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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꽃 Oct 21. 2023

숨겨진 이야기

알아야 하는 이야기

  꿈을 찾아 떠나겠다며 호기롭게 (힘들게) 들어간 대기업을 퇴사하고 도전했다가 실패한 후로 말에 대한 모든 것을 잊고 살았다. 그렇게 인생을 호되게 경험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며 ‘내가 좋아하고 사랑했던 말’이란 존재는 잊혔다. 아니, 잊었다고 믿었다. 그동안 애지중지 모았던 말 상품(인형, 피규어, 공기주머니를 누르면 앞으로 나가는 점핑말 장난감까지 등등)들까지 정리했으니 정말 내 안에 남아있던 작은 불씨조차 꺼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올해 글을 쓰면서 나의 진정한 모습을 찾게 되니, 말에 대한 애정이 마음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애정의) 불이 확 타오르게 된 계기는 우연히 보게 된 다큐멘터리였다. 


  다큐ON(KBS 1TV) “남훈 씨의 각별한 말 사랑”  

    

  제주도에서 경주 퇴역마나 아픈 말 같이 사연이 있는 말들을 데려다가 자유롭게 방목하며 키우는 김남훈 씨의 ‘곶자왈 말구조보호센터’ 이야기였다. 울타리가 없는 숲 속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다가 밥 먹을 때가 되면 남훈 씨를 졸졸 따라다니는 말들. 배부르게 먹고 편하게 누워 잠든 말들 사이로 남훈 씨도 함께 누워 낮잠을 자는 모습을 보는데,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배불리 먹고 행복하게 자는 모습이 너무 예쁘다.” 

“편안해 보여. 나도 같이 눕고 싶다.”

“보기만 해도 좋다.” 

“맞다!” 

“나 말을 좋아했잖아. 아니, 좋아하잖아. 애마인 이라고 말하고 다닐 만큼.”     


  머릿속 생각들이 마구 튀어나왔다. 얼굴이 상기되는 것을 느꼈다. 기억을 잃었다가 사랑하는 이를 만나고 기억이 돌아온 기분이라고 하면 정확할까? 영상을 보는 내내 흥분된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내용이 훈훈하고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남훈 씨가 데리고 온 말들은 하나같이 사연이 있었다. 

  제주 경주마로 태어나 자란 막시무스는 3살 때 제주 경주마의 선발 기준(키 137cm)을 넘어 불합격되면서 도축 명단에 올라갔던 말이다.      


  퇴역 경주마 출신인 8살 천둥이는 사람을 자꾸 낙마시켜 다섯 곳의 승마장을 전전하다 도축 직전에 구조된 말이다. 천둥이는 복대 근처 부위가 예민해서 복대가 자극을 주면 간지러워서 치워달라고 차는 행동을 보였던 것이었다. 남훈 씨는 천둥이의 예민한 부위를 자주 만져주며 자극에 익숙해지게 해주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사람을 전혀 낙마시키지 않는단다.      


  2억 6천9백만 원 상금을 벌었다던 7살 스노우는 너무 많이 달린 탓에 발굽이 터졌다. 경주를 못 뛰게 되니 버려졌다는 것이다. 스노우는 이곳에 와서 일 년을 보내고 나서 자연스럽게 회복되었다고 한다. 


  사연을 들으니 내가 만났던 말들이 떠올랐다. 승마장에는 경주마 출신들이 많았다. 경주마로서 가치를 다하면 승마장에서 사람을 태우거나 불법 도축으로 사라지게 된다는 이야기를 승마장 직원에게 듣기도 했었다.      

  사람을 태우다가 등이 주저앉았는데도 사람을 태우고 있던 말도 보았다. 그때 승마장 직원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더 이상 사람을 못 태울 정도가 되면 도축장으로 보내질 거예요.” 


  승마장에서 만난 말 대부분은 사람을 태워서 돈을 버느냐 못 버느냐에 따라 가치가 매겨졌고 관리도 그에 따라 달라졌다. 사람을 태우지 못하면 바로 정리되어야 할 존재가 되는 것이다.     

  말로만 들었을 때는 와닿지 않았는데. 알면서도 외면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 반성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다큐멘터리 영상이 끝난 후에도 여운은 오래 남았다. 그 뒤로 ‘말구조보호센터’ 영상들을 모두 찾아보았다. 이미 유명한 곳인지 영상이 많았다. 이때부터 나에겐 하나의 목표가 생겼다.      


  ‘이곳은 꼭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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