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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금술 스토리텔러 Oct 19. 2022

영국 세븐 시스터즈(Seven Sisters)

바람의 언덕을 가다 

목성 여행의 시작 

브라질에서의 3개월 체류기간이 끝나는 마지막 날 또 다른 여행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여행지는 영국 브라이튼에 있는 바람의 언덕으로 더 많이 불리는 세븐 시스터즈(Seven Sisters Cliffs)다. 영국 남동부 이스트 서식스(East Sussex)에 있고 영국 해협을 따라 기다랗게 이어지는 7개의 흰 절벽이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모양이 특이해서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고, 영국에서도 추천 여행지 1순위에 들어갈 만큼 유명한 곳이다.


세븐 시스터스(Seven Sisters Cliffs)


바람의 언덕이 있는 영국 브라이튼에 가기 위해서는 포르투에서 비행기를 환승해야 하는데 출발이 지연되는 탓에 시간이 빠듯한 상태가 되었다. 기내에서 내려 통로를 빠져나오니 마침 여승무원이 개트윅 간다는 팻말을 들고 런던을 외치고 있었다. 일단 안심을 하고 그곳으로 갔다. 그런데 한 남자가 나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무슨 일이지?" 의아했다. 승무원을 주축으로 모인 사람들은 이동을 시작했고 큰 문을 열고 나가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이 갑자기 혼잡스럽게 느껴졌다. 


여기가 맞는가 싶어 두리번거리니 아까 그 남자가 빨리 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앞장섰는데 아마도 이 구간을 자주 다녀본 듯 아주 여유 있게 리드했다. 덕분에 곧장 비행기를 갈아탈 수 있었다. 만약 그가 아니었다면 제시간에 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기내용 가방이 조금 크다(아슬아슬한 크기)며 꼬투리를 잡는 승무원에게 잡혀 곤란할 뻔했는데 그의 유연한 소통능력 덕분에 무난히 프리패스를 했다. 그는 목성 여행의 첫 번째 천사였다. 


어느새 차창 밖 하늘은 골드 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는데 어찌나 진한 황금색인지 놀랬다.  


그것은 AURA SOMA B 90번 지혜의 레스큐를 닮았다. 지혜의 레스큐란 머리를 많이 쓰는 사람들을 돕는다. 

나는 한 때 '생각 과다증'에 걸린 적이 있었다. 미리 답을 정해두고 상황을 이해하려니 가치 규칙과 잦은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해결하기 위해 골똘히 생각에 생각을 하게 되고, 결국 내가 일으킨 생각에 갇혀 고통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겨울에 창틀에 소복이 쌓인 '눈'(snow)에 이끌려 혀를 갖다 대어보았다. 그리고 달라지기 시작했다. 



차가운 감촉을 느낀 그 순간 괴로움이 멈출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왜 생각이 진리인 양 숭배하고 살았던가; 

 

드디어 바람의 언덕으로

버스에서 바라본 저 바다가 바로 영국 해협이다

이틀 전 브라이튼(Brighten)에 도착해 여행의 여독을 푸느라 전날은 충분히 쉬었고, 바람의 언덕을 가기 위해 숙소에 가방을 맡기고 1일 버스 권(5파운드)을 구매하여 버스(12X )를 탔다. 안내방송에서는 피스 해븐(Peacehaven), 뉴해븐(Newhaven), 척 미어 해븐(Cuchmere Haven)등 온통  '해븐(Heaven)'마을을 말했다. 전통가옥들이 줄지어 있는 마을의 모습은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천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고요하고 평온해 보였다. 멀리 바다를 관망하며 갈 수 있는 높은 위치에 앉았으니 이대로 버스만 타고 몇 시간 돌아다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경관은 훌륭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데 곧 사진에서 보았던 지형과 비슷한 곳이 보이기 시작하여 긴장하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버스 탄지 40분쯤 지난 것 같은데 금세 도착했다. 


일단 내리긴 했으나 내가 정말 1시간을 걸어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가급적 걷고 싶지 않았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을 만큼 나는 걷는 것을 유난히 싫어한다. 약점이다. 다른 사람들에겐 즐거운 운동시간이 될 텐데 차라리 노동을 할 망정 운동은 정말 싫었다. 

