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직업병이야.
비슷한 직군에 있으면, 성격도 비슷할까?
아카데미아는 그런 것 같다.
이공계 (로봇들....), 자연계, 사회과학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공부를 오래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매우 분석적이고 논리적이며, 지적 호기심들로 넘쳐난다는 것. 예술계나 철학, 심리학 등은 조금은 다를 수 있겠다.
여기서 잠깐 퀴즈.
"아 요즘 불안해 죽겠어, 내 연구 방향이 맞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 졸업하면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어"
라고 누군가 당신 앞에서 말한다면?
a) 에고, 많이 답답하겠네. 맛있는 거나 먹으면서 스트레스 좀 풀까?
b) 에고, 많이 답답하겠네. 지도교수님은 뭐라셔?
c) 뭐 다들 그런 거 아냐? 너 지금 논문 진행 중인건 어떤데? 잘 되고 있어?
d) 으응 그렇지.
분야별로 다르긴 하겠지만, a)는 학계에서 찾아보기 매우 드문 반응이다. F의 반응.
공부를 좀 오래 한다 싶은 사람들은 대부분 c)- "설루션 찾아주기 (a.k.a. 일 해라 절 해라)"와 d)- "노관심 (그래서 어쩌라고)"의 반응이다.
b)는 나름 F를 글로라도 배운, 노력파 T이다. "답답하겠네" 나름 공감을 (기계적으로)해주지만, 여전히, 버릇처럼, 지도교수님의 반응에 따른 설루션을 "주시기"위해 대기 중이다.
여전히 나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주고 싶은" 사람으로서, 어떻게 하면 '실질적인' 도움이 될지를 먼저 챙기는 편인 것 같다.
왜 그럴까?
예술 쪽 전공을 제외한 대부분 전공의 박사과정은 'analytical skills' 즉 분석적 능력과 'logical thiking' 논리적 생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연구의 결과들을 도출하기까지는 기존의 축적된 지식으로 예상하는 가설을 세우고 관찰하며, 관찰한 값들을 분석하여 의미를 찾는 과정을 거친다. 즉,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현상을 파악하고 질문하며 타당한 이유를 도출해 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연구일 뿐이고,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인간적 관계에서의 '실질적 도움'이 그 사람이 원하는 도움일까? 그리고 '실제로 필요한' 도움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내가 그 어려움을 토로하는 입장이 자주 있다 보니 의외로 실질적 도움은 '감정적 지지'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연구 과정에서 '반복되는 거절'과 '반박'에 지칠 대로 지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들을 얼마나 잘 극복해 내느냐가 관건일 정도.
따라서, 나름대로 유학까지 왔으면 솔루션은 나와 지도교수님이 알아서 찾으면 되고, 분야가 다르면 남이 나를 도와주지도 못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어쩌면 논리적인 솔루션 제시가 그 상대방을 위하는 것이기보단, 나의 지식이나 논리를 더 있어 보이게 드러내거나, 오히려 나에게 필요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너 생각해서 하는 얘기인데, "라는 말이 어쩌면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전혀 '웰컴'하지 않은, 어쩌면 어쭙잖은 참견이 될 때가 많지 않을까. 아무리 이성적 분석적 성향이 강하더라도, 한번쯤은 그냥 '말 안 하고' 가만히 들어주기만 하는 것은 또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여전히 공감을 글로 배운 티를 내긴 하지만, 내가 얘기하기보단 좀 더 들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않을까?"라고 차라리 질문을 한다.
나름대로 똑똑한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에, 내가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으랴. 그냥 묵묵히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돕는 것 아닐까. 나부터 공감의 연습을 좀 더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