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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거기에 그녀들이 있었다

우리의 비밀 정원으로.

by 이대영

어떤 계절은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 법이지만, 바람이 유독 차가운 날엔 따스한 햇살이 내려 쬐어도 여전히 겨울 같다. 그렇게 계절의 혼란 속에서, 나는 그녀들을 만났다. 대부분은 내 곁에 있는 평범한 여인들이다. 그들은 내게 삶의 조각들을 조용히 건네주었다. 커뮤니티 안에서 나눈 그녀들의 이야기 역시 같은 것이었다.


그녀들은 언제나 조용했다. 말을 아꼈고, 잘 웃었고, 그렇지만 속마음은 잘 드러내지 않았다. 상처받아도 내색하지 않았고, 울고 싶어도 울지 않았다. 지친 일상 속에서도 고단함을 겉으로 보이지 않았다. 아침이면 일찍 눈을 떠 화장을 하고, 불편한 구두를 신은 채 길을 나섰다. 어디서든 아무 일 없는 듯이 보이려고 했고, 때로는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타인을 이해하려 했다. 그로 인해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말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가지자, 그녀들 안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과 설명되지 않는 많은 사연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것이 그녀들만의 '비밀 정원'이라 생각했다. 그곳에서 그녀들은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조용히 피기도 하고, 시들기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곳은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않는, 밖에서는 결코 보이지 않는, 오직 자신들만의 공간이었다. 그녀들이 아니고는 들어갈 수 없는, 그곳은 아주 오래전부터 가꿔온 마음의 정원이었다. 그녀들은 그곳에 자신들의 꿈을 묻어 두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 멀리서 지켜봤던 사람, 이미 내 곁을 떠난 사람의 이야기를 묻어 두기도 했고,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의 감정을 숨겨놓기도 했다. 정원에는 풀이 많이 자라나 있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은 탓에 수풀이 무성했다.


이 책 《우리의 비밀 정원으로》는 그녀들의 마음속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스스로조차 외면했던 감정들, 말하지 못했지만 혼자 수없이 되뇌었던 생각들, 말하지 않으면 터져버릴 것 같은 감정들, “괜찮다”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괜찮지 않았던 이야기들. 다시 꺼내기엔 용기가 필요한 말들. 그 모든 것을 조용히 품고 살아가는 그녀들의 ‘여림’에 대한 고백이다.


《하이힐이 벗겨져도 달리는 아내》 이후, 10년 만에 다시 그녀들의 이야기를 썼다. 나는 그 정원의 담장에서 “잘 견뎌내셨습니다”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며 자신의 감정은 늘 뒤로 미뤄둔 채, 어느 순간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조차 잃어버린 그녀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위로는, 그녀들의 정원에 찾아가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었다.


이 글들을 통해, 자신 안에 있는 정원을 보게 되기를 바란다. 몰랐지만 살아 있는 감정들, 말하지 못한 오랜 상처와 슬픔, 그리고 사랑. 그것들이 이 글 속 이야기들과 부딪혀 꽃망울을 터뜨리며 바람에 날리는 민들레 꽃씨가 되기를 바란다.


비 내리는 여름, 정원에서


# 1권 프롤로그와 같은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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