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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성우 Sep 19. 2021

집과 대화해보세요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릴까

세상은 과거 지향적인 사람을 나무랍니다. 미래를 봐야 한다고 말하면서요. 하지만 저는 자주 과거를 돌아보는 편입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확인하고 추억하곤 하죠. 그러면서 현재의 위치를 확인해요. 과거는 현재를 살피는 기준점입니다.  


마음이 공허할 때면, 도대체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싶으면 옛날에 살았던 집을 찾아갑니다. 처음 아파트에서 살게 됐던 한가람 아파트는 지금 사는 아파트 바로 옆에 있습니다. 그곳은 과거라기보다 현재 살고 있는 동네인데 저는 그 아파트를 지나갈 때마다 마음이 아련합니다. ‘저곳에서 내가 자라났구나.’ 5살 때 이사 왔던 그곳의 작은 아이가 언제 서른 살이 넘었는지 시간의 변화가 놀랍습니다. 저는 자꾸만 과거의 나를 발견하려고 합니다. 과거를 놓아주고 훨훨 날아가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걸까요?



할머니 집의 공사를 맡으신 분과 할머니 집에 모였습니다. 엄마, 이모들, 이모부, 나까지 온 가족이 아저씨를 따라다니며 집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상태가 안 좋다고 말했습니다. 뒷벽은 무너져가고 있었고 지붕의 나무들은 이미 썩어서 손으로도 뜯어낼 수 있었습니다.


공사를 맡아주신 아저씨. 뭐 이런 집이 있나 싶은 표정이셨다.


집으로 기능을 하기 위해 필요한 필수적인 수리에는 이견이 없었습니다. 기본적인 것 이후 기존의 불편한 것을 개선하는 것에서 의논이 필요했죠. 창고를 부수고 탁 트인 마당을 가질 것인가? 아니면 창고를 별채로 쓸 것인가? 천장 나무를 살려 마감을 할 것인가? 아니면 천장을 덮을 것인가? 기존 미닫이 문을 그대로 둘 것인가? 아니면 새 문으로 교체할 것인가?

고민은 생각보다 간단할 수 있습니다. 모두 새 거로 하면 좋거든요. 할머니 집의 미닫이 문은 밤에 나가려고 열면 사람이 다 깰 정도로 시끄럽습니다. 이격도 커서 겨울엔 웃풍이 돌아요. 그런데 그 미닫이 문을 다른 걸로 바꾸는 게 아쉬웠습니다. 미닫이 문에 특별한 추억은 없지만 할머니 집을 돌아볼 때 미닫이 문은 그 존재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미닫이 문은 그냥 거기에 있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쓸데없는 정이 저를 붙잡았습니다. 기왕 집을 고치겠다면 더 편하게 만들면 될 텐데 그게 안됐습니다.



여수mbc에서 제작했던 근대유산 프로그램

피디 준비를 할 때는 논술 공부와 함께 프로그램 기획안을 씁니다. 피디로서 가진 특성을 기획안에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떤 것에 관심 있는 사람인지 뭘 잘할 수 있는지를 담는 거죠. 그때 저는 근대 문화제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근대 문화제는 꽤 오래되긴 해서 이게 가치는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이걸 숭례문 경복궁처럼 문화재로 지정해서  관리할 정도는 아닌 그런 애매한 것들이었습니다. 서울이라는 땅값 비싼 곳에서 근대유산들은 그 가치를 현재의 경제가치로 증명해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위태위태한 그들의 존재에 저는 눈이 갔습니다.


 <대한제국 유적 허물고 호텔 신축 허가한 문화재청> 한겨레

근대 문화제는 문화재로서 역사성도 있고 등록문화제라는 제도가 있어 보존하자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돼있습니다. 하지만 영등포의 낡은 상가들은 어떨까요? 문래동의 낡은 공장 지대들은? 이걸 지키는 건 의견이 갈립니다. 오래된 건물들이 지역을 슬럼 화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오래된 것들은 불편하고 불안전한 것들이니까요. 그런데 그것들을 싹 밀고 강남처럼 만들어버린다면 어떨까요? 성수동의 수제화 골목과 공장을 다 밀어버리면 지금의 성수동일 수 있을까요? 장소의 캐릭터를 고려해 지점을 낸다는 블루보틀이 한국 1호점을 성수동에 냈을까요? 이처럼 오래돼서 불편하지만 지역을 이뤄온 것들을 지킬 것인지 없앨 것인지는 갈등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둔촌 주공아파트가 재개발을 한다고 할 때 주공아파트의 추억을 책과 영화로 나왔습니다. 이 작업을 진행한 이인규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공아파트를 지키자는 건 아니다. 그저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감상에 불과할 수 있지만 어떤 방법으로든 나의 과거를 그리고 둔촌 주공아파트를 기억하고 싶었다”고요. 공간은 단순히 거기 있었기 때문에 인간과 추억을 나눕니다. 특히 매일 살아가는 집은 낡아서 가치가 떨어질 지라도 개인의 삶에서는 자신이 성장할 수 있던 기반입니다. 경제적으로는 산술 할 수 없지만 오래된 집의 가치는 간단히 밀어버릴 만큼 하찮지 않습니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둔촌 주공아파트 프로젝트에 공감을 보내줬을 테고요.


