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감정 속의 초보 프리랜서 01. 평온한(Calm)
과테말라에는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걱정 인형(Worry Dolls)'이 있다. 자신의 고민거리를 털어놓으면, 걱정을 대신해주는 인형이다. 인형이 내 걱정을 대신해 줄 것이라는 믿음 덕분에 아이들은 편안하게 잠들 수 있다. 그 믿음이 실제로 걱정을 없애주기도 한다.
과거를 돌아보면, 나는 온갖 걱정을 품은 걱정 인형 그 자체였다. 학창 시절에는 혹시 수업 중에 화장실에 가고 싶을까 봐 수업시간 내내 시계를 본 적이 많다. 시험 기간에는 시험을 망칠 것을 걱정하느라 막상 공부할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했다. 당장 아무런 문제가 없어도, 곧 나쁜 일이 벌어질까 봐 내내 걱정을 달고 살았다. 걱정 인형은 자신의 걱정을 어디에다가 버려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조용함과 평안함을 느끼는 평온한 감정, 불과 작년까지 나는 이 감정을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다. 마음속에 일렁이는 걱정의 파도만 잠잠해져도 행복할 것 같았다. 평온함의 실체가 궁금했고, 그 감정을 느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종교가 없지만, 여행 중 종종 절을 찾아다닌 이유도 평온한 감정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싱그러운 산내음, 은은한 풍경소리, 엄숙하면서도 평화로운 분위기 등은 평온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게 해 줬다. 하지만 절에 머무는 그 순간뿐이었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아 괴로웠다.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난다. 밤새 깊게 푹 잤는지 몸이 가뿐하다. 침실 문을 열고 거실로 향하니, 새롭게 구입한 디퓨저의 향이 은은하게 느껴진다. 더없이 훌륭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좋다. 어제 청소를 하고 잔 덕분에 집이 깨끗하다. 커다란 통유리창 너머로 따뜻한 햇살이 스며든다. 문을 열고 맑은 공기를 집안으로 불러들인다. 맑게 지저귀는 새소리와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 에너지를 안겨준다. 오늘따라 하늘은 파랗고 산은 푸르다. "아, 평온해!"
이제는 과거의 내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로 커다란 평온함을 느끼고 있다. 인상을 쓰며 일어나던 아침은 이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이 되었다. 하루 종일 날씨가 어떤지 모르고 살던 내가, 지금은 바람의 결을 느끼고 계절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꿈에만 그리던 그 감정을 매일 언제든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스스로 궁금해서 그동안의 나를 돌아보았다.
1. 현재를 바로 세우기
작가 생텍쥐페리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책 속에는 마음에 와닿는 말이 있다.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은 현재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내가 평온한 감정을 향해 아무리 손을 뻗어도 자꾸만 닿지 않았던 이유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 때문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시험의 압박이 있으니 그렇다고 하자. 그렇다면 회사원 시절의 나는 왜 그렇게 불안했을까?
소속이 있는 회사원과 야생 상태인 프리랜서의 커다란 차이 중 하나는 심리적 안정감이다. 특히, 내가 재직한 회사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정년까지 근속이 보장되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평온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회사원의 장점을 느낄 수 없다면, 계속 회사를 다닐 이유도 없었다. 어차피 불안할 바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아주 원 없이 마음껏 해보자고 생각했다.
프리랜서가 되니, 예상대로 나를 보호해주는 울타리도 없었고 당연히 일도 스스로 찾아서 해야 했다. 직장인 시절처럼 미래를 생각하는 마음은 똑같이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의 방향이 바뀌었다. 회사원 시절에는 '내가 담당한 업무에 예상치 못한 이슈가 생기면 어떡하지?', '팀장님이 보고서를 지적하시면 어떡하지?' 등 생각이 걱정과 불안에 머물렀다면, 프리랜서가 된 후에는 '만일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기면, 그걸 어떻게 풀어볼까?' 등의 적극적인 해결 단계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은 그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생각을 현재에 머무르게 하는 능력이 생겼다. 인생의 사명과 장기적인 목표는 확실하게 세웠으니, 미래에 대한 생각은 더 이상 미리 끌어서 하지 않는다. 변화가 너무나 빠른 세상에 살고 있다. 당장 내일 일어날 일도 알 수 없다. 미래를 미리 예상해도 모든 것을 예방할 수 없다. 다만 세상의 변화가 찾아올 때, 그 흐름을 빠르게 인식하고 내 업무에 활용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이렇게 생각하니 정신적 에너지 소모가 줄어들었고, 실제로 업무 성과도 훨씬 좋아졌다.
