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유일한 한 가지

감정의 유랑을 마치며

by 쏘스유


<프리랜서 감정 처방전> 탄생 배경이 된 '무드 미터'



중요한 일을 할 때면, 나는 꼭 내가 만든 루틴을 지킨다. 특히, 글을 쓸 때가 그렇다. 내가 사랑하고 신성하게 여기는 글쓰기를 하기 전에는 책상부터 정리한다. 그날 글쓰기의 재료 혹은 영감이 될 책들만 올려두고, 나머지 책들은 책장에 가지런히 꽂는다. 언제나 청결하게 관리하는 책상이지만, 그래도 글을 쓰기 전에는 한번 더 말끔하게 닦는다. 나만의 의식적인 행동이다. 이렇게 깨끗하게 치우고 나면, 책상 위에는 온전히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만 맴돈다.


글을 쓰다가 막막한 순간이 지속되면 샤워를 한다. 글을 쓸 때면,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날아다닌다. 여러 가지 향수를 오랫동안 시향 하면, 더 이상 향기를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이 온다. 글을 쓸 때에도 필연적으로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 그럴 때에는 애꿎은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것이 아니라, 일단 자리에서 일어난다.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온몸으로 맞다 보면, 이리저리 얽히고설킨 생각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글과 관련 없는 생각은 물과 함께 씻겨 내려간다. 그와 동시에, 글쓰기에 필요한 생각들이 하나로 꿰어지는 순간이 온다.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인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쳤다. 나 역시 샤워할 때마다 외친다.


나만의 루틴을 마치면 결국, 유일한 한 가지가 남는다. 이것이 핵심이었다. 처음 마주하는 직업의 전환 과정에서도, 나에게 꼭 필요한 한 가지를 남기는 것이 중요했다. 9년 동안 회사원으로 생활하고, 프리랜서 세계로 갓 뛰어들었을 때 나는 이 한 가지가 무엇인지 몰랐다. 이유를 모르고 날마다 불안에 떨었다. 좋은 감정이 찾아와도, 곧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 그 순간을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 자발적으로 프리랜서를 선택한 만큼, 자신감이 넘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묵직한 책임을 버겁게 느끼는 내가 유약하다고 생각했다.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인 탓에, 정작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제대로 완수하지 못했다.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누구든 만나고 싶었다. 주위 친구들은 대부분 과거의 나와 같은 직장인이었다. 몇 명 없는 프리랜서 친구들은 처음부터 프리랜서인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최소 3년 이상 일을 지속한 선배 프리랜서들 뿐이었다. 급격하게 신분이 달라진, 경력 1년 미만의 초보 프리랜서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서점에 가보니 '프리랜서'와 관련된 책은 많았다. 하지만 프리랜서인 내가 품고 있는 '감정'을 들여다보고, 해결책을 알려주는 책은 없었다. 그렇다고 의사에게 찾아가 전문적인 심리 상담을 받을 용기는 없었다. 무엇보다 의사 역시 초보 프리랜서가 아니었다.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한 나는 결국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로 했다. 글을 쓰는 것이다. 매일 쓰는 일기에 내 감정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날짜 옆에는 프리랜서로 시작한 디데이를 기록한다. 그와 함께, 그날의 중심 감정을 적는다. 이때에는 '무드 미터(Mood Meter)' 그래프를 참고했다. 총 100개의 감정 중에서 가장 유사한 감정 하나를 선택했다. 그리고 내가 왜 그 감정을 느끼는지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일기장은 나만 볼 수 있는 비밀스러운 공간인만큼, 상황과 느낌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적었다.


무엇을 하든 시간이 쌓이면 실력이 된다고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100개의 감정을 담은 그래프를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내 감정이 어떤 상태인지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일인 탓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감정을 들여다보는 행동을 반복하니, 점차 노하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일정한 시기를 지나니,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내 감정이 어느 사분면에 머무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유도 짐작할 수 있었다.


가장 좋았던 점은, 내가 감정에 휘둘리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반대의 상황이 되었다. 내 감정에 따라, 그날 어느 정도의 일을 집중해서 할 수 있는지 계산할 수 있었다. 어떤 감정이 느껴질 때, 어떤 종류의 일을 하면 더욱 잘 되는지도 알 수 있었다. 감정을 활용하게 된 것이다. 초보 프리랜서에게 결국 중요한 단 한 가지는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더욱 범위를 좁혀서 말하면, '나의 감정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빨간색 사분면에 위치한 '불안한, 스트레스받는, 안절부절못하는' 감정. 파란색 사분면에 위치한 '의기소침한, 우울한, 실망스러운' 감정. 초록색 사분면에 위치한 '평온한, 감동적인, 감사하는' 감정. 노란색 사분면에 위치한 '만족스러운, 동기 부여된, 더없이 행복한' 감정. <프리랜서 감정 처방전> 브런치 북에는 내가 프리랜서가 된 후, 일기장에 자주 기록한 열두 가지 감정을 추려서 담았다. 예전에는 내가 막연히 부정적인 감정만 느낀다고 생각했는데, 정리하고 보니 나는 모든 감정을 골고루 느끼는 사람이었다.


각각의 감정이 다가올 때를 분석하기 위해, 아주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나의 모든 순간을 꺼내보았다. 글을 쓰다가 울음이 터진 순간도 있었고, 잔잔한 웃음이 나는 순간도 있었다. 그동안 나는 유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정반대였다. 그동안 나는 여러 감정을 다채롭게 느꼈고, 그 감정을 소화하려고 애썼으며, 그 과정을 통해 지금의 내가 되었다. 모든 감정들은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는 탄탄한 토대가 되었다.


오랜 세월 동안 헤맨 감정의 유랑이 끝났다. 눈에 보이는 유형의 것을 찾아 나섰다면, 오히려 쉬웠을 것 같다. 실체가 없는 감정이라서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비판 없이 다른 사람들을 따라 유형의 것을 추구하며 살다 보니, 무형의 것의 중요성을 모르고 살았던 탓이다. 살아가는데 더욱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처방전'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제목으로 선택한 이유 역시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동안, 사금을 채집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노력 끝에, 반짝이는 열두 가지 감정에 대한 처방전이 탄생했다.


갓 프리랜서가 되었을 때에는 예상보다 당혹스러운 마음이 컸다. 아직 날개가 마르지 않았을 뿐인데, 나에게 문제가 있는 줄 알았다. 아직 날개에 근육이 생기지 않았을 뿐인데, 나는 내가 날지 못하는 새라고 생각했다. 촉촉하고 보드라운 날개를 지닌 세상의 모든 초보 프리랜서가, 나처럼 부정적인 감정 앞에서 스스로를 의심하는 순간이 없으면 좋겠다. 부정적인 감정이 들거나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싶을 때, 이 책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물론, 이 책은 초보 프리랜서에게 적용 가능한 처방전이다. 나 역시 지금의 순간이 지나고 더욱 성장하면, 그 단계에 맞는 또 다른 프리랜서 감정 처방전이 필요할 것이다. 그때의 나는 또 다른 감정 처방전을 만들 것이다. 나 스스로를 믿는 마음으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한 프리랜서라면, 누구든 자신만의 처방전을 만들 수 있다. 감정의 원인을 정확하게 들여다보고 그것을 자유롭게 활용한다.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펴고, 끝없는 하늘을 훨훨 날아오르는 순간이다.



여전히 매일 기록 중인 초보 프리랜서의 감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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