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기 위해 호주 애들레이드(Adelaide)에 살고 있는 조카가 시드니로 날아왔다. 세월이 어찌나 빠른지 그녀는 벌써 중년이 되어있었다. 우리는 함께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취해보자며 시내로 갔는데 'Boxing day' 행사가 한창이었다. 수많은 인파들 사이를 걷고 있는데 거대한 동상이 보였다. 가까이에서 보니 빅토리아 여왕이었다. 그리고 여왕의 빌딩(Queen Victoria Building)도 있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호주의 역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여왕의 빌딩은 빅토리아 여왕 즉위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스코틀랜드에서 시드니로 이주한 건축가 조지 맥레이(George McRae)에 의해 설계(1898)되었다. 여왕이 호주를 방문하는 동안 궁전으로 사용되었는데 현재는 명품 매장이 즐비한 백화점이다. 이탈리아 출신이지만 프랑스에서 성공한 세계적인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Pierre Cardin)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백화점’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건축물의 가장 큰 특징은 지붕 중앙에 대형 쿠폴라와 함께 마치 왕관을 나란히 진열해 놓은 듯 20 개의 작은 쿠폴라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된 점이었다. 열주라고 하는 기둥 사이로 긴 아치형의 창문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도 산업혁명 시대에 건축붐이 유행처럼 번졌던 빅토리아 시대를 그대로 느끼게 했다.
우리는 백화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웅장한 내부가 한눈에 들어왔다. 1층부터 3층까지 툭 터진 벌룬(balloon) 공법으로 고가 높은 천장의 채광창을 통해 빛이 자연스럽게 들어오고 있었다. 실내는 화려하면서도 빛이 비취고 있어서 아늑하게 보였다. 중앙에 길게 드리운 인상적인 대형 시계와 더불어 19세기 나선형 계단 앞에 서니 여왕의 궁전에 초대받은 귀족이 된 듯 기분 좋은 착각마저 들었다. 엔틱풍 스타일로 꾸며진 명품 매장 사이를 귀족 부인 흉내를 내며 우아하게 걸어보니 제법 로맨틱한 분위기에 취하는 듯했다. 그러다 한 매장 안으로 들어갔는데 화려한 파티에 입을 옷들이 즐비했다. 친구가 없고 누군가와 쇼핑을 해본 적이 별로 없던 나는 그저 신이 났다. 그리고 어떤 힘에 이끌리듯이 딱 한 가지 화이트칼라의 민소매 드레스를 골라서 입어보게 되었다. 하얀색과 민소매 옷은 기피 품목으로 한 번도 입어본 적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끌렸다. 옷을 갈아입고 보니 거울 속에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서있는 듯했다.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다. ‘마술 거울인가?’ 옷이 날개란 말이 틀린 말이 아닌 듯했다.
조카하고 정말 오랜만에 만난 터라 반가웠다. 나이 차이가 4살 밖에 나지 않아서 어찌 보면 친구처럼 지낼 수도 있는 사이였다. 조카는 중년의 고달픔에 대해서 토로했고, 내일 이혼하는 친구가 있는데, 축하해주러 갈 거라고 했다. 세상에! 이혼을 축하해주는 시대가 되었다니 격세지감을 느꼈다. 친구처럼 몇 년은 놀 수 있는 분량을 하루에 다 놀아본 것처럼 즐겁게 보냈다. 오페라 하우스에 들린 후에 식사도 하고 페리를 타고 모스만 일대를 한번 더 다녀왔다. 마침 비가 내렸는데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포만감이 차올랐다.
시드니 다운 타운은 걸어 다녀도 충분히 괜찮았다. 달링하버로 건너와 저녁밥을 먹고 나오다가 또 드레스 매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곤 홀린 듯이 안으로 들어가 코랄 칼라의 드레스를 골랐다. 물론 평소에 좋아하는 색이 아니고 입어본 적도 없는 스타일이었지만 가지고 싶은 충동을 주체할 수 없어 구입했는데 이상한 끌림이었다. 아우라 여행 때 쓰면 되겠다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와 조카가 매장에서 찍어준 사진을 보곤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2개의 각기 다른 드레스를 입고 사진 속에 있는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내가 이렇게 예뻐?" 너무 믿기지 않아 혼잣말을 했다. 처음으로 내가 여자로 보였다.
