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감정 속의 초보 프리랜서 01. 만족스러운(Pleased)
만족스러운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 먼저 나의 하루 일과를 공유하고 싶다. 프리랜서를 시작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나는 여전히 9년간 지속한 회사원 시절이 생생하다. 그래서 회사원 시절과 프리랜서 시절의 하루를 종종 비교하기도 한다.
아침이 밝으면,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내게 맞는 시간에 일어난다. 대체로 회사원 시절보다 이른 시간에 눈을 뜨는 편이다. 과거에는 알람 시계를 5분 단위로 맞추며, 마지막 다섯 번째 알람이 울릴 때까지 나와의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지금은 시계를 따로 맞추지 않는다. 그런데도 내가 일찍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원하는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덕분이다. 언제나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
개운하게 일어나서, 세수와 양치를 하고 책상 앞에 앉는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모은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한다. 음악을 흥얼거리며 일기장을 펼치고, 펜으로 일기를 적는다. 급한 일이 없다면, 오전 시간에는 되도록 노트북을 켜지 않는다. 회사원 시절에는 보통 일과가 끝난 저녁이나 하루가 마무리되는 밤에 적었다. 밤 대신 아침에 일기를 쓰니, 나 스스로를 다잡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다른 사람을 탓하기 바빴던 밤의 일기와는 달리, 아침의 일기는 나를 향한 격려와 세상을 향한 감사로 가득하다. 물론, 초조함이나 불안함 등의 감정이 담길 때도 있다. 그런 감정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적는다. 신기하게 일기장에 적고 나면 부정적인 감정은 줄어들고, 긍정적인 감정은 증가한다. 일기장의 마법인가.
종이 위에 한 글자씩 꾹꾹 선명하게 쓰면, 흘러가기 쉬운 무형의 생각이 명확히 자리 잡은 유형의 현실이 된다. 보통 10분 동안 손바닥만 한 노트의 한 페이지를 빈틈없이 가득 채운다. 빼곡한 글들이 모여 나의 일대기가 된다. 한 해의 마지막 날에는 1월 1일부터 쓴 일기를 천천히 읽는다. 나만의 연말 행사인데, 그 어떤 책을 보는 것보다 재미있다. 과거의 내가 애틋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이때는 이랬구나, 저때는 저랬구나, 하며 놀라기도 한다. 목표가 현실이 된 경우가 많아서 신기하다. 올해 12월 31일에는 365일 동안의 일기를 보며 어떤 감정이 들지 기대된다.
일기장을 소중하게 책꽂이에 꽂고, 냉장고 문을 열어본다. 오늘은 어떤 요리가 좋을까? 잠시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보통 유통기한에 따라 그날의 요리가 결정된다. 나는 서양식 브런치를 좋아한다. 냉장고에는 내가 주로 사용하는 빵, 치즈, 연어, 계란, 아보카도 등으로 가득하다. 애정하는 식재료로 가득한 냉장고를 열어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재료를 하나씩 꺼내 브런치를 만든다. 오늘은 토스트 한 빵 위에 계란과 새우를 올린 오픈 토스트를 만들었다. 프라이팬에 재료를 구울 때부터 먹음직스러운 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식빵, 계란, 새우 모두 내가 원하는 굽기로 조리한다. 소스 역시 내가 원하는 만큼 빵 위에 바른다.
나는 최근 '쏘스유하우스(@sourceyou_house)'라는 라이프 관련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다. 이곳에 내가 만든 브런치 사진을 올린다. 시간이 갈수록 욕심이 생겨서, 구도를 고민하고 소품을 곁들이며 더욱 멋지게 사진을 촬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진심이 통한 덕분인지, 벌써부터 사람들의 반응이 좋다. "레스토랑 같아요.", "맛있어 보여요.", "저도 비슷한 접시가 있는데, 이런 비주얼이 나오지 않아요." 등의 감탄 가득한 댓글을 보면 절로 어깨가 으쓱거린다. 오늘은 평소 이용하던 인테리어 앱 담당자가 인스타그램을 보고 협업 제안을 했다.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간 채로 제안을 수락했다. "역시 좋아서 하는 일이 최고야!" 감탄사를 외치며.
브런치를 다 먹으면 점심시간쯤이다. 이 시간에는 필라테스를 하러 간다. 회사원 시절에는 시간과 체력이 모두 가능해야 운동을 했다. 프리랜서가 된 지금은 시간과 체력을 미리 끌어다가 운동에 사용한다. 부자가 되려면 소비하기 전, 월급 통장에서 저축할 금액부터 미리 빼놓아야 한다. 운동도 같은 이치다. 건강은 다 쓰고 난 뒤에 챙기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어 미리 섬세하게 돌봐야 한다. 특히 나를 지켜주는 유무형의 울타리가 없는 프리랜서에게 건강은 곧 나의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회사원 시절에는 주로 저녁 시간대에 필라테스를 했다. 항상 퇴근한 직장인들로 가득했는데,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어둡고 칙칙하다. 동작에도 힘이 없다. '억지로 끌려온 것도 아니면서 왜 그런담.' 하며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면, 나 역시 영락없이 핏기 없는 모습이라 놀랄 때가 많았다.