자꾸만 과거로 돌아가고 미래로 달려가는 마음을 잡아 현재에 앉혀둔다. 다만 이것은 단지 '그렇게 해야지'하는 마음만으로는 이루기 어렵다. 인간의 두뇌는 본능적으로 자꾸만 현재에서 벗어나도록 설계된 탓이다. 마음이 현재에 머물 수 있도록, 스스로 집중하기 좋은 환경과 상황을 만드는 것이 좋다.
나는 오감을 다해 현재를 느낀다. 그리고 하루에 하나씩 느낀 점을 기록한다. 눈으로는 어떤 것을 보았는지, 귀로는 어떤 소리를 들었는지, 입으로는 무엇을 먹었는지, 손으로는 어떤 것을 만졌는지, 코로는 무슨 냄새를 맡았는지. 프리랜서가 된 후, 재택근무를 하며 집에서 머무는 날이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감에 집중하니 내가 느끼는 감각은 회사에 다닐 때보다 훨씬 풍성해졌다. 아이가 부모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듯, 나는 매일 나를 향해 다정하게 말한다. 이 순간마다 새삼 '살아있는' 느낌이 들어서 신기하다.
내 오감이 날마다 좋은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내가 주로 머무는 집의 환경을 더욱 좋게 만든다. 깔끔하게 청소를 한다. 향기로운 디퓨저를 놓아둔다. 싱그러운 초록빛의 식물을 키운다. 아무리 바빠도 나를 위해 건강한 음식을 차린다. 미리 시간을 떼어내고, 그 시간에는 꼭 산책을 한다.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로 작업실을 채운다. 인생의 큰 가치를 둔 것에는 더욱 심혈을 기울인다. 내 경우에는 그것이 일과 성장이기에, 업무에 필요한 노트북 등 전자 제품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감각과 감정의 기록이 쌓이면, 업무를 위한 재료가 되기도 한다. 예전에는 취재를 위해 여행지에 가면, 유용한 정보를 찾는데 집중했다. 하지만 지금은 여행 중 오롯이 내가 느끼는 감각과 감정에 중심을 두고 기록한다. 그 기록을 나의 방식대로 하나씩 풀며 콘텐츠로 제작한다. 그렇게 콘텐츠를 만들어 공유하니, 내 글을 좋아하는 독자가 예전보다 크게 증가했다. 나를 위한 행동이고 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뿐인데, 그 행동과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로가 된다. 이제야 제대로 '살아가는' 기분이 들어서 마음이 평온하다.
2. 우주에서 나를 바라보기
앞에서 이야기한 '현재를 바로 세우기'는 가까운 거리에서 평온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다. 두 번째로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조금 더 먼 거리에서 나를 바라보는 방법이다.
나는 영상보다 글을 좋아하지만, 유일하게 챙겨보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KBS에서 2005년부터 방영한 시사교양 프로그램 <걸어서 세계 속으로>이다. 세계의 다양한 도시들을 여행자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역사・문화・삶의 모습 등을 다채롭게 담아낸 구성이 마음에 들었다. 처음에 내가 이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이유는 간접 여행을 떠날 수 있어서였다. 시간이 흐른 지금은 단지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는 자극적인 구성이나 현란한 자막이 부재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한 이 프로그램을 볼 때면 마음의 평온함을 느낀다. 출연자가 낯선 도시를 경험하는 모습과 멀리서 풍경을 촬영한 모습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매회마다 출연자는 다르지만, 그들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이 보인다. 인생이라는 여행 속에서 때로는 멋진 풍경 덕분에 감탄하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사건 때문에 당황하기도 한다. 그 한가운데에 머물 때에는 그 상황과 감정이 너무나 크게 느껴진다. 그 속에 있을 때에는 내가 실수를 한 것 같고 선택을 잘못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순식간에 고요해진다. 단일 사건보다 커다란 맥락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은 끝없이 여행 중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것을 잘 해내고 있다는 것을 되새긴다.
