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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꽃 Oct 21. 2023

말과 하나가 된다는 것. 2

구름을 탄다는 것

  경속보 다음은 구보다. 구보는 경속보보다 빠른 보법이다. 승마의 장애물 경기나 마장마술을 보면 자주 볼 수 있는 빠른 걸음걸이라고 할 수 있다.      


  속보가 총총총 뛰는 느낌이라면 구보는 다그닥다그닥 리듬을 타는 느낌이다. 구보하는 말의 다리를 보면 그렇게 멋질 수가 없다. 말의 움직임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보법이다. 구보는 승마의 꽃이라고도 하는데 제대로 타면 구름을 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경속보가 익숙해지고 넓은 운동장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이게 되면서 구보를 배우게 되었다. 구보는 좌속보처럼 엉덩이가 떨어지지 않게 유지하면서 말의 리듬에 맞춰 골반이 부드럽게 움직여야 한다.      


  처음 구보를 시도했을 때는 낯선 속도감에 무서웠다. 속보상태에서 구보로 갈 때는 속도를 한 단계 올린 느낌이라면 걷다가 구보로 달릴 때는 급발진하는 느낌이 들어 몸의 중심이 흔들리곤 했다.      


  그날은 겨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승마동호회 정모가 끝나고, 사람들과 함께 용인에 있는 승마장으로 갔다. 기업에서 운영하는 연수원 같은 곳이었다. 말에 애정이 깊은지 마방도 깨끗하고 말도 좋아 보였다. (말의 외적인 상태를 보면 관리가 잘 되고 있는지 아닌지 예측할 수가 있다)      


  선생님께서 구보 초보자라는 말에 늙고 순한 말을 배정해 주셨다. 선생님이 승마선수 시절에 함께 경기에 나갔던 말이라고 했다. 몇 년 전에 마차를 끌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바로 데리고 왔다는 설명도 붙이셨다. 이야기만 듣는대도 머릿속에 선생님과 말이 만나는 장면이 감동적으로 그려졌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평소에 만났던 말과는 달리 애틋하게 느껴졌다.      


  “이 말 순한 가요?” 구보 초보자의 두려운 첫마디에 “그럼!”하고 단호하게 대답하던 선생님 말씀처럼 말은 움직임도 조용했다. 몸풀기 평보와 경속보를 끝내고 드디어 구보를 시작했다.      


  ‘아니, 왜 이렇게 부드러워’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구보는 구름을 타는 기분이라고 했던 말의 뜻을. 구름을 타는 기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정확하게 답하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내 식대로 표현해 보자면 경속보에서 느꼈던 느낌은 격동적인 음악에 맞춰 완벽한 춤을 추는 기분이라고 한다면, 구보에서 느꼈던 합은 미끄러지듯 부드러운 클래식 음악 선율에 내 몸을 맡긴 기분 같다고 해야 할까. 너무 부드러워서 말을 타고 있는지조차 잊게 되는 기분이었으니까.      


  지금도 가끔 그때를 생각하면 신기한 기분이 든다. 선수용일 만큼 좋은 말이라서 그랬던 건지, 나이가 들어서 노련해진 것인지, 나와 합이 잘 맞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느꼈던 구보는 평생 잊지 못하고 있다. 그 뒤로도 몇 번 그 승마장에 갔지만 다시 만나는 행운은 오지 않았다.      


  두 순간을 떠올리다 보니 그때의 말들이 생각나고 그리워진다. 그 순간, 그 말들도 나와 같은 기분을 느꼈을까? 온전히 같은 기분은 아니었다고 해도 조금이라도 좋은 순간이었기를 바란다. 자신을 통제하려는 등 위의 낯선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통했던 한 팀으로 느꼈기를 간절히 바란다. 


출처 : 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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