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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성우 Jul 30. 2021

시골 빈집에서 찾은 것

지키고 싶은 것

지키고 싶은 


지난여름 할머니 집을 갔다 오고 나서 엄마와 친척들에게 제 생각을 얘기했습니다. 할머니 집을 고치고 싶다고요. 엄마와 이모들의 반응은 처음에는 “너가 그걸 왜 고치냐”였습니다. 그래도 하고 싶다고 말하니 “할머니 집은 너무 오래돼서 고치는 것보다 싹 밀고 새로 집을 짓는 게 낫다”라고 말했습니다. “요즘은 이동식 컨테이너식 농가주택도 싸게 잘 나온다”는 말은 최후의 통첩이었습니다.


엄마의 말이 맞습니다. 할머니 집은 70여 년 전 할아버지가 마을 뒷산에서 나무를 베어 구조를 잡고 흙을 덮어 만든 집이었습니다. 통통한 나무도 아니었고 얇디얇은 뒷산 나무였으니 집은 애초에 구조부터 약했습니다. 이미 뒷벽은 무너져 내릴 정도였습니다. 그런 집을 고칠 바에는 집을 싹 밀고 훨씬 저렴하고 튼튼한 농가 주택을 세우는 것이 맞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작업에 동참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사라진 위에 세워진 신식의 농가주택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일은 뜯어말리고 싶었습니다. 할머니 집을 있는 그대로 두고 싶었습니다. 문화유산 같은 가치는 전혀 없을지라도, 아니 오히려 볼품없는 것일지라도 그 자체로 있는 것이 저에게는 중요했습니다. 도대체 할머니 집을 왜 그대로 두려고 했을까. 내가 할머니 집에서 지키려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머뭇거리는 사이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습니다. 해는 바뀌어 2021년이 됐지만 아무것도 한 게 없었습니다. 어디서부터 뭘 해야 할지 엄두가 안 났습니다. 조급한 마음과 다르게 시간은 앞으로 빠르게 향해갔습니다. 내가 한 번 고쳐볼까? 공사일부터 배워야 할 것 같은데 회사 다니면서 할 수 있을까? 그게 아니면 공사를 맡겨야 하는데 그럴 돈이 있나? 아니 있더라도 그 돈을 시골집에 쓰는 게 맞나? 내 집도 없는데 여태 모은 시드머니를 시골집에 쓴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답은 없었습니다. 쉽사리 무언가를 시작하기 어려웠습니다.
 

약간 피디적인 마인드가 생각났습니다. 영상으로 봤을 때 재밌는 걸 생각해봤습니다. ‘할머니 빈집에서 하루를 보내보는 건 어떨까?’ 충분히 재미난 장면들이 예상됐습니다. 우선 오랫동안 방치돼 있던 빈집을 둘러보는 것은 그 자체로 흥미로울 것 같았습니다. 오래된 집과 물건들이 주는 반가움이 있으니까요. 마당에서 숯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 먹는 것도 캠핑하는 것 같은 힐링을 줄 수 있었습니다. 거기다 친척동생과는 할머니 집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고 있으니까 ‘할머니 집의 의미’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금요일 반차를 쓰고 여수에서 논산으로 출발했습니다. 봄비가 내리는 3월이었습니다. 날씨는 아직 추웠습니다. 할머니 집은 겨울 동안 보일러가 터져있을 가능성이 높았기에 롱 패딩을 챙겼습니다. 대전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논산역으로 온 친척동생을 태우고 할머니 집으로 향했습니다.




“민재야 우리 할머니 집에서 무사히 잘 수 있을까?”

이 질문에는 묘한 흥분이 있었습니다. 위험할 수 있다는 두려움과 동시에 그 위험을 어떻게 헤쳐나갈지를 기대하는 마음이 함께했습니다. 이 감정은 ‘모험’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모험이 좋았습니다. 5살 때 아버지 거래처의 일본 바이어가 선물해준 닌텐도로 하던 포켓몬스터의 모험, 그것은 저에게 다가올 두려움과 그것을 뛰어넘는 희열을 알게 해 줬습니다. 위험은 그 자체로는 피하고 싶은 대상이지만 그다음의 희열을 기대한다면 위험은 모험으로 얼굴을 바꾸게 됩니다. 우리는 할머니의 빈집으로 '모험'을 떠났습니다.
 

할머니 집의 문을 열자마자 먼저 들어간 친척동생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빈집에 살고 있던 고양이가 우르르 튀어나왔습니다. 너덜너덜해진 비닐 벽 사이로 고양이들이 자유롭게 넘나들었습니다. 시골의 빈집은 떠나간 사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마을의 다양한 생명체의 소유가 됐습니다. 풀이 키만큼 자라고 동물들이 살고 있는, 시골 빈집의 운명이었습니다.


