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감정 속의 초보 프리랜서 02. 감사하는(Grateful)
가볍게 웃고 싶을 때마다 찾아보는 영화가 있다. 10점 만점에 9.3점이라는 높은 평점을 받은 이유는 가벼운 웃음 속에 묵직한 의미가 담겨있는 덕분이 아닐까. 내가 열 번 이상 다시 본 <아이 필 프리티(I Feel PRETTY)> 영화에는 자신의 못생긴 얼굴과 통통한 몸매에 불만이 가득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녀는 예쁘고 날씬해지고 싶다는 소원을 품으며 지낸다. 하루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을 하다가 넘어져 머리를 다친다. 기절 후 깨어난 그녀는 자신이 아름다워졌다고 착각한다.
사실 주인공의 외모는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내면이 변했다. 한가득 충전된 자신감 덕분에, 스스로도 몰랐던 자신의 능력을 세상 곳곳에 펼친다. 그녀는 예뻐져서 일이 잘 풀린다고 믿었지만, 진짜 이유는 예뻐졌다고 착각한 덕분이다. 내가 이 영화를 자주 찾아보는 가장 큰 이유는 '좋은 착각'의 힘이 등장하는 덕분이다. <타이탄의 도구들> 책에는 이런 말이 있다.
"추구하는 것에만 집착하면 현재 갖고 있는 걸 잃는다. 반대로 현재 갖고 있는 것에 감사하면 마침내 추구하는 것을 얻게 된다."
경험해보니 '감사하는' 감정을 얻기 위해서는 좋은 착각이 필요하다. <프리랜서 감정 처방전> 글에 다양한 감정을 담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감사하는 감정은 의도적으로 끌어내야 하는 영역이다.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우리의 뇌를 속이는 것이 가장 쉽다고 말한다. 긍정심리학에서는 모든 일을 좋은 방향으로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감사하면, 뇌는 정말 좋은 것으로 착각하고 실제로 행운이 따라온다고 말한다.
감사하다는 말은 '고맙게 여김, 또는 그런 마음'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나는 이 문장에서 '여김' 그리고 '마음' 두 가지 단어에 집중한다. 영화 한 편에도 다양한 견해가 있듯, 같은 상황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마음이 다르다. 아니, 같은 사람이라도 기분과 컨디션에 따라 다르게 수용하기도 한다. 감사하는 감정을 느끼고 싶다면, 나에게 벌어지는 상황을 정말 감사하게 여기는 자세가 중요하다. 세상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감사함 역시 단기적인 노력으로 그쳐서는 얻기 어렵다.
살다 보면 종종 헛헛할 때가 있다. 취업준비생 시절, 수천 개의 문제를 풀고 고득점의 토익 점수를 받았다. 영어와 거리를 둔 일상을 지내고, 시험을 다시 보니 점수가 뚝 떨어졌다. 공부뿐만이 아니다. 10년 이상 요가를 수련하고, 요가 지도자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일이 바빠서 몇 달을 쉬고 다시 요가를 하려고 보니 온몸이 뻣뻣해졌다. 또, 운동뿐만이 아니다. 하루에 9시간씩 투입해 세 달 동안 인스타툰을 그렸다. 글 쓸 것이 많아 세 달 동안 휴식기를 갖고, 다시 그림을 그리려고 하니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자꾸만 실수를 한다. 공부, 운동, 업무 등⋯⋯. 헛헛한 느낌을 주는 인생의 장르는 무궁무진하다.
사람은 모두 커다란 힘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 힘을 자주 꺼내 사용하지 않으면 결국 줄어든다. 성공하고 싶다면, 행복하고 싶다면, 그 무엇을 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감사함의 감정을 회복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각박하고 치열한 삶을 살아내느라, 그 감정은 이미 퇴화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퇴화된 근육에 힘을 불어넣으려면 시간이 걸린다. 이때에는 '될까?'라는 물음표 대신 '된다!'라는 느낌표를 품어본다. 과정을 즐기면 예상보다 결과가 빠르게 다가온다. 강아지가 주인을 향해 달려오듯, 감사함 역시 자신을 예뻐해 주는 사람에게 달려간다.
