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감정 속의 초보 프리랜서 03. 더없이 행복한(Blissful)
스물셋, 당시는 내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암흑기였다. 처음으로 겪는 이별의 아픔과 불투명한 진로의 어지러움 속에서, 앞으로 어떤 길을 어떻게 걸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마음을 추스르는 것도 힘들었고, 취업 준비를 하는 것도 버거웠다. 모든 것을 다 멈추고, 그냥 도망치고 싶었다. 대학교 입학 후, 늘 4.5점 만점에 4.0점 이상의 학점을 받던 내가 그 시기에는 3.0점도 넘지 못했다. 결석이 잦았기 때문이다. 대인기피증이 찾아왔다. 친구는 물론 가족과의 만남도 피하기 위해, 하루 종일 동네 독서실에서 혼자 시간을 보냈다. 나 스스로를 작은 공간에 가뒀다. 참 많이 괴로웠고, 숨이 막힐 정도로 외로웠다.
오랜 시간 동안, 슬럼프 속에서 홀로 한참을 표류했다. 그러다 문득, 다시 새롭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누구에게나 비장한 각오로 결심을 다지는 순간이 있다. 나는 2011년 4월 21일이었다. 네이버에서 기존 아이디를 삭제하고 새롭게 만들었다. 당시 나는 대학생 시절 내내 운영하던 블로그가 있었기 때문에, 오래 사용한 계정을 삭제한다는 것은 꽤 커다란 결심이었다. 그만큼 간절하고 절실했다. 그때 만든 아이디는 'blissful_yu'이다. '더없이 행복한'이라는 뜻을 지닌 'blissful' 그리고 내 이름 중 한 글자인 'yu'의 조합으로 만들었다. happy도 아닌, blissful이라니. 그때의 나는 행복에 대한 갈증이 너무나 컸다.
그때부터 행복을 찾기 위한 여정은 오래도록 이어졌다. 행복에 관한 책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읽었다. 과거와 현재를 아울러, 그 모든 책에는 행복을 느끼기 위한 공통된 방법이 있었다. 책을 읽을 때에는 이것을 머리로만 이해할 뿐, 가슴으로는 와닿지 않았다.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으니 막막했다. 그때 주위를 돌아보니, 해외여행을 떠나는 친구들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무작정 친구들을 따라 해 보기로 했다. 오랜 세월, 로망을 품고 있던 호주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사실 호주는 내가 신혼여행으로 가보고 싶은 나라였다. 홀로 떠나는 여행이 겁나서, 약 1년 전에 미리 비행기 티켓을 구입하고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매일 호주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며, 머릿속으로 여행을 떠났다.
드디어 다가온 여행일, 한국에서 14시간을 날아 시드니에 도착했다. 여행 이틀 차에는 오페라 하우스를 직접 눈으로 마주했다. 그때 나는 인생 처음으로 황홀경을 느꼈다. 피부에 닿는 햇살과 바람이 따뜻했고, 잔잔하게 일렁이는 바다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자연을 둘러싼 화려한 도심의 모습은 독보적인 예술작품 같았다. 무엇보다 지형과 잘 어우러진 거대한 오페라하우스는 차원이 다른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길거리를 지나가며 나를 향해 따뜻하게 미소 짓는 사람들의 모습도 따스함 그 자체였다. 그 후로도 벅찬 감정이 이어졌다. 거대한 블루마운틴이 눈앞에 펼쳐진 순간, 본다이 비치의 푸르른 야외 수영장과 웅장한 바다가 어우러진 모습을 본 순간, 헬기를 타고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내려다본 순간은 가슴이 터질 정도로 감동스러웠다.
9박 10일 동안의 나는 행복했다. 드디어 행복을 찾는 방법을 알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니, 그 행복은 점차 사그라들었다. 행복을 느낀 상황과 현실의 상황에 괴리감이 있었다. 갈증이 밀려들었다. 또다시 행복을 맛보기 위해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쉽게 떠날 수 없는 환경 탓에, 오히려 불행하게 느껴졌다. 커다란 행복을 가끔 느끼는 것보다, 잔잔한 행복을 자주 느끼고 싶었다. 나에게 여행은 근본적인 행복을 찾기 위한 정답이 아니었다.
조금 더 자주 여행 기분을 느끼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연차 휴가를 내고 혼자 호텔에 갔다. 매일 머무는 공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 신선했다. 지금은 호캉스라는 단어가 생겼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용어도 없었다. 호텔에서 보낸 하루를 블로그에 기록했는데, 그런 나를 신기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비용을 고려해야 했던 사회 초년생인 나는 매번 특급 호텔에 머물 수는 없어서, 주로 비즈니스호텔을 찾아갔다. 매번 비슷한 호텔만 찾아간 탓에 새로움이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나는 행복을 얻기 위해 돈을 지불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스스로 탐탁지 않았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신선함보다, 홀로 머무는 것에 대한 외로움도 커졌다. 호캉스 역시 나에게는 정답이 아니었다.
