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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첩장을 펼치면 지도가 나온다. 지도에는 꽃이 피어있는 구불구불 길, 물결무늬를 입은 섬진강, 몇 개의 산과 큰 나무 한 그루 그리고 집 한 채가 그려져 있다. 지붕이 빨간색으로 칠해져있는 집. 산너머선 결혼식에 오신 분들은 먼저 큰 나무가 있는 예식장에 도착했다가 원한다면 빨간 지붕 집으로 갈 수 있다. 산을 넘고, 강을 지나,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서.
결혼식 이후에 신랑 신부의 신혼집에 들르는 일정이라니. 식순 종이에 ‘함께 사는, 함께 짓고 있는 집이 궁금하신 분들은 이 곳으로 방문해주세요’라는 문구를 편집해 넣으면서 둘이서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건 우리가 생각해도 참 독특하긴 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전국 팔도는 물론이고 해외에서 오신 가족, 친지, 친구들이 대놓고 또는 은근히 “그런데.. 집 구경은 할 수 있어?”하고 물어왔기 때문이다. 산 넘고 물 건너 어렵사리 오시는 분들을 그냥 되돌려 보낼 수는 없어서 그 날 우리는 집을 공개하기로 했다. 아 물론,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즐거울 만큼!
집은 승일이와 나에게도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다. 깊은 고민 끝에 집터를 사고 둘이서 고쳐 짓는 여정을 떠나왔으니, 그 날이 우리에게는 진짜 결혼식이었던 셈이다. ‘그 집에서 좋은 일 많이 하자!’라며 손을 꼭 잡았던 밤. 그 날의 다짐은 우리를 이끌어 여기까지 왔다. 산을 넘어 선을 향하여.
집을 공개하는 것에 큰 거리낌은 없었다. 지붕, 창틀, 천정, 현관문 하나하나에 우리가 살아내고자 하는 의미들이 가득 묻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그것이 희미한 단계인지라 잘 전달이 되지 않을 것이 고민이었다. 그래서 집 구석구석에 안내문을 붙여두어서 오신 분들이 공간의 기운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준비하기로 했다. 아 이것도 물론,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즐거울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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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은 빨간 지붕의 집에 도착한다. 입구에는 마찬가지로 빨간 지붕의 야트막한 별채가 있다. 그 곳은 승일이의 작업실로 탄생할 예정이다. 벽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안내문이 적혀있다.
산너머선은 되어가는 집입니다.
언제까지 끝내야할지도, 완벽한 모습도 정해놓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삶의 기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오늘 보시는 모습도 어제와 다릅니다.
그저 그 변화가 조금 더 아름답고 조화롭기를 바라며 매일 집과 사람을 돌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배워갈 사랑이 흘러 넘쳐여러분께 가닿았으면 합니다.
담 없는 길을 지나 빨간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상자를 잘라서 만든 안내문이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
처음 집을 봤을 때는 그렇게 큰 일처럼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큰 일을 해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이 인생의 묘미인가요?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보시는 것과 같이 모자라고 서투른 과정 속에 있는 집입니다. 앞으로 해야 할 부분은 저희가 많이 보아야 하니 좀 아껴두시고, 지금까지 해온 부분을 저희 대신 많이 보아주신다면 참으로 감사할 듯 합니다.
날이 참 좋았습니다. 지붕이 없는 집안이 어쩜 그리도 밝던지요. 보강 작업을 하고, 합판을 얹고, 단열재를 얹고, 투습방수지를 얹고, 골강판을 얹고, 며칠 안 걸릴 줄 알았던 작업을 한달하고도 보름이 걸렸습니다.
큰 작업에 항상 도움을 주었던 이웃, 별 일인데 별 일 아닌 듯 도움을 주십니다.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이 분의 작업 속도까지는 따라 갈 수 없지 않을까’하고 생각했습니다.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을 참 많이 배웠습니다. 게으르고 부족한 것 많은 제가 이 산들을 넘을 수 있는 이유는 함께 하는 이가 있고, 함께 믿는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정적이고 미움과 분노가 가득한 세상에 긍정과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저희 집으로 오시는 모든 이들을 환대할 수 있도록 부단히 집청소 마음청소 하며 살겠습니다.
문을 열고 나오면 봄이다.
이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산을 넘고, 강을 지나,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당신의 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