이런 오랜 고민들이 나의 문제로 들이닥쳤을 때 어떤 선택을 내릴 수 있을까요? 할머니 집을 고치기로 결정했을 때 저는 할머니 집을 원판 그대로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그 위에 낡은 것들을 수리하는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엄마와 이모들은 다른 생각이었습니다. 화장실도 없는 낡은 집에 살면서 살아온 3 자매에게 시골집은 가난을 상기시키는 트라우마였죠. 그러니 트라우마를 보존하기보단 최대한 지우고 새로 좋은 것들로 만들길 바랐습니다. 그 팽팽한 줄다리기는 근대유산, 영등포, 문래의 공장을 보는 갈등과 같았습니다. 할머니 집에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릴 수 있을까요.



할머니집 리모델링은 뼈대는 수리하면서 기존의 것들을 곳곳에 살리기로 했습니다. 미닫이 문들은 그대로 두기로 했습니다. 방과 방사이를 가르는 요상한 문도 그대로 두기로 했습니다. 천장의 나무를 노출시키고 싶었지만 나무가 너무 약해서   없었습니다.  옆의 창고는 끝까지 고민하다가 철거를 하기로 했습니다.  하나에 집중해서 관리해나가기로 했습니다. 사실 창고는 재래식 화장실이었는데 저는 30년동안  번도 써본적이 없습니다. 낮에도 어두워서 무서웠습니다.  


집이 완성되고 형이 할머니 집을 찾아갔습니다. 형은 처음에 할머니 집의 외관을 보고 많이 달라져서 실망했다고 합니다. 이내 집에 들어가서 모습을 본 후 생각이 달라졌다고 했습니다. “안에는 그대로라서 너무 반가웠어. 하니씩 그대로 인 것들을 찾는 게 의미 있더라. 이건 누구도 고칠 수 없는 집이었어.” 함께 시간을 보내온 형의 반응이 이렇다면 할머니 집에 남기고자 했던 것이 잘 남아있다고 느꼈습니다.


할머니 집을 밀고 그 자리에 새 건물을 짓는 그림을 생각해봅니다. 새로운 집에서 가족들과 밥을 먹습니다. 깨끗한 주방과 식탁에서 정갈한 식사를 합니다. 이전의 할머니 집이 완전히 지워진, 새로운 풍경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집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아갑니다. 그 모습은 할머니 집 집과 우리가 쌓아온 경험들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기존의 것 중 꼭 남겨야 할 것들을 바탕으로 과거와 지금 그리고 미래를 이어나갑니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우리는 이 집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 집에선 우리의 존재, 가족의 존재를 매 순간 느낍니다. 생각이 아니라 그저 존재함으로써 나라는 사람을 받아들입니다.


"사람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사람을 만든다. 인간의 생각은 공간이 되고 그 공간이 다시 인간의 생각이 된다. 인간과 공간은 공진한다." 홍익대학교 유현준 교수는 <공간의 미래>라는 책에서 '공간과 대화하는 훈련'을 하라고 합니다. 인간은 공간과 교류를 합니다. 공간을 통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고 또 그런 공간들을 찾아가라고 합니다.


우리를 이루는 속성은 단층이 아닙니다. 여러 층의 요소들이 켜켜이 쌓여서 우리는 우리가 됐습니다. 지키고 버리는 과정은 우리가 누구인지 알아야 하고 또 어떤 것이 되고 싶은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과거를 통해 형성된 현재의 나와, 미래를 바라보는 현재의 나의 시선이 합쳐진 현재를 살아갑니다. 그 현재에서 우리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지킬 것인지 결정하게 됩니다. 저는 과거의 가난과 불편의 흔적을 지키면서 나라는 인간이 온 기반을 잊지 않으려 했습니다. 창고를 부수고 마당 공간을 만들면서 미래의 여유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저는 이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세상에 겸손하면서 여유를 잊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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