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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성우 Oct 13. 2021

요강과 화장실

당연한 것들, 당연하지 않은 것들

요강과 화장실


할머니집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요강에 일을 보거나 바깥에 나가서 처리했다. 당연히 사람답게 앉아서 볼일을   있는 요강을 선호했다. 하지만 씼어야하는 요강에 볼일을 보는  어른들이 싫어하셨다. 왠만하면 마당 한켠에 가서 싸라고 했다. 작은  괜찮은데   존재감 너무 크니까 그냥   없었다. 삽으로 흙과 같이 퍼서 마당 한켠에 있는 밭에 거름으로 뿌렸다. 무슨 소도 아니고 사람이 싸봤자 얼마나 쌀까. 사실상 거름 역할은 못했고 그냥 쓰레기로 버린 거다. 어려서부터 서울에서 살았던 나는 화장실 없는 원시의 삶을 견뎌낼 수 없었다. 그래서 할머니집  때는 최대한 참았다가 휴게소에서 볼일을 봤다. 그것도 안되면 변비가 생겨서 며칠을 고생했다.



그러던 할머니집에 화장실이 생겼다. 조용한 시골에서 볼일을 보니 이거야 말로 힐링이다. 옆의 빈집에서 새들이 짖어대는 소리는 엠씨스퀘어의 집중 음파같이 볼일에 집중하게 해준다. 자꾸 더럽게 볼일 이야기만 하는 것 같아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지지만 인간의 기본적 생활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모든 걸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온 나의 삶에 대해서.


요즘들어 나에게 당연한 것들에 균열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가족간에 서로를 향한 상처들을 이야기했고 나 역시 가족의 영향 속에 있는 사람으로서 다시 생각을 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사회 속에서의 나라는 존재도 과연 옳은 것인가 의심을 하게 된다. 너무 당연해서 서로 상처줬고 무심했고 무지했던 존재들. 그 속에서 나를 생각한다.


그러다 할머니의 화장실을 생각했다. 당연한 게 없어 불편했던 하지만 당연하게 됐어도 그 전을 항상 떠올리게 하는 것. 화장실은 당연해서 희미한 존재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해줬다.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중에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 잃기 전에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소중하게 여겼으면, 잃지 않고도 충분히 소중한 것들을 소중하게 대했으면 좋겠다. 무주공산 할머니집에 우뚝솓은 화장실을 보며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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