점심시간 필라테스 수업의 분위기는 저녁시간과 전혀 다르다. 사람들의 표정이 밝고 힘이 넘친다. 50분 동안 쉼 없이 이어지는 강도 높은 필라테스 수업은 함께 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중요하다. 다들 열심히 필라테스를 하는 모습에 나까지 씩씩하게 운동할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서로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인사가 나온다. 서로 눈을 맞추며 환한 미소도 짓는다. 한국에서 이런 일이 가능하다니, 마치 휴양지로 해외여행을 온 것 같은 느낌이다. 새삼 점심시간 수업의 위력을 깨닫는다. 몸과 마음이 매일 조금씩 더 단단하고 유연해진다.
집으로 돌아오면 옷을 갈아입고,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한다. 내 취향으로 가득한 작업실에서 내가 계획한 일들로 하루를 채운다. '블로그 포스팅, 콘텐츠 제작, 브런치 글쓰기, 인스타툰 그리기, 업무용 SNS 관리, 프로젝트 관리' 등 하는 일은 매일 다르지만, 모든 것을 관통하는 것은 역시 '글쓰기'이다. 퇴사할 때 원 없이 글을 써보겠다는 다짐과 의지를 매일 지켜나가고 있다.
회사에서는 내가 하는 일의 한계가 보였다. 상사가 시킨 일을 하면 그걸로 끝이다. '이 일을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해 스스로 납득할만한 답이 없었다. 프리랜서가 된 후에는 내가 하는 일에 한계가 없다. 내가 두드릴 수 있는 문이 많아졌다. 그 문 너머의 세상은 상상 이상의 새로운 풍경이 펼쳐질 때가 많다. 매일이 놀라움의 연속이다. 내가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내게 먼저 노크를 건네는 사람들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협업을 제안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한 이유는 한 가지다. '내가 이 길을 선택하길 잘했구나.' 다시 한번 확신을 안겨주는 덕분이다.
회사원 시절에는 그야말로 일이 일처럼 느껴졌다. 내게 주어진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몰랐던 나는 이유를 월급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에 비해 월급이 작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9시부터 6시까지의 근무 시간을 아주 정확하게 지켰다. 5분이라도 더 먼저 일하거나 더 늦게 일하면, 마음속에서 부글부글 화가 끓었다.
프리랜서가 된 후에는 일이 일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명확하다. 내가 좋아하고 두근거리는 이 행동을 조금이라도 더 하고 싶다. 초보 프리랜서의 열정과 패기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한다. 주말에도 일을 하겠다며, 신랑에게 양해를 구한 날도 많다. 현생에 머무는 사람이라 수입도 고려하지만, 단언컨대 그것이 우선순위는 아니다. 협업 제안이 들어오면, 선택의 우선순위는 '내가 원하는 일인지', 그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과의 결이 맞는지'의 여부이다. 내 동력은 그런 것들로부터 온다. 내가 세운 기준에 맞춰서 일을 하다 보면, 신기하게 돈은 저절로 따라온다.
일을 할 때면 언제나 시간이 훌쩍 흐른다. 몰입의 즐거움을 매일 느낀다. 신랑은 내가 꼼짝도 하지 않고 일하는 것이 걱정된다며 업무용 책상을 새롭게 바꿔줬다. 책상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모션 데스크라고 한다. 하지만 일에 집중하면, 그 버튼을 누르는 간단한 동작조차 잊을 때가 많다. 아무래도 자동 설정을 해두고 강제적으로 한 번씩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한다.
문득 의자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켤 때면, 어느덧 신랑의 퇴근시간이다. 우리 집 요리사는 신랑이다. 회사에서 퇴근하자마자 부지런히 달려온 신랑은 가방부터 내려두고 곧바로 요리를 시작한다. 매일 보는데, 늘 감동적인 모습이다. 나는 애정과 감사를 신랑에게 마음껏 표현한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함께 분리수거를 한 뒤 산책을 한다.
