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토론모임 전문가 되기] 12
독서토론을 잘하고 싶다...? 즐기고 싶다...?
독서토론을 잘하고 싶다는 말을 툭 내뱉는 경우가 많습니다. 독서토론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말을 똑부러지게 잘하는 것, 리액션을 통해 대화를 부드럽게 이어주는 것, 책을 읽고 통찰력 있는 해석을 내놓는 것,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고 소통하는 것 등등 많은 내용이 떠오릅니다. 모두 맞는 말이지만 좀더 거시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면, 의미있게 즐기는 것이 가장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 니다. 앞으로의 지속성과 성장 가능성을 담보하고 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기본적인 능력과 함께 태도가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독서토론을 통해 즐겁고 유익한 경험을 쌓기 위한 바람직한 태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흥미는 중요하지만, 빠른 손절은 위험합니다
지정 작품을 가지고 토론을 하는 경우, 그 작품에 대한 흥미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한 작품이 모든 사람에게 흥미를 줄 수 없는 만큼 작품의 매력에만 집착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그 작품에 흥미가 없었어도 토론 시간은 의미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죠. 또 독서토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쁨 중 하나가 ‘새로운 보물’을 발견하는 것 인데, 반면 그 기회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저또한 평소 취향이라면 절대 읽지 않았을 책들을, 독서모임 속에서 많이 만났습니다. 그리고 정말 축복과도 같은 보물들이 그 안에 있었어요. 그렇게 저의 영역이 확장되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니 너무 일찍 손절하지 마세요. 우선 읽어 보시고, 읽고 별로라도 모임에 참여해 보세요. 세상엔 수많은 책들이 있고, 수많은 생각이 있고, 수많은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것을 즐겨 보세요.
꾸준히 책을 읽는 성인들도 별점 5개 짜리 책을 만나기 쉽지 않죠. 대부분이 그럭저럭인 책들일 것입니다. 정말 재미있게 읽은 책 만으로 독서토론을 한다면, 매우 범위가 좁아질 것이고 대화도 찬 양 일색으로 끝날 위험이 있습니다. 대화의 폭이 좁아지는 것이죠.
예를 들어, <선녀와 나무꾼>으로 독서토론을 한다고 했을 때, 작품 자체를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불편한 내용들이 많이 있으니까요. 여기서 작품의 내용이 불편했다고 토론에 임하지 않으면 그 감정은 거기서 머무르게 됩니다. 하지만 토론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불편함의 실체를 직면하게 되고, 또다른 담론으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 ‘생각’에 집중 하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되죠.
주제는 꼭 하나가 아닙니다
작품에는 선명한 주제의식이 드러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문학 작품의 경우에는 선명하지 않은 경우도 많이 있어요. 어찌되었든 작품의 주제로 드러나는 작가의 메시지와 독자가 느끼는 메시지가 꼭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 의미로 독서토론 진행시,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주제와 이야깃거리를 사람들에게 열어 두는 것이 좋습니다. 다루는 비중은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어떤 목소리도 소외시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묻고, 대답하는 건강한 대화와 설득의 과정은 환영이지만, 내가 느낀 주제를 다른 사람에게 무리하게 강요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 다양한 시각과 이야기를 공유한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니까요. 내가 생각한 주제와 다른 키워드가 토론 때 나온다면, 두 가지 모두 노트에 적으면 됩니다. 대신 글자 크기를 다르게, 강조 표시를 다르게 할 수는 있겠죠.
◦ <흥부전> 주제: 권선징악 / 형제 우애 / 동물 사랑 / 가족 사기단 / 벼락 부자되기
◦ <홍길동전> 주제: 정의사회 구현 / 신분제도 비판 / 가족관계 / 아들의 사춘기
◦ <미디어 읽고 쓰기> 주제: 건강한 미디어 생활활 / 퍼스널 브랜딩 / 중독 예방
◦ <공정하다는 착각> 주제: 능력주의 비판 / 공정성 / 미국 사회 이념 정리
물론 작품을 중심으로 보면, 작가가 강조하는 핵심 메시지, 핵심 키워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내용을 지지하는 근거들이 많을 수 있어요. 하지만 스터디 형식의 탐구형 모임이 아니라면, 독자들의 의견을 중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독자들이 무엇을 느꼈는지, 왜 그렇게 느꼈는지 호기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는 태도가 중요해요. 잘못된 내용이 아니라면 굳이 “내 주제가 더 중요하다!”고 외칠 필요 없어요. 이러한 독자 반응이 작품 감상에 중요한 요소이니까요. 작가로 모임을 참여하는 순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작가로서 책에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과 독자들이 자주 질문하는 부분이 같지는 않더라고요. 그것도 존중합니다!
