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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tip Nov 25. 2024

산책

산책 좋아하세요? 저는 아주 좋아합니다.


82년 개띠라서 그런가?  하루 중 꼭 한 번은 산책을 한다. 몸이 정말 안 좋은 날을 빼고는 스스로 알아서 밖으로 나간다. 바깥공기를 맡아야 좀 살 것 같으니 안 하고는 못 배긴다. 날씨가 조금 궂어도 꽤 즐기는 편이다. 눈발이 날리고 부슬비가 내리는 정도는 개의치 않고 모자만 뒤집어쓰고 나간다. 내게 가장 이상적인 날씨는 비가 내린 뒤 하늘이 약간의 잿빛인 그런 날이다. 이 날씨는 정말 나를 마법처럼 밖으로 끌어당긴다. 그냥 나는 코를 킁킁대며 이미 운동화 끈을 묶고 있다.


산책을 좋아한다고 하면 보통 돌아오는 질문은 언제 하냐는 건데 별로 따지지는 않는다. 요즘은 직장에서 점심 먹고 삼십 분 정도 걷는데, 살짝 모자란 감이 들어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 한 시간 정도 더 걷는다. 주말에는 아침에 나가기도 하는데 늦잠을 자는 날이 더 많다보니 주말에도 저녁에 나가서 동네 한 바퀴를 도는 날이 많네.


보통 핸드폰만 들고 단출하게 집을 나선다. 근처에 쇼핑몰이 있어서 나온 김에 소소하게 이것저것 사 오기도 한다. 자잘한 물건들로 주머니가 불룩하게 될 때도 많다. 예를 들어 수첩이라던지 딸아이의 머리핀, 립밤 뭐 이런 거다. 내가 저녁에 퇴근해서 걷는 시간에 옆동네에서는 엄마도 비슷한 시간 운동을 하시는데 서로 전화를 할 때마다 어딘가에서 뭘 고르는 걸 귀신같이 아신다. 그리고는 산책을 핑계로 쇼핑을 나가느냐고 진지하게 물어온다. 글쎄 그걸 꼭 구분지어야 하냐고 나는 당연히 되묻는데, 딱히 서로 어떤 대답을 원하지는 않는 그저 그런 엄마와 딸의 무심한 인사로 마무리하곤 한다.


때론 공원을 슬슬 걷기도 한다. 저녁 공원에는 달리기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뜀박질하는 모습을 보면 괜히 내가 뿌듯해진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은 내가 걷는 동안 두세 번쯤 나를 지나치게 되는데 그때마다 마음으로 응원을 보낸다. 같이 뛸 생각은? 음... 아직은 없다. 몇 번 작정하고 러너의 길로 들어서려 했으나 아쉽게도 무릎이 말을 듣지 않아 나는 걷는 사람의 길을 선택했다. 물론 가끔 뛰기도 하지만 결국 몸과 마음의 평화는 걸을 때 느낀다.


산책의 종착지는 보통 서점이다. 사람구경, 옷구경, 다 좋은데 결국 책구경을 하러 간다. 정확히 말을 하면 이미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서점에 들어가 있다고 하는 게 맞을 수도 있겠다. 산책할 수 있는 거리에 대형서점과 중고서점이 함께 있다니! 이건 축복이다. 신간을 둘러보고 잡지까지 본 다음 중고서점에 가서 LP도 보고 옛날 책들을 보면 1000% 만족하는 산책이 된다. 그리고는 언젠가 글에도 썼지만 절대 책을 사지 않겠다는 결심이 무색하게도 책을 하나 집어 들어 이미 계산을 하면서 기분 좋은 한숨을 내쉬곤 한다. 뭐 이런 한숨이라면 계속해서 내쉬어도 되지 않을까.


만약 비가 온 뒤 어떤 여자가 책을 들고 꿈을 꾸듣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다면 아마 나일 가능성이 높다. 그때 만나면 우리 서로 반갑게 인사해요. 그리고 같이 걸어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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