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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성우 Jul 16. 2021

서울 아파트 대신
시골집을 선택한 이유

집의 의미

영끌해서 시골집을 고치자!

아무리 생각해도 왜 할머니의 빈집을 고쳤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하고 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보다 시골집의 로망이나 시골 생활을 더 궁금해할 거란 걸 알고는 있습니다. 시골집을 고를 때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하는지 그리고 공사 업체와는 무얼 체크해야 하는 말하고 집을 고치는 과정을 설명하고 결국엔 시골살이의 기쁨을 느끼는 게 제 글에서 사람들이 얻고자 하는 콘텐츠일 겁니다. 언젠간 저도 그런 이야기를 할 거지만 그럼에도 돌고 돌아서 '왜 서른 살의 청년이 재테크는 안 하고 할머니 빈집을 고쳤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면 저도 그 이유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 어떤 이유에서 뭘 하려고 고쳤는지 아직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어렴풋한 감정들이 떠다니는데 그걸 붙잡아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충남 논산시 양촌면 거사3리  

작년 여름휴가를 논산에서 보내기로 했습니다. 논산 시내 아파트에서 할머니를 모시고 있던 이모네 가족이 아예 할머니 집 근처에 주택을 얻었습니다. 마당도 있고 집도 깨끗한 그곳에서 시골 정취를 맘껏 즐기다 가기로 했습니다. 여수에서 일하던 저는 엄마와 이야기해 여수의 싱싱한 산지 음식을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여름은 장어의 계절입니다. 퇴근 시간에 맞춰 장어를 손질해 얼음을 가득 담아 트렁크에 실었습니다.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왜 나이가 조금씩 들 수록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한없이 소중하게 느껴질까요. 서른 살밖에 안됐지만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행복했습니다. 여수에서 가져온 장어를 굽고 삼겹살도 먹으면서 한 여름밤의 휴가를 보냈습니다.


할머니의 빈집

다음 날 시골 동네를 산책하러 나갔습니다. 걸어서 15분 정도, 멀지 않은 곳에 원래 할머니 집이 있었습니다. 산책할 겸 추억이 있는 할머니 집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할머니 집에는 얼마 만에 가는 걸까. 잘 생각이 안 났습니다. 어렴풋이 기억하기로는 군대 말년 휴가 복귀를 할머니 집에서 했던 것 같습니다. 마침 근무했던 부대가 논산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거의 둘째 이모네 집에 계셨기 때문에 할머니는 뵀어도 할머니 집에 갈 일은 없었습니다. 사실 화장실도 없는 열악한 환경의 집에서 누구도 휴일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알게 모르게 이모네서 모이게 된 것 같습니다.


전역한지도 8년이 됐습니다. 기억 속 할머니 집도 8년 전에 멈춰있었습니다. 오랜만에 가는 할머니 집은 그대로일까. 자연스레 기억은 점점 과거로 돌아갔습니다. 어렸을 때 뛰어놀던 마당은 어떤 모습일까. 여름이면 다 같이 모여 수박 썰어먹던 툇마루는 어떨까. 밟으면 찌그덕거리던 나무 마루는 괜찮을까. 그리고 그 시골집을 활보하던 어린 시절의 나를 보고 싶었습니다. 서른 살이 돼 오랜만에 찾은 나의 어린 시절. 철 없이 놀았던 그 꼬맹이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소멸하는 마을

할머니 집은 예상과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가장 놀라운 점은 허허벌판 시골 논밭에 엄청난 부지의 건물이 세워져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서울에 있던 국방대가 논산으로 이전을 했는데 그게 하필 우리 할머니 집 바로 옆이었습니다. 길조차 제대로 나있지 않던 동네에 잘 정비된 아스팔트 길이 생겼고 슈퍼 하나 없던 동네에 편의점이 생겼습니다. 새로 생긴 도로는 아빠 차가 논밭으로 바퀴가 빠질 만큼 좁았던 곳이었습니다. 국방대가 들어서 있던 자리는 온 친척들이 모여 고구마를 캐던 할머니 밭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그런 시골 논밭이 완전히 다른 것으로 탈바꿈해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낯설었습니다. 이게 뭐지?라는 물음표만 던지며 곧게 난 신작로를 벗어나 시골길로 진입했습니다. 

시골 마을은 그대로였습니다. 낡은 모습이 어쩜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변하지 않은 게 문제라면 문제였습니다. 세상은 앞으로 가는데 시골 마을만 그대로였습니다. 세상은 변하니까 그대로 있는 마을은 뒤로 점점 밀려난 겁니다. 낡은 것은 더 낡게, 오래된 것은 애물단지로, 마을은 흉물스러웠습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사람이 사는 느낌이 별로 안 들었습니다. 시골에 가면 항상 동네 어르신들이 “너는 어느 집 손주냐”라고 물으면 “저 원미 아들이에요”라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동네의 주인 같은 어르신 분들을 마주칠 수 없었습니다. 마을을 거닐며 집을 살폈습니다. 집 대부분은 관리가 안된 모양이었습니다. 마당에는 허리 높이까지 풀들이 자라 있었고 우편함에는 우편물들이 수북이 쌓여있었습니다. 아마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서 집이 자연스럽게 방치됐던 것 같습니다. 시골 마을은 아주 느리게 숨이 끊어지는 생명체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할머니의 빈집 역시 시간이 지나면 마을의 다른 빈집과 같은 운명을 맞이할 겁니다. 거사3리 마을도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었습니다.

집의 의미

"엄마, 이모, 할머니집 완전 폐허던데 괜찮아?"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할머니 집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 집은 너무 오래돼서 고치기도 힘들어. 그냥 둬야지." 엄마와 이모들은 지금의 모습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이 집에서 태어나 자라온 엄마와 이모들이 오히려 더 슬플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국방대가 들어와서 마을이 깨끗해졌다고 좋아했습니다.


'여기 본인들 고향 맞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낡은 집에서 자라났던 엄마와 이모들에게 그 집은 마주하기 싫은 과거의 가난을 떠올리게 하는 걸 수도 있었습니다. 맞이인 엄마가 10살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뿐만 아니라 세 딸은 하교하자마자 밭으로 가야 했다고 합니다. “놀고 싶어도 놀지도 못했는데 집 사정을 아니까 투정도 못 부렸어” 그런 환경에서 자란 엄마는 지금도 모든 걸 아낍니다. 이 집을 보면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생존이 목적인 사람에겐 그 이상은 사치일 뿐입니다. 지금도 명품 하나 사지 않는 엄마를 생각합니다.


저는 집이 사라지는 게 싫었습니다. 우리 가족이, 친척들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 이 집 덕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할머니가 엄마와 이모를 키웠고 그 아래에서 형과 나, 친척동생들이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시골집은 단순히 낡은 집이 아니라 지금 내가 이 모습으로 살아가는 근거입니다. 이 집을 보면서 짠돌이 엄마를 이해할 수 있듯이 엄마가 낳고 성장시킨 나라는 존재는 결국 이 집과 연결돼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 집이 사라진다면 우리 가족의 기반이 사라지는 겁니다. 내 존재의 기반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조금씩 마음 한 구석에 이런 생각이 자리 잡았습니다.


집을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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