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이 오는군요
지난주 수요일 아침에 남편이 출근하면서 문자를 보냈다. 같은 반 A가 학교 끝나고 자기 집에 놀러 오라고 해서 오늘 놀기로 했단다. 코로나 이후 플레이데이트를 거의 한 적도 없거니와, 미국사람 집으로 가는 건 처음이라 너무 당황스러웠다. 아이 엄마랑 스몰톡을 어떻게 할지 조금 준비를 하고 아이를 데리러 갔다. A의 엄마가 날 보더니 오늘 아이들 플레이데이트 하기로 했는데 알고 있냐고 묻는다. 아침에 약속을 정한 남편이 없어서 살짝 당황한 눈치다.
세 집 건너에 사는 이웃이라서 같이 걸었다. 아이들은 이미 손잡고 재잘재잘 앞서 걷는다. A의 오빠가 수요일마다 플레이데이트를 하는데, 오늘은 본인 집이 비어서 A의 요청을 들어주고 싶었다고 한다. 교실에 자원봉사를 가 보니 꼬꼬가 글씨 쓰기를 너무 잘한다며 칭찬을 하길래 웃으며 고맙다고 답했는데, 도서관에서 보니 A가 발표를 너무 잘하더라고 맞칭찬을 했어야 했다. 이불킥을 해본다. 꼬꼬가 음악시간을 좋아하냐고 물어서 그냥 그런 것 같다고 했더니, A는 음악 선생님을 별로 안 좋아한다며 이제 곧 원래 음악 선생님이 돌아올 거라고 했다. 지금 음악 선생님이 임시인 건 처음 알았다. 실제로 엊그제 음악 선생님이 바뀐다는 공지를 받았다. 이것이 엄마들의 정보력인가.
여름방학엔 뭐하는지 서로의 계획을 얘기하다 보니 집 근처 놀이터에 다다랐다. 꼬꼬가 놀다 가고 싶다고(Yes!) 해서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놀고, A의 엄마는 잠시 폰을 보고, 나는 아이들에게 다가와 인사한 어떤 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아이들과 학교에서 몇 번 그룹 수업을 같이 한 substitute teacher 셨는데 알고 보니 재미교포셨다. 꼬꼬가 아주 스마트하다는 칭찬을 받았다. 미국 사람들은 칭찬부자다. 나도 배워야지.
아이들이 이제 집에 가자고 하는 찰나에 남편이 나타났다. 휴, 이제 A네 집에 가도 될 것 같다. A의 엄마가 아이들한테 스낵으로 gold fish 주려고 하는데 괜찮냐고 물었다. 아이들 알레르기에 대해 이야기 한 뒤 남편이 물었다. 우리는 한국사람들하고만 집에서 플레이데이트를 했는데 항상 부모가 같이 한다, 미국 문화를 잘 몰라서 묻는 건데 너희는 어떠냐고. 그랬더니 아이만 보내면 되고, 큰 애를 픽업하러 가야 해서 3시쯤 꼬꼬를 너네 집에 데려다줄 테니 연락처를 달라며 남편번호를 받아갔다. 오, 엄마 번호를 받아가지 않고 더 친한 아빠 번호를 받아가는 좋은 문화!
아주 이상한 기분이었다. 아이가 혼자 남의 집에 가서 논 건 처음이다. 한 번도 아이를 누구한테 맡겨 본 적이 없어서 뒤도 안 돌아보고 A네 집으로 들어간 아이가 조금 낯설기도 했다. 우리만 그런 줄 알았는데 여기 사람들도 부모가 안전한 사람이라고 판단이 돼야 플레이데이트나 슬립오버를 보낸다고 한다. 서로 어느 정도 파악이 된 후라 부모 없는 플레이데이트가 시작된 건데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나 보다. 남편도 일이 손에 안 잡힌다고 해서 둘이 식탁에 앉아 3시가 되길 기다리며 수다를 떨었다.
3시가 되자 A의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 아이들이 무얼 하고 놀았으며 어떤 간식을 먹었는지 다 설명해 주더니 꼬꼬를 A와 놀게 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오, 나도 나중에 우리 집에서 플레이데이트 하면 이렇게 설명해 줘야겠구나. 또 하나 배운다.
아이들은 다음 날 가서 플레이데이트 약속을 또 잡았다. 이번엔 우리 집에서. 집에 누가 오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청소하는데 삼일이나 품을 들였다. 결국 2층은 포기하고 1층만 열심히 치운 다음 아이에게 1층에서만 놀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다시 수요일. 드디어 아이들이 도착했다.
난 그냥 식탁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아이들이 전~혀 나를 찾지 않고 놀기 때문이다. 플레이데이트가 이렇게 편한 것이라니. 보통은 엄마들이 모여 계속 대화하고 짬짬이 아이들 요구사항 들어주고 정신적 소모가 꽤 큰 활동이었는데 말이다. 내가 한 일이라곤 아이의 유창한 영어에 대한 경탄과 간식 준비가 전부다.
3시 반에 A를 데려다 주기로 했는데 A의 오빠가 동생을 데리러 왔다. 동네 친구라 이런 게 가능하구나. 꼬꼬는 10분 논 거 같은데 왜 벌써 집에 가야 하냐며 서운해했다. 부모를 통해 사귄 친구가 아니라 온전히 자기와 맞는 친구라서 더 좋아하는 것 같고, 부모보다 친구가 중요한 나이로 접어들고 있는 것도 같다. 몇 분 뒤 A가 너무 즐거워했다며 A의 엄마로부터 문자가 왔다. 뭐 하고 놀았고 뭘 먹었는지 얘기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어쩔 수 없이 남편이 문자로 전달하겠군. 아이 신나.
빅 걸들의 플레이데이트, 차암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