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성우 Aug 16. 2021

할머니 집이 할머니 집이 아니었다니

김영임의 집


 집은 당연히 할머니 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대손손 증조할머니부터 할머니, 엄마 그리고 우리까지, 4대가  집을 지켜왔으니 말이죠. 그런데  집은 할머니 집이 아니라고 합니다. 대체 무슨 말일까요.



할머니 집을 고치기로 마음먹고 필요한 것들을 알아봤습니다. 집을 고치는 건 돈이 꽤 많이 드는 일이었습니다. 어떻게든 경비를 줄일 방법을 찾아봤습니다. 국가에서 시골집 정비를 위해 금액을 지원해주는 사업이 많이 있었습니다. 시골에 빈집이 늘어나는 것은 사회적인 문제였습니다. 빈집으로 삭막해지는 시골 분위기는 사람들이 시골을 더 떠나게 했기 때문에 국가에서 나설 수밖에 없던 겁니다. 시골 빈집과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지원 사업들이 있는데 1. 슬레이트 지원 사업 2. 빈집정비사업 3. 농촌주택개량사업이 있었습니다. 슬레이트 지원사업은 철거에 300여 만원을 지원해줬고 빈집정비사업은 5천만 원과 1억의 금액을 저금리로 빌려줬습니다. 농촌주택개량사업은 기존 농어민이나 귀촌해서 정착하는 사람들을 위해 최대 2억을 대출해줬고요. 할머니 집에 해당되는 사업은 슬레이트 지원사업과 리모델링 지원 사업인데 우선 슬레이트 지원 사업을 신청하기로 했습니다.


논산시 슬레이트 지원사업 서류 (지자체마다 사업이 다릅니다)


슬레이트 지원 사업의 서류를 살펴봤습니다. 여느 문서처럼 집의 소유를 증명할 수 있는 등기나 건축물대장이 필요했습니다. 당연히 할머니 집이라고 생각하고 둘째 이모에게 할머니 집 증빙에 필요한 서류를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거 할머니 집 아니야.” 할머니 집이 아니라니? 할머니 집이 아닌데 어떻게 할머니는 70년 동안 그 집에서 살 수 있었던 걸까. 할머니 집은 현재 서류상으로는 할머니의 시어머니 명의로 돼있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아들인 할아버지보다 30년을 더 사셨기 때문에 명의는 자동으로 아들에게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시어머니의 명의를 간직한 채 90세가 훌쩍 넘는 나이에 돌아가셨습니다. 시골에서는 명의가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냥 오랫동안 살고 있고 마을에서 다들 "저기는 누구 집이여"라는 합의가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굳이 명의를 바꿔야 할 이유도 모른 채로 70년 동안 그 집에 사셨던 겁니다.


이 집의 등기 이야기를 하면서 할머니의 성격을 다시 알게 되기도 했습니다. 시골에선 이장의 힘이 꽤 강합니다. 집의 소유를 증명하는 순간에도 이장이 마을의 대표로서 증빙을 해줍니다. 어느 날 시에서 집의 등기를 현재 거주자로 변경하라고 했는데 당시 이장을 뽑지 않았던 할머니는 이장으로부터 미움을 받아 증빙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장을 반대했던 건 마을에서 할머니와 작은 할아버지뿐이었다고 합니다. 저 작은 마을에서 대놓고 반대를 하다니 그건 미움받을 각오를 단단히 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의 고집스런 성격이 괜히 나온 게 아니였습니다. 그렇게 할머니의 고집으로 등기를 바꿀 기회를 놓쳤던 겁니다.


더 웃긴 건 땅은 또 완전히 다른 곳의 소유였습니다. 서울의 한 교육재단에서 땅을 소유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땅 위에 5가구가 나눠서 살고 있었습니다. 다들 자기 땅이 아닌 곳에 집을 짓고 살고 있었던 겁니다. 옛날 시골집은 다 남의 땅에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합니다. 둘째 이모부가 땅의 관계를 물어보려고 교육재단 쪽에 연락을 해봐도 도통 연락이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그쪽에서도 전혀 관심도 없는 땅이었던 겁니다. 하긴 논산 시골에 땅이 있다고 해도 뭘 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애초에 왜 이 땅을 가지고 있었을까 의아하기도 합니다. 큰 뜻이 있었겠죠. '시골집의 권리에 대해' 검색을 해봤습니다. 찾아보니 시골에서는 이렇게 땅의 소유자가 따로 있고 건물의 등기는 주인으로 돼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럴 때는 건물을 짓고 오랫동안 거주한 사람의 권리를 인정해주는 편이라고 합니다.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저는 좀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일을 저질러 버리고 했습니다. 일단 이 집을 고치고는 싶으니까 유리한 쪽으로 정보를 해석해버렸습니다. “70년 사셨으니까 건물을 할머니의 권리가 인정될 거예요.” 친척들에게 그렇게 설명을 했습니다.


