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도 일도 강약 조절
광고업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일하는 것과 노는 것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영화를 봐도 드라마를 봐도 다 써먹을 데가 있습니다. 어제 읽은 만화책이나 웹툰 조차 아이디어에 활용됩니다. 회사 풍경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대부분 영상을 보거나 글을 읽는데 노는 것 같아 보여도 사실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중입니다.
그래서인지 같은 업계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규칙적인 생활을 싫어합니다. 일이 몰릴 땐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다가도 일이 빠지면 세상 가장 게으른 사람들이 됩니다. 다음 일이 들어오기 전까지 신나게 놀아두는 게 목표입니다. 이럴 때 가장 많이 찾는 곳이 영화관입니다. 맛집에 들러 배불리 식사를 하고 영화 한 편을 봅니다. 회사로 돌아가기 애매한 시간이 되면 조금 일찍 술자리를 시작해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일 때문에 쌓인 스트레스도 저절로 풀립니다. 이 맛에 광고회사 다니지 싶어 집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팀도 겪었습니다. 공무원처럼 9시 정각에 출근하고 정확히 1시간 안에 밥을 먹고 들어와야 했습니다. 하지만 퇴근만큼은 공무원 같지 않았습니다. 밥 먹듯이 야근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이 아이디어를 내지만 늘 컴퓨터 안에서만 아이디어를 찾습니다. 그러다 보면 디스크도 생기도 안구건조증도 생깁니다. 비약 같지만 정말입니다. 그 팀에 있는 동안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 제 별명일 정도였습니다.
"일에도 강약이 필요해.
가장 빠르게 달려야 할 때도 있지만
가장 느리게 달리는 때도 있어야지.
이번 주는 쉬엄쉬엄 살자."
아무리 이 업이 힘들다고 해도 제가 한결 같이 좋아할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매일 똑같은 속도로 달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빠르게 달려야 할 때도 있지만 산책하듯 느리게 걷는 때도 있습니다. 주변을 돌아보지 못할 때도 있지만 누구보다 오래 바라보는 때도 있습니다. 이 생활이 쭉 보장될 수만 있다면 변함없이 광고 일을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생도 일도 늘 강약 조절하며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