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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화 Mar 24. 2022

귀를 쫑긋, 마음을 열어요

[독서토론모임 전문가 되기] 13


마음의 문을 열어요

책을 엄청 깊게 읽고, 명쾌한 질문을 만들고, 핵심을 짚는 대답을 해도... 기분 나쁘게 끝나면 말짱 꽝입니다. 사람이 하나 둘 떠나가면 만나서 이야기 나눌 사람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반응하고, 또 자연스럽게 생각을 더하는 당연한 행동에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기본값이 아니니까요. 의도적으로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이 모든 것이 이루어져요. 

 




의도적으로 경청합니다


독서토론은 기본적으로 말하기와 듣기가 반복되는 행위입니다. 다들 ‘경청’이란 말이 익숙하긴 하지만 실행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말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너무 길어지기도 하고, 흥분해서 상대방의 말을 끊고 끼어들기도 하고, 대화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말을 내뱉기도 합니다. 


추임새와 가로채기의 경계를 오고 가기도 합니다. 리액션을 해주려고 하다가, 이야기 소재와 발언권을 빼앗아 버리기도 하죠. 그럴 때는 말하던 사람이 매듭을 지을 수 있도록 사회자가 다시 기회를 주는 것이 좋습니다. 한번 기분이 상하면 다음 발언과 지속적인 참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니까요. 그만큼 대화의 매너는 중요합니다. 


자연스럽게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 가장 좋지만, 분위기가 너무 산만할 때는 적당히 통제하는 것이 매끄러운 진행에 도움이 됩니다. 시계방향으로 번갈아 말하도록 하거나, 토크스틱으로 발언권을 지 정하기도 하는 것이죠.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상대방이 말하고 나서 5초 뒤에 말을 하자는 식의 규칙을 만들어 지키는 것도 방법입니다. 발표 때 손을 들고 발표하는 습관을 만드는 것과 같은 맥락이에요. 실제 모래시계를 활용하거나, 타임워치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런 의식적인 노력이 없으면 정말 힘든 것이 ‘경청’입니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는 경우도 많죠. 내가 말할 것을 준비하고 있을 때, 상대방의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나 발표를 한다고 했을 때, 나의 순서가 오기 전까지는 계속 나의 발표를 준비하느라 상대방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곤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노매너는 주의라도 주지, 속으로 딴생각하는 것은 본인밖에 모릅니다. 그 래서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눈을 마주친다거나, 고개를 끄덕인다거나, 메모를 한다거나, 하는 행동들로 스스로를 다잡는 것이죠. 어색하지만 노력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말하는 사람들은 압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 말을 듣고 있는지, 지금 내 말이 공중에 둥둥 떠다니고 있는지. 다들 스마트폰만 보고 있다면… 식은땀이 나기도 하고, 좌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 기분을 느끼지 않도록 사회자가 주도적으로 리액션을 해주고, 경청의 분위기를 조성해주면 좋아요. 저는 최소한 저 한 명은 잘 듣고 있습니다! 라는 메시지를 팍팍 전달하며 경청하려고 노력합니다. “시선처리가 힘들면 저를 보세요. 제가 끄덕거리고 있어요.”라고 농담처럼 말하기도 해요. 잘 듣고 있으면 적절한 질문이 바로 떠오르기도 한답니다.




설득당해도 괜찮습니다


가끔씩 설득당하는 것을 굴욕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을 만납니다. 찬반토론 대회가 아닌 이상, 처음 A라고 말했다고 끝까지 A라는 논조를 유지할 필요는 없습니다. 충분히 중간에 생각이 바뀔 수 있고, 새로운 매력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관성에 대한 압박 때문인지, 입장이 엇갈리면 억지 근거를 내세우며 설득을 당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A라는 생각을 가지고 왔다가 B가 되긴 힘들어도 AB정도의 생각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이게 욕심이 라면 B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이라도 알고 갔으면 합니다. 토론을 통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 생각의 유연성을 기른다는 점에서는 설득당할 줄 아는 것이 더 긍정적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정말 끔찍했던 것은 강연이 아니었다.
토론은 더욱 이해 할 수 없었다. 
미사여구를 동원한 영국식 공손함이라는
어두운 납 틀에 담긴 채 사람들의 말은
완벽하게 서로 비껴 지나갔다.

