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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성우 Oct 10. 2022

동자승이 될 뻔했던 날

1996년 용산사에서

1996년 용산사에서


나와 형은 어렸을 때 교회를 세 개나 다녔다. 부모님은 우리들이 교회에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며 사회성을 키우기를 바랐던 것 같다. 중랑구 망우리에 있던 자그마한 교회는 거의 다 다녔다. 그때는 교회에 가는 게 좋았다. 사람들이 친절하게 맞이해주고 또래 친구들이랑 같이 어울려 놀 수도 있었으니까. 또 예배가 끝나고 나면 달콤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날은 피자가, 또 어느 나은 케이크가, 또 어느 날은 떡볶이를 줬다. 무엇이든 집에서 먹는 밥보다는 맛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니까 어릴 적 교회는 하느님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가면 좋은 곳이었다.


중랑구에서 경기도 구리로 이사 가면서 모든 상황이 바뀌었다. 어느 정도 사회성을 키웠다고 생각했는지 부모님은 더 이상 교회에 우리들을 맡기지 않았다. 내 나이는 5살, 형은 7살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교회에 가서 친구들이랑 놀고 맛있는 것도 먹고 싶었지만 종교의 자유 이전에 이동의 자유가 없는 어린아이에게는 선택의 권한이 없었다. 대신 부모님은 주말에 갈 곳이 있다며 우리를 차에 태웠다. 어느 산에 도착하더니 등산을 시작했다. 낑낑대며 올라가 보니 우리는 어느 사찰에 도착했다. 그렇게 우리는 기독교에서 불교로 개종했다.


절은 교회와 달랐다. 절에 가도 살갑게 반겨주는 사람은 없었다. 스님들은 대부분 대웅전 안에서 절을 하고 있었고 사찰의 살림을 챙기는 분들은 그들끼리 분주했다. 적막한 사찰에는 바람에 딸랑거리는 풍경소리만 울려 퍼졌다. 거기에 또래 친구들은 없고 죄다 등산복을 입은 아줌마 아저씨들뿐이었다. 한창 뛰놀고 싶은 나이에 숨을 죽이며 가만히 있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좀이 쑤셔서 엄마만 달달 볶았다. 아니면 사찰 뒤편에 숨어서 형이랑 숨바꼭질을 했다. 그것도 지겨우면 절의 탑을 몇 바퀴 돌았다. 절의 화룡점정은 먹을 것이었다. 교회는 기다리면 보상을 받는데 사찰은 반대였다. 집에서도 먹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먹어야 했다. 참기름도 치지 않은 비빔밥이나 김치와 나물만 고명으로 얹은 국수가 나왔다. 어린이 입맛으로는 버틸 수 없는 음식들이었다. 모든 부분에서 친어린이적이었던 교회와 비교했을 때 사찰은 사실상 노-키즈존이었다. 우리는 그런 절에 끌려가다시피 갔다.


아빠는 불교 대학원에서 공부를 했다. 학부에서는 건축공학을 공부했는데 갑자기 대학원에서 불교를 공부했다. 너무 뜬금없는 커리어 패스였다. “아빠는 왜 불교 대학원을 간 거야?”라는 질문에 아빠는 항상 그렇듯이 이렇게 말했다. “불교가 좋더라고.” 그렇다, 좋아하는 건 하고 살아야 한다. 대학생 때 RISS 논문으로 자료를 많이 찾을 때였다. 광고홍보학을 공부했던 나는 온갖 커뮤니케이션 논문들을 찾았는데 갑자기 아빠 대학원 논문이 궁금해졌다. 검색창에 아빠 이름을 쳤다. 1997년 논문에 내 한자와 같은 ‘천천히 서'를 쓴 저자가 쓴 논문이 있었다. 논문 제목은 <만해 한용운의 시에 드러난 불교 철학의 이해> 이런 것이었다. 논문을 클릭해서 열어보지는 않았다. 초록을 읽어보고 ‘아빠가 참 불교를 좋아했구나'라고 다시 한번 확인했다.


2000년 용산사에서


어렸을 때는 불교인 게 뭔가 부끄러웠다. 초등학교 친구들은 대부분 교회에 다녔다. 기독교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한국 사회에서 당연한 것이었다. 다수가 하는 것과 다른 것을 한다는 건 무리에서 배제될 수도 있다는 공포를 느끼게 했다. 당당하게 ‘불밍아웃'하는 것은 초등학생에게 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친구들에게는 당연히 기독교라고 거짓말을 했다. 어디 교회 다니냐는 말에는 말 끝을 흐렸다. 이런 거짓말을 해놨으니 친구들을 집에 데리고 오지도 못했다. 내 방에는 부여에서 발견됐던 백제 미륵부처상 사진이 액자에까지 껴서 걸려있었다. 혹여 친구들이 집에 온다고 할 때는 그 부처상이 생각났다. 거짓말로 친구들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냈다. 인생은 고통이고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양을 했던 부처님에게는 미안할 뿐이다.


