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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성우 Oct 24. 2021

할머니 집을 생각하면 마음이 잠시나마 편안해진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안심이 될 때가 있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안심이 될 때가 있다

한동안 정말 바빴다. 별 보고 나와 별 보고 들어가는 삶이었다. 2달을 편집으로 달렸고 프로그램을 끝냈다. 고단했던 편집이 끝나면 모든 게 다 정상으로 돌아갈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무엇을 해도 큰 감흥이 없었다. 술을 마셔도 영화를 봐도 즐겁지 않았다. 번아웃이 강하게 왔다. 숨 쉴 구멍이 간절하게 필요했다.


그때 할머니 집이 떠올랐다. 7월 완성 이후 2달 동안신경 쓰지 못한 곳. 우선 그곳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조용한 곳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했다. 4년 동안 여수에서 혼자만의 삶을 살아오다 다시 가족과 살게 된 지 5개월이 흘렀다.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가족의 시선이 없는 공간에서 나의 의지만으로 모든 것을 하고 싶었다.


차에 짐을 가득 실었다. 이번 휴식의 콘셉트는 마당에서의 캠핑이었다. 캠핑에 필요한 화로, 캠핑 의자, 장작, 숯을 준비했다. 그 순간에도 사실 확신은 없었다. ‘주말에 잠깐 간다고 얼마나 휴식이 되겠어?’, ‘괜히 더 피곤하기만 한 건 아닌가?’, ‘집에서 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이 들면서 쉽사리 출발하지 못했다. 그래도 안 가고 후회하는 것보다 일단 간 다음에 후회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구리시에서 할머니 집이 있는 논산까지 네비를 찍었다. 3시간 30분이 떴다. 제법 막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일단 출발. 나와보니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있었다. 날씨가 다한 날이었다. 이런 날이라면 운전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서울에 사는 건 자유도가 많이 떨어지는 일이다. 어딘가를 가고 싶어도 차가 막히는 요일과 시간에는 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차가 있어도 사실상 탈 일이 별로 없다. 하남에서 중부고속도로를 빠져나가는 길에 막히던 게 이천을 지나니 한결 나아졌다. 청주, 대전을 거쳐 논산에 도착했다.


할머니 집에 도착해보니 집 근처에 있던 집 하나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버젓이 있던 집이 공터가 되다니, 무슨 일인가 싶었다. 공터가 된 집에 주차를 하고 사진을 찍어 가족들에게 보냈다. 엄마가 말하길 빈집으로 방치되면서 마을 분위기에 좋지 않아 누군가 시청에 신청을 했다고 한다. 빈집이 없으니 주차장도 생기고 마을도 깔끔해져서 좋았다. 하지만 역시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집이 사라지는 건 마을의 기억이 하나 사라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집에 사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집은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게 됐다. 자연의 섭리처럼 생성과 소멸이 집에게도 있는 걸까. 새로 고친 할머니 집과 허물어진 빈집 공터가 묘하게 겹쳐 보였다.



할머니 집에 들어갔다. 새것으로 바뀐 대문을 열고 자갈이 깔린 마당을 지났다. 집에 들어가 짐을 정리하고 이 집의 대청마루 기능을 하는 곳에 앉았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가만히 바라봤다. 동네  고양이가 어슬렁거렸다. 아마 내가 오기 전까지는 이 집이 고양이들의 공간이었겠지 싶었다. 자기들 공간에 내가 오니까 경계를 하는 것 같았다. 이런 주객전도 같은 상황이 있나. 두 달만에 온 내 잘못이다. 가족과 올 때와는 집의 느낌이 사뭇 달랐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소리의 진공 상태 같았다. 들리는 건 새소리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뿐이었다. 그 소리를 들으면 마루에 철퍼덕 앉아있었다. “아 좋다” 이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시골에 오길 정말 잘했다.


커피를 내렸다. 집에서 커피 서버, 드리퍼, 주전자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커피를 한 잔 따라 마당으로 나갔다. 호로록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다시 멍. 생각을 정리하러 왔는데 아무 생각이 안 났다. 무언가를 생각해봐야겠다 싶은데 뭘 생각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였다. 그런 상황이 나쁘지 않아 커피를 마시고 멍을 때리고 그러다 심심하면 노트북에 글을 썼다. 인센스까지 피워놓고 야외 마당에서 글을 쓰니 마치 작가가 된 기분이었다. 방심하지 말라고 모기가 열심히 다리를 물었다. 그렇게 한참을 있었더니 배가 고팠다. 밥시간이 됐다.


고기를 사러 나갔다. 초등학교 앞에 양촌 하나로마트가 있다. 새로 난 길이 아니라 옛날 다니던 산 길을 갔다. 어렸을 때는 이 길이 정말 무서웠다. 슈퍼에 너무 가고 싶은 데 갈 엄두가 나지 않으니까 어른들을 대동했다. 한 번은 친척들을 모아 용감하게 길을 나섰다. 그 길에는 마의 구간이 있었다. 바로 사나운 개가 사는 집이었다. 이 집을 지나기 전 기를 모았다가 한 번에 뜀박질로 통과했다. 그러면 어린애들끼리 신나서 난리를 피웠다. 아마 그 개는 개로서 짖는 일에 충실했던 것 같다. 저 어린애들은 왜 저리 호들갑을 피우는지 어리둥절했을 것 같다.  