여러 번의 행복 찾기 시도가 실패로 끝나고, 그 후로는 행복을 찾는 것에 소홀해졌다. 새로운 행복을 찾아 나서는 대신, 그동안 살면서 느낀 행복을 되돌아보고 기록하기 시작했다.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채널에 <쏘스유의 행복 한 방울>이라는 제목으로 콘텐츠를 연재했다. '독서, 요가, 여행, 글쓰기, 등산, 산책, 샤워, 요리, 카페 탐방, 대화' 등 내가 조금이라도 행복을 느꼈던 순간을 하나씩 떠올렸다. 큰 의미 없이 반복했던 행동을 '행복'이라는 것에 집중해 바라보았다. 처음 해보는 낯선 경험이었다. 일상에서 거리감이 느껴졌다. 이때 나는 처음으로 나만의 행복에 대해 깊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나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어떤 것을 할 때 행복한지, 점차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나를 충분히 들여다보니, 나아가 다른 사람들은 어떨 때 행복을 느끼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행복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동안 내가 만든 행복 콘텐츠를 보고 먼저 인터뷰에 지원해준 사람들도 있었다. '퇴사, 육아, 등산, 직무, 운동, 가족 사업, 직업, 공부, 소통, 블로그, 예술' 등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채로운 행복 이야기를 들었다. 행복 인터뷰를 할 때, 인터뷰이들의 눈은 하나같이 모두 반짝였다. 자신의 행복을 말하는 모습이 빛나 보였다. 매번 나는 행복을 얻을 때, 수반되는 어려움은 없는지 물어보았다. 모든 인터뷰이들은 그를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자신의 행복을 찬양했다. 사람마다 행복은 모두 제각각 다른 모습이었지만,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에게 행복이란 '특별한 사건'이 아닌, '일상의 행동'이었다.
프리랜서가 된 후,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는 날도 있다. 그럴 때에는 종종 고독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회사원 시절에는 이런 고독을 간절히 원했지만, 그래도 그 정도가 심하다고 생각되는 날이 있다. 그럴 때에는 우리 집에서 새롭게 함께 살게 된 친구를 바라본다. 키가 내 무릎 정도인 '알로카시아'라는 식물이다. 나는 '알로'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나는 알로에게 힘들 때에는 창작의 고통을 말해주기도 하고, 심심할 때에는 노래를 불러주기도 한다. 싱그러운 초록빛 잎사귀가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내가 알로에게 해주는 것이라고는 한 달에 한 번씩 물을 주는 것이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로는 자신의 자리에서 멋스러운 존재감을 뽐낸다. 알로는 빠르게 성장할 필요가 없다.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된다. 그저 본연의 모습 자체로도 멋지다. 말 그대로 '자연'스럽다. 나는 그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며 행복을 느낀다.
<꾸뻬 씨의 행복 여행> 책에는 내가 깊게 공감하는 문장이 있다. "행복을 목표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나 역시 행복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쓸 때에는 그 감정을 얻을 수 없었다. 나를 보채고 다그칠 때에는 행복과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 하지만 행복을 좇는 대신 나를 들여다보니, 그렇게 꿈꾸던 순간이 찾아왔다.
단언컨대, 나는 프리랜서가 된 이후로 더없이 행복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 우리 집 알로가 그렇듯, 그저 '내가 옳은 것'을 하면 된다. '나에게 맞는 것'을 하면 된다. 프리랜서를 결심하며 품었던 그 마음대로 행동하면 된다. 빠르게 무언가를 달성하지 않아도 괜찮다. 당장 어떤 모습이 될 필요도 없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지속적으로 하고 싶은지, 어떤 환경 속에서 살고 싶은지 확실하게 알면 된다. 그리고 그 길 위에 나를 올려둔다. 나는 오랜 세월 힘들게 돌고 돌아, 드디어 이 순간을 마주했다. 행복과 관련된 수많은 책들의 공통된 메시지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한 순간이다.
특별한 무언가를 할 때 오는 감정은 '행복(happy)'이다. 하지만 '더없는 행복(blissful)'이라는 감정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느낄 수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일상이 행복해야, 고차원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운 초보 프리랜서. 사실 나에게는 지금이 가장 치열한 시간이다. 하지만 더없이 행복하다. 참으려고 애써도 튀어나오는 기침처럼, 행복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세상의 어떠한 감정도 24시간 내내 느낄 수는 없다. 더없이 행복한 감정 역시 마찬가지다. 행복하지 않은 순간도 당연히 찾아온다. 하지만 우울해할 이유는 없다. 밀물과 썰물이 오가듯, 분명 행복은 다시 나에게 찾아온다. 내가 걸어야 할 올바른 길에 나를 올려 두니, 행복한 순간들이 많아졌다. 내가 싫어하는 일은 덜 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은 더 한다. 다른 무엇도 아닌, 내 시선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선택한다. 나는 앞으로도 끝없이 변화할 것이기에, 오늘의 내 마음에는 어떤 행복이 담겨있는지 살펴본다. 어떤 삶을 살기를 바라는지, 무슨 꿈을 꾸는지 깊게 들여다본다. 역시, 더없이 행복한 순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