매일 걷는 동네 산책로지만, 날마다 모습이 조금씩 다르다. 나무의 빛깔도 다르고 공기의 흐름도 다르다. 글을 쓰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나는 신랑보다 더 예민하고 감수성도 풍부한 편이다. 내가 느끼는 매일의 다름을 신랑에게 전한다. 처음에는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무심해하던 신랑이었지만,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나를 닮아간다. 무던했던 신랑은 오히려 내가 느끼지 못한 부분을 말해주기도 한다. 신랑의 말 한마디에 글쓰기 영감을 얻을 때도 있다. 다른 두 사람이 만나면, 우주가 두 배로 넓어진다. 다름은 역시 장점으로 생각할 일이다.
산책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샤워를 하고 침대에 앉아 책을 읽는다. 달콤한 바디워시 향이 맴도는 향기로운 독서 시간은 언제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회사원 시절에는 일과 독서가 분리된 것이었다. 업무와 관련된 책을 읽지 않으면,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프리랜서 작가인 지금은 독서가 일과 관련된 중요한 행동이다. 내가 좋아하는 독서를 하는 것이 곧 성장을 위한 토대가 된다. 스스로 한껏 뿌듯해진 마음을 품은 채 깊은 꿈나라로 떠난다.
아침부터 밤까지 쉼 없이 만족스럽다. 일기장에 그날의 감정을 표시할 때, '만족스러운' 상태를 적는 경우가 많다. 만족스럽다는 감정은 모자람 없이 충분하고 넉넉한 상태를 의미한다. 상담학 사전에 의하면, '개인의 욕구와 직업 환경이 일치하는 정도'라고 한다. 프리랜서가 된 후, 내가 왜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렇게 만족스러움을 느끼는지 단번에 알았다. 개인과 환경의 요구조건이 일치해 만족한다면, 직무기간은 연장되고 업무는 유지된다고 한다. '나는 죽을 때까지 글 쓰는 사람으로 살겠구나.' 하는 확신이 든다.
회사원 시절에는 모든 것이 불만족스러웠다. 그 시절의 나는 인생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저 버티는 삶을 살았다.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해 자문을 구하면 항상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조언이 돌아왔다. 가진 것에 만족하라고 꾸짖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현재에 만족하기 위해, 억지로 버틸 필요가 없다.
버티는 대신, 자신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스스로 끊임없이 들여다봐야 한다. 만일 부자를 꿈꾼다면, 그것이 진심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얼마를 가지면 행복할지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그 돈으로 결국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그것을 얻을 때까지 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즐겁게 투입할 수 있을지도 고려해야 한다. 유형의 물질보다 무형의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 좋다. '쇼핑 중독, 알코올 중독, 도박 중독' 등 유형의 것에는 부정적인 중독의 감정이 따라오기 쉽다. 인생의 최상위 지향점은 완수 단계가 아닌 과정 단계가 좋다. 마침내 완수 단계에 도달하면 작게는 허탈함으로, 크게는 번아웃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족스러운 감정을 느끼며 살기 위해, 내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돌아보는 과정은 쉽지 않다. 안빈낙도를 하지 못한다고 스스로를 자책할 이유가 없다. 마음이 울부짖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줘야 한다. 진심을 다해 듣고 또 들어야 한다. 도저히 알아듣지 못할 때에는, 나에게서 조금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것도 좋다. 내가 어떨 때 미소를 지었는지 돌아본다.
나 역시 고민을 거듭하는 동안, 무려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나의 궁극적인 삶의 지향점은 '행복'이었고, 그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자율성' 그리고 '성장성' 두 가지 무형의 가치가 필요했다. 나만의 최상위 지향점을 깨달았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지향점과 거리가 멀어도 만족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용기를 내야 한다. 내 경우에도 나를 돌아보는 일보다 용기를 내지 못해서 낭비한 시간이 길다.
글을 쓰며 살다 보니, 그동안 만든 진주알을 하나씩 들여다보는 것 같다. 내 마음속에 깊게 남은 경험과 생각은 하나의 진주알이 된다. 좋든 싫든 진주알로 평생 남는다. 어떤 진주알은 혼탁하고 어떤 진주알은 깨끗하다. 그 진주알을 만드는 것은 오롯이 나 스스로가 하는 일이다.
정해진 인생의 여행이 끝나면, 열심히 만든 진주알을 하나의 실로 꿰는 순간이 온다. 생을 마감할 때, 사람은 내가 만든 진주 목걸이를 목에 건다. 목걸이는 거뭇한 색일 수도 있고, 새하얀 색일 수도 있다. 목걸이의 진주알은 풍성할 수도 있고 빈약할 수도 있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모든 것이 지속될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살지만, 그 무엇도 영원한 것은 없고 유한함은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온다. 과연 나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목에 걸 진주 목걸이가 마음에 들 것인가. 인생의 끝을 바라볼 때면, 지금 만드는 진주알을 조금 더 예쁘게 가꾸고 싶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일기를 쓰며 스스로 물어본다. "오늘 하루는 만족스럽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