고양이가 살고 계시던 툇마루를 지나 오랫동안 닫혀있던 할머니 집에 들어갔습니다. 오랫동안 사람이 없었던 할머니의 집은 그래서 정상적인 게 없었습니다. 겨울 동안 잠겨있던 수도를 열었더니 수관이 터져서 흙탕물이 새어 나왔습니다. 오늘 하루는 이 집에서 물은 쓸 수 없었습니다. 거기다 모든 식품들은 유통기한이 지나있었습니다. 라면, 커피, 설탕, 심지어 간장까지 쓸 수 있는 것들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코드를 꽂아 놓은 냉장고는 혼자서 열심히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들을 차갑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사실 할머니가 계실 때도 할머니 집은 정상에 가까운 집은 아니었습니다. 화장실도 없었고 세탁기도 없었던, 말 그대로 문명과는 거리가 먼 공간이었습니다. 집은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할머니 집에는 할머니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모든 게 부족했지만 할머니라는 사람이 그 집을 지탱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할머니의 손길이 사라진 시골집은 그저 낡은 시골집의 모습일 뿐이었습니다.


‘할머니가 없는 집을 좋게 바꾼다고 그게 할머니 집일까?’

집을 좋게 고친다면 분명 집은 더 좋은 공간이 될 겁니다. 하지만 할머니의 집을 지키는 것이 할머니가 없는 할머니 집이어도 될까. 뿌리를 지키는 일이 과연 공간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가능한 걸까. 집을 지키기로 마음먹었기에 필요한 고민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머니가 없는 공간을 할머니 집처럼 만들 수 있을까.   



할머니 집에는 그대로인 것들이 참 많았습니다. 열 때마다 드르륵 소리가 요란을 치는 방 문도, 언제 만든 지 모르겠는 자개장도 그대로였습니다. 화장실이 없어 대신 쓰던 요강이 있었고 건국우유와 해태가 새겨져 있는 레트로풍의 오래된 컵이 있었습니다. 할머니방에 걸려있는 딸, 사위, 손자들의 사진. 할머니의 손길은 없지만 여전히 할머니를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남아있었습니다. 집을 고친다면 이것들을 있는 그대로 둬야 했습니다. 내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이 불편함에서 나오는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견디고 버티면서 삶을 살아가는 억척스러움. 그게 우리 엄마가 살아가는 방식이고 아들인 나에게까지 계승된 태도였습니다. 이 집에는 우리 가족의 태도가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시골의 밤은 빨리 찾아왔습니다. 6시가 조금 넘었는데 사방이 어두워졌습니다. 어두운 마당을 밝히기 위해 할머니 집에 있는 불을 다 켰습니다. 옆집, 앞집, 뒷집이 모두 비어있는 사이에서 할머니 집만 밝아졌습니다. 어두웠던 자리에 불빛이 들어오자 그건 마치 신호 같았습니다. '여기에도 사람 살아요' 마치 sos구호 같기도 했습니다.


마당에서 고기를 구웠습니다. 화로에 숯을 넣고 고기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불이 없었습니다. 있는 거라곤 할머니 집에 있는 성냥뿐이었습니다. 성냥으로 신문지에 불을 붙이고 바람을 후후 불어 불을 살렸습니다. 할머니 집 아궁이에 불을 붙이던 방식이었습니다. 어깨너머로 배우던 게 몸에 익었는지 성냥과 신문지로 숯을 만들었습니다. 대식가인 저와 친척동생은 둘이서 삼겹살과 목살 한 근을 구웠습니다. 둘째 이모가 싸준 파무침과 상추쌈을 곁들였습니다. 빈집 마당에서의 만찬이었습니다.


“할머니 오셨어?”

정적을 뚫고 인기척이 들렸습니다. 골목의 어둠을 뚫고 한 할머니가 다가왔습니다. 오랫동안 빛이 없던 곳에서 빛이 나오자 지나가던 마을 할머니가 궁금해하셨던 겁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할머니 손자예요. 저는 원미 아들, 얘는 원분이 아들” 벌떡 일어나 할머니에게 우리를 설명했습니다. 혹여나 빈집을 차지한 노숙인처럼 보이진 않을까 싶어서. “그럼 네가 찬우냐?” 할머니는 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어 아시네요 저희 형이에요. 저는 성우.” 신기하게도 할머니는 우리의 이름까지 알고 있었습니다. “알지 그럼, 우리 손자들이랑도 같이 놀고 그랬잖여.”


 곧 할머니의 안부를 물으셨습니다. “할머니 잘 계셔?” 아주 잘 계신다고 안심하라고 말했습니다. “네 원경이 이모가 잘 모시고 있어요. 지금은 치매 센터 다니면서 더 잘 지내세요.”

