 :)

https://brunch.co.kr/magazine/onegram

keyword
이전 02화파리는 사랑에 빠진 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