그런데 서른 살이 넘어서도 그 길은 여전히 오싹했다. ‘무섭지 않다, 무섭지 않다’ 휘파람을 불며 걸어가는데 갑자기 개가 크게 짖었다. “아 깜짝이야!”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정말 놀랐다. 그렇게 놀라고 나서 어이가 없어서 혼자 웃었다. ‘다 큰 줄 알았는데 뭐 하고 있냐 너’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싶었다.


고기와 막걸리를 샀다. 이곳 하나로마트 고기가 생각보다 맛있다. 어디서 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시골에서 고기를 먹으면 거의 여기서 사 왔다. 그리고 막걸리 두 병을 담았다. 근처에 있는 양촌양조장에서 만드는 양촌막걸리와 논산 특산품인 딸기를 넣은 딸기 막걸리였다. 고기보다 딸기 막걸리 맛이 제일 궁금했다.


마트를 나오니 해가 완전히 졌다. 잠깐 사이에 이렇게 어두워지다니. 역시 시골의 밤은 길다. 그리고 시골의 밤은 무섭다. 동네에 정말 불빛이 없었다. 앞뒤옆 모든 집이 빈집이라 마을에서 사람의 기운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마당에서 숯불을 피웠다. 활활 타오르던 숯이 잦아들 때쯤 고기를 그릴에 올렸다. 치이익 소리를 내며 고기가 익어갔다. 소리를 안주 삼아 딸기 막걸리를 마셨다. 처음 맛은 조금 시큼했다. 그리고 끝 맛은 정말 딸기 맛이 많이 났다. 이 딸기 맛은 바나나우유에 들어가는 바나나향 같은 가공된 맛이 아니었다. 진짜 딸기를 먹고 난 후 입에 남는 그 딸기 맛이었다. 너무 나도 정직한 딸기 막걸리다. 그렇게 고기와 막걸리를 먹으니 얼근하게 취했다. 혼잣말도 하고 혼자 웃기도 하고 아주 원맨쇼를 했다. 이곳에서 나의 이상한 행동을 지켜볼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고양이가 보고 이상하게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9시가 되니 잠이 왔다. 시골의 밤은 빨리 찾아오는 만큼 사람도 그만큼 빨리 자게 만든다. 할머니방에 이불을 펴고 누웠다. 창문으로 뒷산이 보였다. 그게 조금 무서웠다. 어렸을 때도 할머니 집의 밤은 무서웠다. 특히 오줌이 마려우면 화장실이 없으니까 밖으로 나가야 했다. 마당에서 오줌을 싸면 귀신이 나올 것 같았다. 그래도 이제는 화장실이 생겨서 다행이다. 정말로. 지금도 나는 밤에 나갈 자신이 없었다. 어서 잠이 들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50대의 할머니를 생각해본다. 같이 살던 세 자매를 모두 서울로 보낸 뒤 혼자 남게 된 할머니를. 이 시골집에 남겨진 할머니는 그때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내가 태어나서 처음 본 할머니는 이미 60이 넘은 노인이 된 상태였다. 할머니는 시골집과 함께 늙어있는 존재였다. 그러니 할머니가 혼자 시골집에서 지내는 것에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다. 하지만 젊은 나이의 할머니라면 어떨까. 외로웠을까, 무서웠을까, 아니면 여전히 농사 때문에 지친 몸을 쉴 생각뿐이었을까. 아마 피로의 틈 사이로 잠깐의 외로움과 무서움이 스쳐 지나갔을 것 같다. 그 순간을 일로 메웠을 테다.


고1 때였다. 겨울방학에 짐을 싸서 할머니 집으로 왔다. 오로지 공부에만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할머니는 새벽부터 일을 하러 나갔고 저녁 시간이 돼서 돌아오셨다. 나는 혼자 라면을 끓여먹었고 저녁에는 할머니가 끓여주는 미역국, 된장국을 먹었다. 그때의 할머니가 떠올랐다. 혼자 살던 집에 손주가 와서 매일 옆에서 자고 있으니 좋아하던 그 얼굴이, 밥 잘 먹는다고 등 뚜드려주던 모습이. 일부러 밥 한 공기 더 먹고 “맛있어요 할머니”라고 말하던 내가 있었다. 공부가 생각보다 잘 되지는 않았다. 2주 정도 지났던 것 같다. 이제 집에 다시 가서 공부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할머니에게 다시 집에 간다고 말했다. 그때 할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너무 서운해하셨다. 우시기도 했던 것 같다. 시골집을 떠나오던 날 할머니를 안고 나서 시골집을 떠났다. 할머니를 남겨두고 오는 것 같아 떠나는 마음이 무거웠다. 시골집에 혼자 계시던 할머니의 마음은 외로움이었던 것 같다.


시골집에서 하루를 푹 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잡히지 않던 마음이 어느 정도 비워진 것 같았다.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서울에서 마음이 번잡하고 괴로울 때 할머니 집이 바로 떠올랐던 건 왜일까. 그리고 이곳에서의 시간이 왜 마음을 정리해주는 걸까.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안심이 될 때가 있죠’ 인스타에 할머니 집으로 포스팅을 하는데 누군가가 이런 댓글을 달아줬다. 정말 공감이 됐다. 할머니 집을 생각하면 마음이 놓였다. 힘든 상황이 있을 때 잠시 도망갈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완전히 좌절하지 않을 수 있다. ‘내 집 하나 없는 서울에서 살고 있지만 힘들면 찾아갈 할머니 집이 있다’라는 생각이 항상 있는 것 같다. 언젠가 또 지치고 힘든 날이 온다면 나는 다시 할머니 집을 찾아갈 것 같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에 안심을 하며 또다시 일상을 살아갈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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