“암만 다행이네”



이후에도 마을 할머니 두 분이 더 오셨습니다. 대부분 할머니의 안부를 궁금해했습니다. “아직 추운데 보일러 나와?” 오늘 할머니 집에서 잔다는 말에 걱정스러운 답이 들려왔습니다. “모르겠어요. 이모부가 아마 보일러가 겨울 동안 터졌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러자 의외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안되면 우리 집 와서 자. 웃방 비었어." 잘 기억도 안나는 동네 할머니 손주를 기꺼이 재워주겠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너무 추우면 갈게요.” 어떻게든 할머니 집에서 잘 생각이었지만 손을 내밀어주신 마음이 고마워 알겠다고 대답했습니다.

 

할머니의 빈집에 오지 않았으면 몰랐을 겁니다. 시골 마을이 우리를 얼마나 반기는지를요. 과거의 추억과 인연들이 집을 중심으로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정을 느낄 수 있다면 집을 고쳐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할머니의 집이고 엄마의 고향이지만, 앞으로는 나의 인생에도 안식처도 될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할머니 집에서 지키고 싶은 것 두 번째는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어르신들의 정이었습니다. 평생을 함께 고생하며 살아온 이들이 만든 유대감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저를 가로막고 있던 애매함이 해소됐습니다. 평생 마음의 고향을 가질 수 있다면 돈이 얼마가 들든 그건 해볼 만한 것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래. 무엇이든 일단 해보자.'  



'14도 15도 16도'

다행히 보일러는 잘 돌아갔습니다. 친척 동생에게 침대를 양보하고 바닥에 누웠습니다. 예전부터 쓰던 쿰쿰한 요를 깔고 이불을 덮었습니다. 머리 위로 찬 바람이 드나들었습니다. 시골집의 웃풍이었습니다. 쿰쿰한 이불을 코 위로 끌어올렸습니다. 동생과 나 둘로 방은 가득 찼습니다. 이 좁은 방에서 한 때는 5명도 잤는데, 어떻게 그렇게 타닥타닥 붙어서 잤는지 신기했습니다. 우리가 큰 탓일까 아니면 그때 마음의 거리가 가까웠던 덕분인 걸까. 아무리 좁아도 불편함 없이 지냈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6시가 조금 넘었는데 눈이 떠졌습니다. 삐걱거리는 현관문을 열고 시골의 새벽 공기를 마셨습니다. 긴 호흡으로  숨을 쉬고 내뱉었습니다. 흙, 풀, 물, 할머니 집 냄새가 섞여서 들어왔습니다. 시골의 새벽 냄새였습니다. 조용한 새벽, 집을 돌아보니 낡은 것들에 묻어있는 추억들이 겹쳐 보였습니다. 갓난아기였던 나, 젊었던 엄마 아빠, 사고 많이 쳤던 친척 동생들, 항상 잘 놀아주던 이모부들. 오래된 시멘트 담벼락에, 삐걱거리는 철재 대문에, 쓰러져가는 창고에 그 기억들이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1992년 여름, 우리 형
1994년, 형과 친척 동생 대영이
1991년 어느 날, 1살의 나


과거를 바라보는 것은 지금을 소중하게 보기 위한 일입니다. 기쁨과 슬픔, 미움과 기쁨, 분노와 사랑이 뒤섞인 지리멸렬한 현실을 사랑으로 대할 수 있는 방법은, 그래도 우리가 한때는 서로에게 소중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계속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건 바로 우리가 지나온 과거를 바라보는 것을 통해 가능한 일입니다. 저 작은 아이가 지금의 내 모습이 되었다는 것은 부모와 친척 그리고 형, 동생들의 지지와 보살핌이 있었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 번 아로새기는 일입니다.


저 낡은 집을 통해 지금의 부모를 바라봅니다. 저 낡은 곳에서 지금의 안정된 곳까지 오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다. 그 과정에서 나라는 인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셨다. 그게 낡은 집에 보였습니다. 아둔한 나는 자꾸 깨닫지 않으면 후회할만한 일들을 합니다. 괜히 짜증을 부리기도 하고 감사해야 할 것들에 전혀 감사를 느끼지도 못합니다. 그럴 때 저 낡은 집을 바라보려고 합니다. 결국 집을 지키고 싶은 건 과거를 항상 바라보기 위함입니다. 그 과거를 통해 가족의 존재가 소중하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곳을 자주 찾아야겠다. 지금의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      

쓰러져가는 집을 정리하고 나서며 생각했습니다. 이 집을 지켜야 할 이유는 너무도 많다는 것을.




평소 좋은 말을 해준 적 없지만 지금 가장 소중하게 대하고 싶은 존재 친척 동생 대영이,

대영아 2주 뒤 경찰 시험 잘 보고 원하는 결과 얻길 바랄게.

1995년 여름,  시골집에서 대영이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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