칼라는 에너지다. 내가 어떤 순간에 어떤 칼라를 선택했다면 그것은 현재 내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이거나 혹은 자기 자신, 혹은 정체성, 혹은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화이트칼라는 세라피스 베이(Aura Soma B54)로 눈물을 자극함으로 영혼을 정화시킨다.
눈이 짓무르도록 울었던 이유가 있었던 거다. 내가 인정하지 못하더라도 나는 황소자리로 물질세계를 대표하는 지구의 요소를 지녔다. 지구의 요소는 단단하고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고집이 세다는 말을 듣는다.
54번 '세라피스 베이'의 다른 말은 눈물이다. 그 눈물은 나를 정화시키고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 처음에는 슬픔의 눈물이지만 과거를 떠나보냄으로 고통을 사라지게 만드는 치유의 눈물인 것이다.
연금술 적으로 보면 지구와 물은 반드시 만나야 한다. 단적으로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논이라는 하는 지구에 물이 들어와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물과 지구는 상호 호환성이 잘된다. 서로를 필요로 한다. 지구(사람)에게 물이 부족하면 책임감이 강하고 신중하지만 부드럽지 않고 딱딱하고 마음의 빗장을 잘 풀지 않고 일하는데 모든 시간을 쓰느라 남의 말을 들어줄 여유가 없다. 그래서 그랬나 보다. 실패했던 결혼생활에서 남편에게 요점만 간단히 하라고 핀잔을 주곤 했다;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정서장애의 요소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물이 필요하다. 물은 정서적 측면으로 감성, 공감, 이해, 수용의 에너지다. 그래서 물이라는 요소와 만나면 지구는 훨씬 부드러워진다.
반대로 물은 지구가 꼭 필요하다. 물이 너무 넘치면 중심이 없어서 자주 흔들리고 한번 감정의 홍수에 빠지면 홀로 헤쳐 나오기 쉽지 않다. 그래서 우울증에 가장 많이 걸리는 사람들도 과도한 물의 양이 한몫을 한다. 하지만 단단한 지구라는 요소를 받아들이면 중심을 잡게 된다. 무조건 희생하던 패턴에서 벗어나 공감하되 덜 치우치게 되고 이타적이되 자기 입장도 생각하게 된다. 무엇보다 희생자 역할을 하던 습관에서 벗어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고 스스로를 보호할 줄도 알게 된다. 지구로부터 배울 수 있는 점이다.
또한 두 번째 코랄 칼라는 오라소마 105(Aura Soma B105) 번으로 카르마를 해체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한쪽에 치우친 불균형의 여성성과 남성성을 통합시킨다. 칼 융의 분석심리학 용어 중에 남성 속의 여성성을 아니마(AMINA)라 하고, 여성 속에 남성성을 아니무스(ANIMUS)라 부른다. 그래서 인간은 엄밀히 말하면 양성을 가지고 있다. 아니마의 긍정적인 특성은 이해, 자애로움, 수용과 공감이고, 아니무스의 긍정적인 특성은 사고력, 의지력, 결단력, 용기, 책임감으로 대표된다.
두 개의 특성이 골고루 혼합되고 통합된다면 그 사람을 균형 잡힌 사람이라고 불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그것은 집안 대대로 세대 전수되어 내려오는 유전자라 불리는 카르마 때문이다. 105번 휴 코랄 칼라는 옐로와 레드가 결합된 오렌지가 메인 칼라다. 오렌지는 관계의 충격으로 생긴 상처를 의미한다. 관계성의 칼라이기도 한 오렌지는 알고 보면 안으로 상처를 많이 받아 군데군데 피멍이 들어있기도 하다. 그 오렌지 위에 한번 더 레드가 더해진 것이 휴 코랄이다. 그러니 얼마나 레드가 강렬하겠는가. 그 레드의 힘 각성으로 카르마를 해체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성장과정에서 경험된 오렌지의 충격, 흡수된 상처로 인해 한쪽에 치우쳐버린 에너지나 특성들을, 반대편의 에너지도 함께 끌어올려 서로 균형이 잡히도록 도와준다. 그러니 휴 코랄 드레스가 나에게 온 것은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네 상처가 치유되었으니 이제 여성성을 회복하고 균형을 잡으라!
여행 중에 우연히 만나게 된 두 벌의 드레스가 나에게 알려준 것이 너무 귀하다.
껍데기를 깨고 자기 개성화의 길을 걸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