이제는 감사함을 제법 자주 느낀다고 생각하는데, 여전히 종종 어긋날 때가 있다. 회사원 시절에는 점심시간에 짬을 내어 요가를 하는 것이 커다란 행복이었다. 오전부터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날이면 오후 반차를 내고, 길게 요가 수련을 한적도 있다. 프리랜서가 된 후, 행복했던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요가를 원할 때 언제든 할 수 있는 덕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요가 동작이 잘 되지 않고 힘들게 느껴져서 짜증이 났다. 수업이 끝난 후에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순간 깨달았다. '배가 불렀구나. 이렇게 금방 행복에 무감각해지다니.' 감사함을 멀리하는 순간, 부정적인 감정이 곧바로 밀려든다. 그 이후로 나는 감정의 벽에 틈이 생기진 않았는지 수시로 나를 돌아본다.
"감사합니다." 회사원 시절, 업무 메일의 마지막 문장에 감사하다는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적었지만 그 문장에는 내 진심이 없었다. 전혀 감사하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나에게 어떤 감정이 있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프리랜서가 된 후, 처음으로 나를 둘러싼 상황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다. 나의 실력을 알아주고 능력을 인정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즐거움을 맛본 덕분이다. 나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 삶을 산다는 것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벅찬 감정을 안겨준다. 지금은 업무를 위한 메일을 보낼 때, 감사함을 표현하는 글자에 진심을 꾹꾹 눌러 담는다.
감사한 마음을 받는 입장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던 과거와 다르게, 지금은 상대방이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건네면 그 마음이 고맙게 느껴진다. 나의 마음처럼 진심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특히 프리랜서라면 좋은 착각은 꼭 필요하다. '돈'으로 엮인 클라이언트와의 관계는 자칫 예민한 구도로 흐르기 쉽다. 따뜻한 감성 대신 차가운 이성이 크게 작용할 때가 많은 탓이다.
나는 사기업이든 공기업이든 담당자 및 클라이언트와 재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다. 프리랜서가 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비교적 숙련도가 낮은 초보 프리랜서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대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계약 연장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면, 상대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나의 모든 것을 끌어내 업무를 완성시킨다. 나를 알아주는 상대방은 그 결과와 노력에 감사함을 표현한다. 감사하는 마음은 끝없는 선순환이고,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주고받으면 아무리 일로 엮인 사이라고 해도 유대가 끈끈해진다.
흔들리기 쉬운 프리랜서의 마음을 굳게 다잡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 자신에게 착각하는 것이다. 존재 자체로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지닌 '오프라 윈프리'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감사한 일 다섯 가지를 찾아 기록하는 것이라고 한다. 호기심이 생겨서 주위를 둘러보니 책은 물론, 온・오프라인 모임 등 감사일기와 관련된 콘텐츠가 많았다.
마침 감사함을 진심으로 느끼는 요즘인데, 호기심까지 더해져서 나 역시 감사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살짝 변형해 내 방식대로 기록했다. 나 자신에게 감사한 감정을 적은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매일 한 편씩 글을 쓸 수 있는 끈기를 지닌 나에게 감사합니다.', '책을 빨리 읽는 능력을 지닌 나에게 감사합니다.' 능력에 대한 감사함은 물론, '밤새 깨지 않고 푹 잘 자서 기특해.', '오늘도 건강한 식단으로 챙겨 먹고 운동까지 하다니 대단해.' 등의 사소한 것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어린아이였을 때 받았던 칭찬을 다 큰 성인이 되어 스스로 건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도 하다 보면 실력이 늘어난다.
행여 다른 사람이 볼까 부끄러운 이 칭찬과 감사가 쌓이니 예상 밖의 선물이 찾아왔다. 자존감이 두터워진 것이다. 나 자신에게 도취되어 어떤 상황에도 마음의 흔들림이 없으니, 오히려 다른 사람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나에게 전하는 감사와 칭찬을 반복하니, 그 스킬이 향상된 덕분에 타인의 장점이 순식간에 눈에 들어온다. 진심에서 우러나와, 상대방을 칭찬한다. 나와 만난 사람들은 헤어질 때 항상 똑같은 말을 한다. "오늘 너무 즐거웠어. 진심이야."
프리랜서 초기에는 소속이 없어서 불안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불안함이 눈 녹듯 사라졌다. 지금처럼 내 주위에 좋은 사람들로 가득한 적도 없다. 프리랜서에게 인적자원이란 직업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의도치 않게 감사한 감정 하나로 이 중요한 자원을 얻게 되다니 신기하다. 아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적의 수도 비례해서 증가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인간관계의 갈등이 전혀 없는 것도 만족스럽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의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감사하는 마음은 생활의 만족도를 높여주고, 좋은 일에 대한 기억을 자주 떠올리게 해 긍정적인 안정감을 되살려준다." 앞으로도 평생 꾸준히 착각하며 살아야겠다. 착각하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는 사람에게 언제나 감사의 행운이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