알아들었다는 듯이 서로 대답하며 쉴 새 없이 말을 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한 말을 알아듣고 조금이라도
생각을 바꾼 징후를 보인 토론자는 아무도 없었다.

- <리스본행 야간열차>(파스칼 메르시어) 中 –



“설득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과 토론하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설득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귀를 닫고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토론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죠. 이런 상황에 서의 ‘이기기 위한’ 토론은 서로 말꼬리잡기, 약점잡기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바람직한 독서토론에서는 설득의 여지를 남겨두고 유연하게 상대방의 입장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베스트셀러인 <82년생 김지영>(민음사)으로 강의 및 독서모임을 많이 했습니다. 사회적 이슈인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자리가 워낙 활성화되던 시기이니까요. 예민하고 어려운 주제일 수 있지만 이런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것은 낯선 자극을 수용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정답을 찾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읽고 나누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이죠. 무조건적인 옹호와 비판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결국 함께 살 아가는 세상이기에 이해하기 위한 노력과 존중이 필요합니다. 작가에게나 다른 참가자에게나, 설득당해도 괜찮습니다.




차곡차곡 정리합니다


녹음을 하지 않는 이상, 말로 주고받은 것은 쉽게 날아갑니다. 그래서 그때그때 정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외국에서 하는 토론 수업 때 토론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토론 이후에 적는 에세이입니다.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다시금 정리해보는 것이죠. 우리가 책을 읽은 시기에 따라 감상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마찬가지로 같은 책도 시기에 따라, 모인 사람들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그것을 비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후기’입니다. 기록이 되어 있어야 그 변화를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어요. 저는 한 책으로 5번 이상 독서토론 모임을 진행·참여하기도 했는데, 이전 후기를 참고하며, 다음 모임을 준비하기도 했었습니다. 후기만 봐도 어떤 이야기가 오고갔는지 자동 음성지원 되기도 했어요. 


<SNS를 활용한 성인 북클럽 운영 사례>라는 석사학위 논문을 작성할 때는, 허락 하에 모임 내용을 녹음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들으면서 대화 내용을 일부 옮겨 적기도 했지요. 머릿속 에 기억하는 내용과 녹음된 내용이 달라서 놀랐던 적도 많고, 허접한 진행에 반성하기도 했어요. 그런 자기성찰의 경험을 하는데 후기는 큰 도움이 됩니다.


지금은 녹음까지는 아니라도, 충실히 메모하려고 노력해요. 이야기를 들으며, 리액션하면서, 메모까지 하기는 쉽지 않은데요. 키워드 중심이라도 간단히 정리해 놓으면, 나중에 후기 쓸 때 기억이 나더라고요. 연습하다 보니 들으며 메모하는 기술도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오히려 더 듣기에 집중된다고 느끼는 순간도 있어요. 상대방의 논점이 흐려지거나, 중언부언할 때 명료하게 피드백해 주기도 좋습니다. 다른 참가자들의 생각 정리에도 도움이 돼요.


따로 기록하는 것이 힘든 경우 간단히 사진이라도 남기는 것이 좋습니다. 음식 먹기 전에 인증샷 찍듯이, 사람들과 사진이라도 찍는 것이죠. 저는 후기에 참가자 이름을 적을 때, 사람의 위치를 참고하여 적습니다. 저를 중심으로 오른쪽 순서로 적는 식이에요. 그러면 사진의 인물과 이름을 연결하기 쉽습니다. 온라인 모임 때는 화면을 캡처합니다. 한눈에 모두 화면이 보이도록 하면,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어요. 시간이 지나고 그 사진만 보아도 그 당시 사람들과 주고받았던 이야기, 그 분위기가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그런 자료들이 하나하나 쌓여 내공이 형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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