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샘이 터지다
2015년 늦가을부터 여기저기 아픈 곳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왼쪽 엄지발가락이 칼에 베인 것처럼 화끈거리고 무릎도 시큰거렸다. 데카그램의 저자 '이병창'선생이 몸의 왼쪽이 아프면 '관계'에 이슈(issue)가 등장한 것일 수 있다 하셨던 말씀이 스쳐 지나갔다. 가장 당황한 것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었다.
남편의 장례식 때도 기절은 했을 망정 울지 않았는데(물론 강하게 보이려는 반동적 행동이었겠지만); 어찌 되었든지 간에 그것은 나의 페르소나가 되었고 덕분에(?) 나는 꽤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믿고 살았다. 하지만 그렇게 단단하던 나는 언제부터인가 울 일이 아닌데도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의지적으로 어쩌지 못했다; 닦고 닦아도 흐르니 마치 심장에 슬픔이 가득 차 넘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별 이후 몇몇 예리한 사람들이 "당신은 좀 울어야 해요"라고 했었다. 억지로 눈물을 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여 안쓰럽다고; "당신 눈에 눈물이 가득한데 좀 빼보는 건 어때요?"라고. 나는 그 판단에 기분이 나빠졌다. 상담자가 치유되지 않았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랬는데.... 때가 된 것인가. 급기야 눈이 짓무르고 결막염까지 오고야 말았다. 그러다 통찰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이 눈물은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그 누군가의 아픔을 대신해 울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지구 반대편에서 울고 있는 누군가의 슬픔을 내가 대신하는 것이라고?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그렇다면 지구의 반대편은 어디일까? 계절의 반대편일까? 시간의 반대편일까? 그렇게 나는 떠날 결심을 하게 되었다. 목적지는 호주와 뉴질랜드로 정했다. 출국 준비를 위해 분주하게 시드니의 숙소를 검색하던 중 모스만(Mosman)이라는 곳을 소개하는 지역정보지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잡지에 실린 한 여성의 얼굴에서 유난히 빛이 났다.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종업원 같은데 우아하게 느껴졌다. "사람의 얼굴에서 어떻게 빛이 날 수 있는 거지?" 그녀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는데 바로 이 지점이 사람은 누구에게나 고유한 아우라(AURA)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첫 번째 계기였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되다
호주 시드니에 도착하니 아침이었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가뿐히 숙소에 도착했는데 에어비앤비(airbnb) 숙소는 소박하고 아담하고 포근했다. 짐을 정리한 후에, 쓰러지듯 잠부터 잤다.
도대체 얼마나 잤을까. 창밖에서 나는 새소리에 눈을 떠 이끌리듯 밖으로 나와 걸었다. 새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렸는데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복잡하던 마음은 모두 휴가를 가버렸는지 그저 평온했다. 이상한 일이다. 별생각 없이 걷고 있는데 정류장이 보였고, 버스 한 대가 정차하고 있었다.
아, 맞다 그래 오페라 하우스는 한번 가봐야지.
미리 동선이나 알아볼 요량으로 정차되어 있는 버스로 다가가 오페라 하우스 가는 것인지 물으니 기사는 빨리 올라오라고 했다. 지금 가는 것으로 이해한 모양이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닌데, 아, 모르겠다'며 버스를 탔다. 한번 갈아타야 해서 살짝 당황하는 사이 이상한 일이 나타났다. 선글라스를 끼고 운전석 뒷자리에 앉아있던 남자가 번쩍 손을 들더니 걱정하지 말라고 자기가 안내해주겠다고 했다. “이 무슨 일이지?” 내가 이상한 나라에 온 것인가? 의아해하는 사이 그가 내리자고 했다. 버스기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따라 내렸다. 그는 시드니에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을 알려주겠다며 교통카드부터 구입해야 한다며 앞장서서 걸었는데 자세히 보니 다리가 약간 불편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바리한 나를 위해 안내를 자처했다.
'하버 브리지(Harbor Bridge)' 위에서 오페라 하우스가 보였다. "와! 정말 왔구나. 꿈을 꾸기만 했는데 정말로 왔네!"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듯이 펼쳐지는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오페라하우스는 생각했던 것보다 아름다웠다. 정문이 닫혀 있었는데 그가 레스토랑으로 통하는 옆문을 알려주어서 안으로 들어가 공연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과 마주쳐 보기도 하는 등 분위기를 느껴보았다.
그의 도움이 그뿐만이 아니었다. 숙소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타겠다고 했더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택시 잡는 일이 쉽지 않다며 큰길까지 뛰어가 택시를 잡아왔다. 제법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택시기사에게 집까지 잘 안내해달라는 부탁을 했고, 나에게는 도착하면 메시지를 남겨 달라고 했다. 그래야 마음을 놓을 수 있다면서. 모든 일은 너무나 쉽고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그리고 숙소에 도착한 후 알게 되었다. 그가 키다리 아저씨가 보낸 천사라는 것을. 정말 큰 감동이 올라왔다. 떠나오기 전에 여러 복잡한 일로 마음도 몸도 아팠는데....;
막상 누군가를 돕겠다고 나오니 거짓말처럼 길이 열렸다. 거짓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