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성우 Sep 28. 2021

시골 빈집 이렇게 고쳤습니다

서울로 이직하고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서울 생활 자체에 적응해야 했고 새로운 회사에서 새로운 일을 배워나가야 했습니다. 그동안 할머니 집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은 당연히 없었죠. 일단 저부터 살아야 하니까요. 새로운 곳에서의 적응은 언제나 쉽지 않음을 느낍니다. 그저 공사를 맡은 아저씨가 잘해주길 바랄 뿐이었습니다.


대신 공사 소식을 카톡으로 전해 들었습니다. 근처에 살고 있는 이모부가 시간 날 때마다 공사 사진을 찍어줬습니다. 제일 처음으로 지붕이 환하게 발가벗겨졌습니다. 슬레이트를 얹고 있던 답답한 지붕이 투명하게 속살을 보이니까 마음이 시원했습니다. 수십 년 묵은 때를 벗겨내는 것 같았죠. 맨 지붕 위로 나무 골조를 올렸습니다. 그 위에는 새로운 주황색 지붕을 얹었습니다. 지붕을 새로 얹은 것만으로 집은 달라 보였습니다. 지붕이 바뀌었을 때 다들 제일 큰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렇게 낡았던 시골집이 지붕 하나로 순식간에 바뀌었습니다.


집 안에서 천장을 뜯어냈습니다. 캐캐 묵은 서까래가 드러났습니다. 건축 날짜가 선명하게 쓰여있었습니다. 앙상한 그 나무에 한자가 또박또박 쓰여있었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할아버지가 쓰신 걸까. 할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가난을 등에 업고 나무로 흙으로 집을 지었을 할아버지를 생각해봅니다. 폐암으로 돌아가셨으니까 너네는 담배 피우면 안 된다던 그 할아버지. 미안하지만 10년을 담배를 폈습니다. 할아버지 죄송해요. 그런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할아버지를 집에서 만났습니다. 이제 저에겐 외할아버지의 기억이 두 개로 늘어났습니다. 폐암과 앙상한 나무에 새겨진 한자.



무너져가는 뒷벽은 완전히 허물고 다시 올렸습니다. 비개로 지붕을 지탱하고 벽을 허물었습니다. 그리고 공간을 조금 더 넓혀 벽을 다시 쌓았습니다. 방이 워낙에 좁았는데 50cm 정도 넓힐 수 있게 됐습니다.


찢어진 비닐 때문에 집을 더 흉물스럽게 만들었던 집 정면을 벽돌로 쌓아서 테라스나 베란다 같은 형태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밥도 먹고 고기도 구워 먹을 수 있는 대청마루 같은 공간이었습니다. 친척들이 모일 때면 그곳에서 삼겹살 파티를 하기도 좋습니다. 시골에는 그런 공간이 필요하니까요.



주방 옆 공간을 만들어 화장실을 세웠습니다. 화장실은 세웠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땅에 벽을 세우고 설비를 해서 화장실을 세로 지었습니다. 드디어 이 집에 화장실이 생겼습니다. 그동안 바깥에서 볼일을 보고 삽으로 대변을 파묻고 급한 게 아니면 참고 휴게소에 가서 처리하던 과거는 안녕. 문명의 발전이 이 집에도 빛을 비추게 됐습니다.



다음으로 집의 외부를 정리했습니다. 포클레인이 들어와 집의 울퉁불퉁한 시멘트 구조를 벗겨냈습니다. 그러곤 산과 경계가 없던 곳들을 밀어내 집의 영역을 넓혔습니다. 마당 옆에 있던 창고도 허물었습니다. 작은 땅에 집과 창고로 꽉 막혀있던 곳이 환하게 트였습니다. 창고가 사라진 자리로 넘어다 보이는 공간들이 집을 더 넓어 보이게 했습니다. 창고를 없앤 게 옳은 선택이었습니다. 마당 옆에 있던 개울가도 없앴습니다. 최대한 깔끔하게 만드는 게 목표였습니다.



공사내역

지붕

뒷벽 공사

창고 철거

화장실 증축

외벽 마감

베란다 공사

외벽

대문

마당공간

내부 인테리어 - 창문 샷시, 주방 설비, 붙박이장


총 공사 비용 :

대략 5천 만원




4월에 시작한 공사는 한 여름 뜨거운 태양을 지나 7월 중순이 돼 마무리됐습니다. 새로운 직장에서의 적응, 그리고 다른 사람이 공사를 대신 맡아서 해주는 상황에서 집이 고쳐지는 3개월은 찰나에 가까운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짧은 시간만에 집은 묵은 때를 벗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3개월, 단 3개월이면 되는데 할머니는 왜 집과 함께 세월의 무게를 이고 계셨을까. 물론 공사가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70년의 가난한 시절을 떨쳐내기에 3개월은 너무도 짧은 시간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자식들이 집에 제발 화장실 하나만 만들 자고 해도 내버려두라고 했던 할머니가 생각납니다. 이미 다 늙어서 새로운 집을 봐도 감흥이 없으실 겁니다. 다만 이제 이 집이 이전의 때를 벗고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었듯이 우리 가족도 이제 새로운 세대로 넘어가는 통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생존을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았던 부모들과 그 아래서 자란 자식들이 이제는 좀 더 스스로와 서로를 돌보길 바라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