유난을 떨며 머쓱한 자세로 잠시 서 있었는데 멀리서 아주 큰 개가 사람들과 함께 오고 있었다. ‘아쿠 무서워라. 하필이면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개가 지금 나타날게 뭐야’ 성가셔하며 얼른 걸음을 재촉했다. 


능선을 따라 좀 더 위쪽으로 올라가니 세븐 시스터즈(Seven Sisters)를 둘러싸고 있는 척 미어 벨리(Cuckmere Valley)의 경치는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특히 쿠크 미어(Cuckmere) 강의 모습이 말발굽 모양이었는데 무척 이색적으로 느껴져서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바다와 강이 만나고 있었는데 족히 1킬로는 되어 보였는데 멋졌다. 이제는 자발적 여행자가 되어 신발을 벗고 풀밭에 앉아보기도 하고 맨발로 걸어보기도 했다. 어느새 불평 대신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앞에 노인 커플의 다정하게 걷는 모습에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하나 씩 둘 씩 그리고 점점 걷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난 모습이 그림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길은 이상하게 목초지를 통과하게 되어 있는데 걷는 이들은 울타리의 문을 열고 통과한 후에 잠그고를 반복했다. 나도 그들을 똑같이 따라 했다. 점점 기분도 좋아지기 시작했고 목장에 양들이 어찌나 예쁜지 평화로운 목가적 분위기에 동화되고 말았다. 마치 건반 위를 구르는 선율처럼 물결을 수놓은 잔잔한 바람과, 메에 소리를 내며 뛰는 양 떼들, 벤치에 잠시 앉아있자니 아! 이런 순간을 '카르페 디엠’이라 부르겠구나 생생히 느껴졌다. 


7개의 언덕이니 더 많이 가야 했지만 중간쯤에서 멈췄다. 앉기도 전에 돌아갈 길부터 생각하니 내 수준에는 그쯤만 가도 충분할 것 같았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절벽은 아찔했다. 가장 높은 곳은 70여 미터나 된다고 하니 조심해야 한다. 더구나 이곳은 부서지기 쉬운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지금도 바람에 깎이고 있고 해마다 30~40CM의 크기로 침식되고 있는 중이다. 


어찌나 바람이 불어오는지 바람의 언덕이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니라는 게 알아졌다. 신기한 것은 정작 바다는 너무나 잔잔하고 고요했다. 정상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니 갈매기 울음소리와 함께 반짝반짝 찬란하게 빛나는 바다는 환상적으로 아름다웠다. 눈이 부실만큼 하얀 암석들과 때론 올리브 그린으로 보이기도 하고 때론 터콰이즈로 보이는 바다의 칼라는 86번 오베론을 풀어놓은 듯했다. 


인증 사진을 남기려고 시도하는데 혼자는 잘 찍히지 않아 어쩔까 잠시 고민하는 찰나에 때마침 한 커플이 등선을 넘어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더니 한 사람이 부른 듯이 나에게 다가와서 묻는다. “사진 찍어줄까?”라고.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는 쑥스럽고 미안해하는 나에게 여러 포즈를 마음껏 취해보라고 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그렇게 그곳에서 시간을 잊어버렸다. 배고픈 줄도, 목마른 줄도 모르고. 풀밭에 누워 불어오는 바람을 맞아보니 이곳이 천국이구나 절로 감탄이 나왔다. 게으름을 이겨낸 뿌듯함이 올라왔다. 그동안 짧고 긴 여행을 해봤어도 홀로 이렇게 긴 시간을 걸어서 도달해보기는 난생처음이었다.  


나는 걷는 거 싫어한단 말이야. 

그 고집을 깨뜨리니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노트북에 순간을 담기로 하고 막상 화면을 보며 소감을 말하려니 아무 말도 나오지 않고 눈물만 났다. 물론 감동의 눈물이다. 바람의 언덕에서 맞는 바람은 영혼 구석구석을 일깨우고 다니는 듯 정신이 초롱초롱해졌다. 

   


정상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 길은 한결 가뿐했다. 척 미어 강을 따라 걸었는데 그 길에서 만난 나무의 모습이 참 신기했다. 바다에서 어마어마하게 불어오는 바람의 위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바쁘게 지내게 되겠지만 이때의 고요를 기억하자 마음먹었다.   


비록 휘어질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저 나무처럼
나의 중심을 잡고 남은 길을 가보자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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