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서사+글쓰기: 도착하는 중입니다

인생 서사에 도착하는 글쓰기-마무리

by 황다은

인생 서사라는 이불을 구성이라는 줄에 9개의 빨래집게를 사용해서 고정했다. 같은 모양의 집게를 사용한 것도 아니고 같은 간격으로 짚은 것도 아니다. 스토리텔링 구성의 9단계를 다음과 같이 상상해 보자. 이불을 정확하게 4 등분해서 큰 빨래집게로 먼저 고정한다. 1막에 빨래집게 1개, 2막에 빨래집게 2개, 3막에 빨래집게 1개. 이렇게만 고정해도 서사라는 이불은 단단하게 줄에 매달려 있을 수 있다. 스토리텔링 구성법을 적용한 글쓰기 워크샵에서 매번 강조하는 구성법 ‘1+2+1’이 바로 이것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포스트잇 4장에 우선 메모할 수 있으면 초고는 어렵지 않게 써진다. 다만, 단순히 4장을 채우는 메모가 아니다. 스토리 기본 원칙 3막 구성에 충실한 4장의 메모를 적는다. 여기에 1막과 2막 사이, 2막과 3막 사이에 가장 강렬한 색상의 빨래집게를 추가한다. 스토리텔링에서 가장 핵심적인 2개의 구성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구성의 9단계에서 나머지 3개는 주인공의 변화를 보여줄 수 있는 지점에 빨래집게를 고정한다. 주인공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결정적 ‘사건’, 새로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달려왔지만 진짜 원하는 것이 맞는지 다시 돌아보는 ‘대전환점’, 진짜 원하는 것을 향해 달려왔으나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 같은 순간에 무너지고 최후의 도전을 하는 ‘클라이맥스’가 그 위치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입고 덮는 스토리는 이불처럼 부드럽고 네모반듯하지 않다. 그래도 어떻게든 9개의 빨래집게로 고정하다보면 그 실체를 가늠할 수 있다. 옷이든 이불이든 빨래 줄에 걸려면 우선 내 몸에서 떼어내야 한다. 우리가 겪은 경험도 나에게서 분리해서 거리를 두고 바라봐야 그 실체를 알기 쉽다. 직접 겪지 않은 일이 아니면 쓰지 않는 작가 ‘아니 에르노’는 말했다. “내가 쓰지 않으면 사건들은 그 끝을 보지 못한다. 그저 일어난 일일 뿐.” 우리가 겪은 일들도 오래 된 빨랫감처럼 잔뜩 쌓여 있으면 본래의 형태와 기능을 알아보기 어렵다. 꺼내어 세탁하고 건조해서 다림질을 해야 정체를 알 수 있다. 나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내 삶의 얼룩을 닦아서 햇빛과 바람에 말리는 작업이다. 이왕이면 구성의 9단계에 맞게 빨래집게로 고정해 보자. 나쁜 기억은 털어내고 좋은 기억을 다시 몸에 걸치는 데 반드시 도움이 된다.


사실상 스토리 이론과 기법에 대한 연구는 그야말로 인간의 경험에 대한 연구나 다름없다. 스토리가 다루는 것은 변화다. 캐릭터 아크가 다루는 것도 변화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스토리를 제대로 구성하는 방법을 이해하기 위해 삶을 연구한다. 그러나 항상 우리가 곧바로 알아차리지를 못하는 것은 스토리의 역학을 연구할 때면 필연적으로 삶 자체도 연구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K.M. 웨일랜드, <캐릭터 아크 만들기> 서문에서


스토리의 3요소(인물, 사건, 배경)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결국 사람이 특정 배경 속에서 결정적 사건을 만나서 어떤 선택과 행동을 하느냐가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스토리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사람의) 성격’이다. ‘성격이 팔자’라는 말은 곧 성격이 인생 서사라는 뜻이다. 타고 나고 길들여진 성격대로 사람은 선택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어떤 배경과 사건이 와도 결국 성격이 같으면 이야기도 똑같은 패턴을 반복한다. 이전과 다른 팔자(이야기)를 만들려면 성격이 바뀌어야 한다. 이전과 다른 선택과 행동을 할 수 있게 변화하고 성장해 가는 과정이 곧 스토리이다. 픽션 속의 인물만이 아니라 우리 삶 안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우리는 곧 우리 인생 이야기의 주인공일 수 밖에 없다. 매번 같은 이야기를 쓰느냐, 반전이 있고 성장하는 이야기를 쓰느냐는 주인공인 자신이 결심하고 선택하고 행동하기에 달려 있다. 스토리텔링 관점에서 ‘주인공답게’ 산다는 것은 삶의 저작권을 확보하고 내 인생 이야기를 창작해 가겠다는 결심으로 나아간다.


