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겨울꽃 Oct 21. 2023

다시 시작, 그리고 꿈꾼다.

몽상가라 할지라도

  말구조보호센터를 다녀온 후, 말을 타기 위해 다른 승마장을 찾았다. 후기를 보니 말들을 소중히 다루는 곳이라고 했다. 살아있는 동물 등에 올라타는 것이다 보니, 소중히 아껴주는 곳에서 타고 싶었다. 승마장 근처 오름을 걷는 외승(야외에서 타는 것) 코스라 기대감도 컸다.     


  차를 타고 승마장에 도착했다. 익숙한 듯 낯선 향과 풍경이 긴장감과 함께 설렘을 주었다. 울타리 안에 말 한 마리가 바닥에 떨어진 건초를 먹고 있었다. 반가워서 가까이 다가갔다. 울타리 밖에 떨어져 있는 건초 부스러기를 먹기 위해 힘들게 얼굴을 내밀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부스러기들을 주워 안으로 넣어 주었다. 당근이라도 챙겨 오는 건데, 그날따라 생각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간단하게 예약확인을 하고 말을 배정받았다. 말의 이름은 ‘스타’였다. 10년 넘게 사람을 태운 순한 말이라고 했다. ‘이름을 보니 한때는 경주마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말을 좋아해서 제주도만 오면 말을 타러 다닌다는 초등학생 여자아이 두 명이 함께 했다. 성인이 나뿐이라 쑥스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10년 만에 말을 탄다는 사실에 긴장과 설렘이 더 컸다.      


  나이가 있어 보이는 희끗희끗한 털을 가진 말을 탄 여자아이가 앞에 서고 내가 두 번째로 따라나섰다. 앞말을 끌며 방향을 잡아주는 분과 ‘스타’와 뒷말을 봐주는 한 분. 이렇게 직원 두 분이 함께했다.     


  승마장 앞에 도로를 건너 숲길에 들어섰다. 전날 비가 왔는지 나무도, 바닥도 모두 젖어 있었다. 이런 날은 말들도 미끄럽다며 주의하라고 하셨다. 길이 많이 미끄러운 듯 자주 휘청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말은 다리가 네 개기 때문에 한 발이 미끄러져도 중심을 잘 잡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힘들게 하는 것 같아서 미안했다. 미안한 마음에 고삐를 잡은 팔에 힘을 풀었다. (안전을 위해서 고삐는 제대로 잡아야 한다.) 


  ‘스타’가 걸어가며 옆에 있는 풀을 뜯어먹는다. 그 모습을 본 직원분이 “풀 뜯어먹지 못하게 고삐를 잘 잡으세요!”라고 외친다. 그 소리에 얼른 고삐를 고쳐 잡았다.     

  “사방에 좋아하는 풀이 가득하니 정신 못 차릴 거예요. 고삐를 제대로 잡지 않으면 고개가 계속 돌아갑니다.” 직원이 말했다.

사방에 좋아하는 풀이 가득한데 먹지 못하고 억지로 가야 한다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승마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직원에게 물었다. “말은 사람을 태우는 걸 좋아할까요?” 답은 이미 예상하였지만, 전문가에게 확인하고 싶었다. “좋아할 리가 있나요? 자기 등에 무엇인가 올라간다는 것이 좋을 리가 없죠. 처음 사람을 태울 때 보면 난리가 납니다.” 예상한 답변이었지만 확인하고 나니 ‘스타’에게 더 미안하고 태워주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일해야 밥도 먹고 쉬기도 하는 거죠. 하하” 직원의 말이 이해는 되면서도 마음은 불편했다.

말을 타겠다고 와서 이런 이중적인 생각을 하는 것도 우스웠다.


  ‘스타’는 외승 코스가 끝날 때까지 앞만 보며 걸었다. 그렇게 정해진 역할이 끝나서야 자신들의 방인 마방으로 들어갔다. 사람을 태운 수고의 대가로 건초와 물을 줬다. 그리고 승마장에서 준비한 당근을 간식으로 받았다.     


  ‘스타’에게 당근으로 생색을 내는 나 자신이 참으로 우스웠다. “태워줘서 고마워. 스타. 정말 고마워.” 내 말이 너무 형식적이었는지 스타는 무심히 당근만 받아먹고 고개를 돌려 건초를 먹었다.    

 

  그날 승마장을 떠나며 많은 생각을 했다. 말을 좋아하고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리는 것이 나의 꿈이지만. 말의 의사와 상관없이 올라타는 것만이 말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사실이 슬펐다.   

   

  말을 타기 전에 말과 친해지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한 시간 태우고 몇만 원 받는 것이 태우는 사람도 타는 사람에게도 효율적인 방법이겠지만,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나처럼 말이라는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말을 먹이고 씻기고 빗질해 주고 만져주고 방을 청소해 주는 것을 더 원하지 않을까. 나는 그렇다. 


그렇게 충분히 서로에게 길들여지면 (어린왕자에서 여우가 말한 것처럼) 감사하게 올라타는 것. 

내가 너무 몽상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꿈꿔본다. 말이 사람을 태우는 수단이기 전에 함께 사는 동물로 존중받는 날을. 사람을 태워주는 고마운 존재로 인정받는 날을 말이다.     

그래서 글을 쓰려고 한다. 말의 이야기를. 

말이 얼마나 멋지고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알리고 싶다.     


출처 : 게티이미지(무료)


이전 09화 ‘반려마’라는 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