슬레이트 지원 사업을 신청하려면 어떻게든 건물의 등기를 증조할머니에서 할머니로 옮겨야 했습니다. 그래야 슬레이트 지원사업에 신청할 자격이 생기고 집을 고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멀리 여수에서 논산 시청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담당 공무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할머님의 건축물 등기를 본인 명의로 바꾸려면 몇 가지 증명이 필요합니다. 가장 간단한 증명은 재산세를 냈던 영수증을 보여주시면 소유를 바꿀 수 있을 거예요.” 집에 대한 재산세를 낸 증빙을 해야 했습니다. 다시 둘째 이모에게 갔습니다. 할머니와 관련된 대부분의 일은 둘째 이모가 맡고 있었습니다. “재산세는 작은할아버지가 냈어.” 시어머니의 둘째 아들, 그러니까 할머니의 도련님인 둘째 할아버지가 할머니 집의 재산세를 내고 계셨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어머니의 집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둘째 할아버지는 자신의 형이 일찍 죽고 난 후 형수님을 살뜰히 챙겼다고 합니다. 조카였던 우리 엄마와 이모들에게도 대신 아버지 같은 역할을 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둘째 할아버지가 요양병원에 계셨습니다. 재산세를 낸 내역을 받으려면 작은할아버지의 인감이 필요했고 인감을 만들려면 작은할아버지가 요양원에서 나오셔서 법무사에 가셔야 했습니다.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지점에서 저는 반쯤 포기했습니다. '안 되는 거구나 이건.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슬레이트 지원사업은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300만 원 정도 받는 거니까 엄청 큰 금액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돌아서면 아쉬운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불도저 같이 일을 추진해갔습니다. 바로 둘째 이모였습니다. 둘째 이모는 논산 시청에 가서 담당 공무원을 만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건축물대장 등기를 할머니 명의로 바꿨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너무 연로하시고 여기서 70년을 사셨어요. 슬레이트 지원사업을 받아서 집을 고치려고 하는데 명의가 시어머니로 돼있어서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어떻게든 도와주세요. 저희 여기서 평생 살았어요.” 둘째 이모의 절박한 이야기로 시청 공무원을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물론 공무원 재량으로 결정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일이라서 가능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더 신기했던 건 평소 둘째 이모가 일을 막 벌리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항상 착하고 말 잘 들어주는 둘째 이모가 시청에 가서 공무원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가며 어떻게든 일을 처리해가는 과정이 더 신기했습니다.  



그렇게 70년 만에 시골집은 진짜 할머니 집이 됐습니다. 이제 와서 집의 주인이 정식으로 할머니가 됐다고 뭐 대단한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닙니다. 여전히 집은 무너지기 직전이고 누구도 그 집을 넘보지 않습니다. 심지어 집에서 평생을 사신 할머니도 무섭다고 그 집에 가기를 꺼려하셨습니다. 그래도 국가 문서에 ‘김영임’이라는 이름으로 등기에 올라간다는 것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뻔한 누군가의 70년을 기록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그 집의 주인이지만 등기 하나 뗼 수 없었던 주인이었습니다. 할머니의 집은 관습의 사회에서 공적인 사회로 이동했습니다. 이제 할머니의 집은 마을에서 뿐만 아니라 논산, 그리고 전국에서 떳떳하게 권리를 말할 수 있는 집이 됐습니다.


생각보다 형식적인 것은 많은 부분에서 우리를 규정합니다. 몸과 마음 모두를 말이죠. 자격이 없는 사람은 자연스레 자신의 한계를 만들어버립니다. '나는 이 정도까지야'라는 선이 마음속에 자리 잡습니다. 대신 형식적인 자격이 생긴다면 자연스레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자리 잡습니다. 가능한 영역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할머니의 집에 자격을 만든다는 것은 할머니 집을 제한하던 틀을 넘는 것입니다. 이제 할머니 집은 더 집다워질 수 있는 자격이 됐습니다.


결국 일정에 맞춰 할머니 집은 슬레이트 지원사업에 신청할 수 있었습니다. 논산시청 공무원 분은 "워낙 슬레이트 지원해야 할 곳이 많아서 처음 신청에는 안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한 번 포기했었기에 기대를 내려놓는 것도 빠르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주 뒤에 카톡방에 알람이 울렸습니다. “슬레이트 사업 통과됐다. 3월 안에 공사 시작해야 돼.” 그렇게 할머니 집 리모델링은 슬레이트 지원 사업이 선정되면서 급물살을 타게 됐습니다.



이전 04화 빈집을 고치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