미래의 방향을 알 수 없다는 생각에 늘 불안했는데, 멀리 떨어져서 나를 보면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평소보다 더욱 콱 막힌 느낌이 들 때에는, 우주의 영상을 담은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기도 한다. 거대한 우주에서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표현할 수 없는 웅장함이 오히려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준다.
회사원 시절, 막연한 불안감이 최대치로 높아진 적이 있다. 때마침 블로그 협찬으로, 최면 치료 제안이 들어왔다. 최면을 불신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보다 불안감을 치유하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컸다. 협찬 제안을 수락하고, 약속한 날짜에 최면 치료실로 찾아갔다. 아담한 방에 의자가 놓여있다. 처음이라 낯설고 무서운 마음이 든다. 최면 치료사는 마음이 가장 아팠던 상황으로 돌아가 보라고 한다. 조용하고 신비스러운 환경에서 최면 치료사 특유의 부드러운 어투와 이마를 톡톡 두드리는 동작이 순식간에 나를 그 상황으로 이동시킨다.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보인다. 바들바들 떨고 있는 어린 나에게, 최면 치료사는 충분히 그 감정을 느껴보라고 한다. 그 후에도 다양한 지시를 따른 뒤, 마지막으로 최면치료사는 나에게 어두운 감정을 밝힐 불빛을 찾아보라고 했다. 아무리 둘러보고 한참을 찾아봐도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최면 치료사는 결국 나를 어린 시절의 나에게서 떨어뜨리고 장소를 우주로 옮긴다. 멀리서 바라보니, 어린 나의 몸속에 불빛이 있었다. 불빛은 눈부실 정도로 밝았고, 포근할 정도로 따뜻했으며, 살랑살랑하며 간지럽기도 했다. 지금도 정말 내가 최면에 걸렸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벅찬 감정이 느껴졌다는 것은 사실이다. 최면에서 깨어보니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고, 두 시간이나 훌쩍 흘러있었다. 그때의 경험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최면치료 후, 나는 마음이 힘들 때마다 내 안의 경이로운 불빛을 떠올린다. 그 불빛은 결국 자신감이자 자존감이었다. 현실에서 멀리 떨어진 우주에서 나를 바라보니, 이미 나는 그 자체로 훌륭한 존재였다. 외부에서 힘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그 누구에게 기댈 필요 없이, 나는 나 자신에게 가장 커다란 사랑을 받고 있었다.
평온한 감정을 느끼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재에 머무르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가 도무지 답답할 때에는, 잠시 현재와 거리를 두고 나의 꿈을 들여다보면 좋다.
'무아몽중(無我夢中)'이라는 한자성어가 있다. 자기 자신도 모른 채, 꿈속에 있는 것 같다는 뜻이다. 꿈을 이루고자 집중한다면,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인 '에고(ego)'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프리랜서인 나는 매일 꿈속을 걷는 것 같다. 내가 꿈을 이끌고, 꿈이 나를 이끈다. 꿈 하나를 보고 달려가는 지금은 그 자체로 행복하다. 오랜 세월 꿈꾼 일이 현실이 된 덕분에, 지금의 모습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잘 가지 않기도 한다. 사람은 꿈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라는 사실을 확신한다.
바빠서 평온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힘들어서 느낄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내가 목표한 꿈이 없거나, 그 꿈에 다가가는 과정을 이탈했을 때, 나는 매일 평온과 거리가 멀어졌다. 안정적인 회사원 시절에도 불안했던 이유는 그 삶이 내 꿈이 아니었던 탓이다. 오랜 세월 마구 흔들리고 또 흔들렸다.
내 오감을 되찾고, 내 안의 불빛을 되찾으려는 노력이 있었기에, 마침내 평온한 감정이 찾아왔다. 만일 이 감정을 쉽게 얻었다면, 나는 이 감정에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고 어디론가 흘려보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소중하게 느낀다. 용기 내어 자신의 꿈을 선택한 프리랜서의 삶은 그 자체로 빛이 난다. 꿈을 향해 달려가고, 꿈속을 걷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