그래서 저는 모임 때 항상 “인상 깊었던 장면”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여기선 핵심 주제에서 벗어나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거든요. 누가 뭐라고 해도 ‘나에게 인상 깊었던 장면’이니 태클을 걸 수 없어요. 우리는 호기심을 갖고 들어줘야 합니다. “왜 그 부분이 인상 깊었나요?” 상대방의 이야기를 통해 내 생각과 경험도 넓어집니다. 그리고 분리해서 핵심 키워드를 바탕으로 한 질문을 따로 만듭니다. 이 책을 읽고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메시지를 건드리는 겁니다.
집착하지 않고 거리를 둡니다
다양한 소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개인의 이해관계가 얽힌 경우가 있습니다. 어떠한 입장에 처해있다거나, 어떠한 입장을 지지한다거나. 이럴 때 감정적으로 깊이 반응하다보면 건설적인 토론이 되기 어렵습니다. 나누는 대화 주제 자체에 집중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실제로 찬반토론 대회에서는 찬성/반대를 토론 전에 무작위로 정하고, 토론 수업에서도 자신의 실제 의견과 반대 입장을 지정하기도 합니다. 이야기 나누는 순간만큼은 개인의 욕심과 집착, 이해관계를 버리고, 열린 자세로 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토론 과정과 논증 절차에 집중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찬성/반대” 토론에서 우리 가족이 의사라고,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여 무조건 반대하면 안 됩니다. 그 정책의 실효성에 대해 고민해야겠죠.
책에는 다양한 인물이 나옵니다. 그 인물들 속에서 내가 공감하는, 감정이입하는 인물들이 나오기도 하죠. 그렇다고 그 인물과 나를 무조건적으로 동일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족 문제, 연인 문제, 직업 문제 등으로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나의 가치관이 그대로 투영되어 예민해지기도 합니다. 그 예민함이 감성을 풍부하게 해준다면 환영이지만, 날선 모습으로 분위기를 해친다면 주의해야 합니다. 정치적인 문제, 종교적인 문제도 마찬가지고 뜨거운 사회 이슈를 다룰 때도 마찬가지죠. 조금은 거리를 두어야 더 건강한 대화가 진행됩니다.
예를 들어, 불륜이란 소재를 다룬 이야기에서 “불륜은 무조건 나빠! 절대 용서할 수 없어!”라고 확고히 생각해버리면 그 작품의 문학성, 인물의 감정선, 사회적 맥락 등을 놓치기 쉽습니다. 옹호할 수는 없지만 살짝 거리를 두고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었나?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 등의 의문을 던져보는 것이 작품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렇다고 작품의 내용을 무조건 수용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비판할 지점은 명확히 비판할 필요가 있어요. 하지만 그 지점에만 얽매여 있으면 독서토론 자체가 특정 입장에 휘말릴 수 있습니다. 한 장면이, 한 사건이, 한 대사가 너무 불쾌하여서 책 전체를, 토론 전체를 비호감으로 만든다면 큰 손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즐길 것은 즐기는 태도가 유연한 독서토론 마인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쉽지 않지만 훈련해야 합니다.
대표적으로 정치, 종교 문제는 건들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여기에 최근은 페미니즘 이슈도 뜨거운 논쟁거리입니다. 하지만 이 부분을 완전히 도려내고 이야기 나누긴 쉽지 않아요. 누군가는 조금 불편한 주제가 오고갈 수도 있지만, 그래서 독서토론이 의미 있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단순 예능 수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아니니까요. 그러니 넓은 마음과 시각을 유지하도록 노력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