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 납치할까요?"
긴 여행이 마쳐지고 있었다. 이제 리스본을 거쳐 아프리카로 가는 일정만 남아 있었다. 바마코를 가기 위해서는 마드리드에서 곧장 갈 수도 있지만 일부러 리스본에서 경유하는 노선을 선택했다. 그것은 포르투갈 출신의 시인 ‘카몽이스’의 시 한 구절 때문이었다. 그의 “여기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는 말은 이상하게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는데 도대체 그곳이 어디 이길래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고 하는지 정말 궁금했다.
이상하게 이 날은 '마젠타'칼라에 끌려서 산티아고에 있는 한 가게에서 구입한 티셔츠를 챙겨 입었다. 마젠타 칼라는 ‘신의 신성한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작은 것에 감사하면 더 큰 축복의 문으로 인도해준다고 한다. 리스본 공항의 첫인상은 깔끔하고 세련되어 보였다. 짐을 줄인다고 보조가방을 가져오지 않았더니 불편해서 하나 구입하기로 했다. 마젠타 칼라의 ‘꽃 자수’가 있어서인지 바로 끌렸다. 그리고 계산대 옆에 있는 마젠타 칼라의 귀걸이가 눈에 들어와 함께 구입했다.
너 오늘 사랑이 오면 받을 거야?
가격이 저렴(7유로)해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당장 귀에 걸어보는데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이 들렸다.
“응?"
“응! 그럼 받을 거야!"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한 대답이 튀어나와서 놀랐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택시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우리를 발견하고 한 사람이 가까이 왔다.
택시기사는 우리가 ‘호까 곶’에 다녀오기 원한다는 얘길 듣고는 왕복 60유로 해 줄 테니 타라고 했다. 초행길에 이게 웬일인가! 마음에 들었다.
기사는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신트라(SINTRA)’에 들려서 가자고 제안을 했는데 그것은 의외의 보너스였다. 1시간 정도의 여유시간을 주어 점심식사도 하고, 여기저기 상점들도 들려볼 수 있었다. 신트라는 정말 아기자기하게 아름다웠고 유럽의 느낌이 물씬 올라오는 것이 여행의 기분을 제대로 복 돋웠다. 포르투갈에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인지 모로코 느낌이 많이 묻어났다.
그리고 도착하게 된 ‘까보 다 로까(CABO DA ROCA)’. 진정한 땅 끝에 도착하게 되었다.
포르투갈이란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는데 “여기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는 그 말이 왜 이리 마음을 울리는지 한 번도 잊지 않았다. 언젠가는 반드시 와보리라 했는데 도착을 하고 보니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바닷바람이 장난이 아니게 불어왔다. 어찌나 강렬한 지 두건이 날아갈까 봐 손으로 붙잡고 다녔다.
약 1시간 정도 호까 곶에서 시간을 보내고 아프리카에 가져갈 가공식품(햄, 소시지, 참치 등)을 사기 위해 공항 근처 슈퍼마켓에서 들렀다. 키다리 아저씨가 준비해주신 천사가 우리를 너무 잘 리드해주었다. 세상 모든 식료품이 구비되어 있는 듯한 대형 슈퍼마켓은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했다. 그리고 친절한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말했다. 그냥 그런 말이 툭 튀어나왔다. 왜 그런 말을 하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리스본이라면 유럽에서 살 수 있을 것 같아
아프리카 바마코에 가기 위해서는 카사블랑카에서 한번 경유를 해야 했다. 혼자 여행할 때는 화장실이 가까운 뒷자리를 즐겨 앉곤 했는데, 그날은 예약을 담당한 신영이 앞자리 괜찮냐고 묻는데 "그래, 이번에는 그렇게 하자!"라고 흔쾌히 맡겼었다. 그렇게 해서 내 여행에서 자주 일어나지 않는 앞자리에 앉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영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벌써 옆자리 남성과 대화를 시작한 것 같았다. 나는 이것저것 세팅을 하고서 눈을 감았다. 벌써 여행을 시작한 지 2주가 지나고 있었다.
잠시 후, 신영이 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소장님! 이 분이 동양 여성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어머! 이 분이 소설 가래요.” “싱글이래요.” “사별한 지 5년 되었대요.” "포르투갈에는 엄마와 동생 가족이 살고 있고 자신은 브라질에서 살고 있는데 15살 딸이 한 명 있대요." “어쩌면 좋아요. "이분 나이가 소장님 보다 7살이나 연하네요.” “소장님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요.” 그녀는 동시통역사처럼 즉시즉시 정보를 전달했다. '사별', '싱글', '소설가'. 그 세 단어가 마음에 들어왔다. “그래? 그럼 내가 몇 살로 보이는지 물어봐” 작게 말했다. 잠시 후, “어머! 어머! 56살로 보인대요.” “헉;;; 뭐라고?" "기가 막혀!" "됐다고 전해!" 실망되고 기운이 빠졌다. 내가 철없게 느껴졌다. 진인은 무슨 진인. 정신 차려 정신!!
말은 그렇게 해놓고 나는 의식과 반대로 슬그머니 일어나 화장실로 가서 옷매무시와 화장을 고치고 두건까지 쓰고 나왔다. 그리고 한번 더 자리를 바꾸자고 한 신영의 말을 밀어내지 않고 옆자리로 가서 앉았다. 가까이에서 보니 눈이 참 선하게 보였다. 눈인사를 하고 머쓱해져서 질문을 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가장 중요한 일은 글을 쓰는 일이고, 지난 5년 간 글을 쓰면서 너무 행복했다고 했다. 예전에는 금융 관련(회계사) 일을 했지만 글을 쓰는 동안 자신이 얼마나 행복해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오! 나도 그러는데 신기해.' 그가 가방에서 원고를 꺼내어 보여주는데 최근에 완성한 것이라고 했다. 두 달 구상하고 한 달 만에 마무리를 짓고 이제 브라질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했다. 정성껏 쓴 원고를 만져보는데 따끈따끈한 기운이 종이에 그대로 묻어있는 것이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또 그렇게 한 사람의 동일한 아픔과 상처를 지닌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
사별의 아픔을 글쓰기로, 고통과 슬픔과 외로움을 글로 승화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믿을만하지 않을까 마음이 놓였다. 같은 상처(사별)를 가지고 풀어내는 방식(글쓰기)이 같은 사람을 비행기 옆자리에서 만난다는 것이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그에게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촉촉해진 마음에서 진심이 나왔다. "당신은 인생의 승리자입니다”라고. 엄지 척과 함께 지지를 보냈다. 그는 처음 보는 동양인 여자가 보내는 '빅터(Victor)'라는 말에 감동을 받은 듯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 G메일 주소를 교환했다. 내릴 준비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걷는데 누군가 뒤에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소장님 저희가 이 분을 붙잡을까요?” “함께 카페라도 갈까요?” 그들은 내 맘을 모두 읽은 듯했다. 그리고 그를 포위하듯 감싸고 우르르 카페로 몰려갔다. 그리고 아프리카에 도착한 다음 날 나의 페이스북 계정을 찾을 수 없다며 그의 메시지가 신영에게로 왔다.
그녀, 어디에 있어? 내 목소리 들려?
너무 멀리 가지 마! 나를 잊지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