불교는 가끔 생존을 위태롭게 하기도 했다. 방학이 다가올 때쯤이면 아빠는 “방학 동자승 캠프 가봐. 머리 깎고 한 달 동안 절에서 생활하는 건데 마음이 차분해져.”라고 말했다.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가라고? 그냥 코웃음을 쳤지만 아빠는 사뭇 진지했다. 가끔 형이랑 내가 싸울 때면 동자승 캠프가 우리들의 화를 잠재울 수 있는 처방전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너네 자꾸 싸우면 동자승 캠프 보낸다.” 우리는 잠시 휴전을 가졌다.


1998년 공주의 어느 절에서
1997년 어느 절에서

여수에서 근무할 때 아빠 혼자 여수에 왔다. 코로나로 당구장이 3주간 닫으면서 여수 공사장에서 페인트 칠을 하기로 했다. 대학교에서 건축공학을 공부하고 건설회사에서 본부장까지 했던 사람이 아파트 페인트 칠을 한다. 직업에 귀천은 없는 게 맞지만 세월이 사람을 보잘것없게 만드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아들로서 할 수 있는 건 맛있는 것 사드리고 좋은 곳 보여드리는 것뿐이었다. 3년 동안 여수에서 피디로 일하며 촬영했던 맛있는 식당에 데려갔다. 고향이 부산인 아빠는 의외로 해산물을 많이 좋아하지 않는 덕에 내가 더 잘 먹었다. 일을 쉬는 주말에 어디를 가고 싶냐고 물었다. 아빠는 “순천 선암사랑 해남 대흥사가 있는데 전라도에 있는 유명한 절이야."라고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아빠는 절을 사랑했다.


토요일 아침에 아빠와 함께 순천 선암사로 출발했다. 절에 갈 때 나는 항상 뒷 자석에서 있었다. 이제는 내 차 옆에 아빠를 앉히고 내가 운전을 하고 가고 있다. 어른이 됐다는 뿌듯함을 느끼며 여수에서 순천으로 가는 자동차 전용차선을 달렸다. 선암사가 있는 조계산 주차장에 차를 댔다. 사찰은 보통 깊은 산에 있다. 차에서 내려 천천히 조계산을 올랐다. 아빠는 혼자 온 사람처럼 뒷짐을 지고 걸어 나갔다. 익숙한 뒷모습이었다. 여행을 가든 밥을 먹으러 가든 아빠는 따로 온 사람처럼 그만의 길을 갔다.


아빠와 보폭을 맞춰 걸었다. “아빠는 왜 절이 좋아?” 어렸을 때부터 물어보고 싶었던, 하지만 대답을 들었어도 이해하지 못했을 질문을 했다. “조용하잖아. 이렇게 완만하게 올라가는 게.” 등산처럼 정상을 향해 노력하지 않아도 걸어가다 보면 보이는 곳이라, 허덕이지 않게 도착할 수 있는 곳이라, 지금은 이런 사찰이 나도 좋다. 조계산의 숲 냄새를 맡으며 걷다 보니 선암사에 도착했다.


선암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전국 ‘산사’ 7개 중 한 곳이다. 529년에 건립된 유서 깊은 사찰이다. 그 오래된 시간이 사찰 곳곳에 묻어있었다. 사찰 나무의 색은 전체적으로 자연적인 나무 색과 비슷했다. 건물 외부에 옻칠을 해 빨간빛이 도는 게 보통 사찰의 모습이다. 하지만 선암사는 그런 인위성마저도 띄지 않고 자연을 그대로 사찰 내부로 들인 듯했다. 오히려 그 점이 좋았다. 오래된 것은 오래된 대로 드러내고 있는 모습이었다. 선암사와 아빠는 그런 점에서 비슷했다. 아빠는 머리가 벗어지든 얼굴이 까매지든 인위적인 치료를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늙어가고 있다. 엄마는 관리를 안 한다고 뭐라고 하지만 아빠는 그런 점에서 시간의 흐름을 정직하게 담고 있는 사람이다.


선암사를 떠나며 아빠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조계산을 오르는 등산객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아빠와 나란히 어색하게 카메라를 바라봤다. 사진을 찍어주는 등산객이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둘, 셋' 자연스레 아빠의 어깨를 감쌌다. 어느새아빠의 몸은 많이 작아졌고 나의 몸은 아빠보다 한참 커졌다. 부모 품에 의지해왔던 절에서 이제 부모를 품는다. 사찰은 그걸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이라고 가르쳐주고 있다.


불교의 핵심 사상 중 하나는 윤회다. 우리의 연은 끝이 없고 계속 순환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이전 생은 인간이 아니라 동물이었을 수도 있고 식물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 인연이 이렇게 닿아서 우리는 부모와 자식으로 만났다. 어떤 운명의 수레바퀴가 맞아떨어져 우리가 이렇게 가족으로 만났는지는 모르겠다. 수많은 인과 연의 순환을 지켜본 천년 사찰 선암사 앞에서 아빠와 아들로 만난 우리는 인연을 받아들이며 사찰을 떠났다.


2020년 선암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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