창의적이라는 것은 인생의 전 과정을 출생으로 보며 인생의 어떤 단계도 최종 단계로 보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온전히 태어나 보기도 전에 죽는다. 창의성이란 죽기 전에 태어난다는 의미다. 태어나겠다는 마음가짐(이것은 모든 ‘안전’과 망상을 버리겠다는 마음가짐을 말한다)은 용기와 믿음을 요구한다. 안전을 버릴 용기, 타인과 다를 용기, 고립을 참고 견딜 용기다. 성경 속 아브라함 이야기에서 말하는 그 용기, 조국과 가족을 떠나 미지의 땅으로 걸어가는 용기다. 자신의 사고뿐 아니라 감정과 관련해서도 진리 말고는 그 무엇도 신경 쓰지 않을 용기다.
-에리히 프롬,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미지의 땅’은 나의 일상을 뒤흔들 사건이 언제 어디에서든 찾아올 수 있는 미지의 삶을 말한다. ‘미지의 땅으로 걸어 갈 용기’는 삶이 불시에 주먹을 날려도 링 밖으로 도망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자세를 취해보는 것이다. 내 몫의 삶을 용기 내어 살아가는 일이 곧 창작이고 창의성이다. 내 인생 이야기는 누구도 쓸 수 없는 고유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 삶을 더 사랑하는 쪽으로 걸어가면 된다. 내 인생 이야기 전개를 위해 진작부터 기다리고 있던 인물과 사건들을 반기듯 만나러 가자.


생의 정수를 놓치며 살고 싶지 않아서 월든 호숫가 인적 없는 곳에 오두막을 짓고 살아간 소로우가 말했다. “우리는 길을 잃고 세상을 잃은 뒤에야 비로소 자신을 찾기 시작한다. 자신이 있는 곳을 깨우치고, 자신과 세상이 무한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깨닫는다.” 익숙한 길을 잃고 자신을 잃게 만드는 ‘결정적인 사건’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가장 자기다운 자신을 찾기 시작한다. 그 여정이 바로 스토리텔링이다. 살아가는 동안 만나는 순간들을 다시 감각하고 수용하는 과정이다. 내 삶을 구체적으로 사랑하는 방법이다. 한번 뿐인 삶 안에서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생존 기술을 익히는 일이다. 생의 구비마다 길을 잃어도 좌절하기 보다는 새로운 길을 찾는 과정임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더 나아가 자발적으로 길을 잃고 미지의 길 위에 자신을 데려다 놓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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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일이 쉬웠다면, 타고난 재주가 있어 공들이지 않고도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당신은 쉽게 흥미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렵고, 외롭고, 지치고, 부끄러워 때때로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밖에 느낄 수 없는 일,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것 또한 글쓰기라는 사실에 당신은 마음을 빼앗겼다. 글쓰기로 자기 한계를 인지하면서도 다시 글을 써 그 한계를 조금이나마 넘을 수 있다는 행복, 당신은 그것을 알기 전의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최은영, ‘몫’,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글쓰기 또한 미지의 땅이다. 글쓰기 과정도 구성의 9단계에 해당하는 우여곡절을 거칠 수 밖에 없다. 글쓰기가 찬란한 고통인 이유이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9단계를 거쳐 한 편의 이야기를 완성한다면 글을 쓰지 않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찬란한 고통을 달게 마시는 법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실전의 삶에서는 부서지고 무너지더라도 이야기를 통해 다시 태어나는 기술, 스토리텔링을 익혔기 때문이다. 우리 삶은 현실의 경험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이야기를 통해 재구성하는 또 한편의 삶도 필요하다. 이야기 또한 엄연한 삶의 장소이다. 사람들은 서로 이웃해 살아가듯이 서로의 이야기를 오가며 공감과 위안을 얻는다. 타인의 이야기 속에 내 기억과 감정이 머물 수도 있고, 내 이야기 속에 누군가 자신의 삶을 거울처럼 비춰볼 수도 있다. 정답 같은 이야기는 없다. 그저 내 이야기를 하면 된다. 습관처럼 뱉어내던 방식이 아니라 스토리텔링 관점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글로 써보자. 우리가 있어야 할 장소는 멀리 있지 않다. 너무 늦지 않게 당신 인생 이야기에 도착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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