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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옥 Oct 18. 2023

단편소설,「귀가」 08

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선정작

오징어까지 사고 난 뒤 엄마와 나는 가까운 카페에 가 있기로 했다. 15분 정도 되는 거리였으므로 오징어와 고등어 봉투를 하나씩 나누어 들고 걸었다. 봉투가 적잖이 무거워서 걸을 때마다 묵직하고 물컹한 게 흔들리며 다리에 툭툭 닿았다. 위판장을 나와 길을 건너니 좁은 바다에 배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바다라기보다는 하천 같아 보였다. 


카페에 들어가 뜨거운 커피 두 잔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새 해가 지기 시작해 바깥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아직도 아버지가 오려면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다. 난방을 한참 틀어 놓는지 카페 안 공기가 덥고 건조했다. 엄마는 거기서도 바닥에 내려놓은 오징어와 고등어가 상하진 않을까 걱정했다. 커피가 나오길 기다리는 틈틈이 테이블 아래로 몸을 숙여 봉투를 주물럭거리며 아직은 괜찮은 것 같다고 안도했다.


“엄마.”


진동벨이 울려 커피를 찾아온 다음 엄마에게 말했다. “형 죽었을 때, 그다음부턴 어떻게 살았어? 기대나 목표 같은 거, 뭐가 있었어?”


엄마는 말없이 커피를 마셨다.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와 현장을 그럭저럭 마무리 짓고 포항으로 가고 있다고, 한 시간 반 정도 걸릴 테니 어디 들어가 있으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 천천히 커피만 마셨다.


형의 죽음엔 아무런 징후가 없었다. 형은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난데없이 차에 치였다. 누구도 그런 낌새를 느끼지 못했다. 하물며 형을 들이받은 그 사람조차도 그랬을 것이다. 장례식장으로 비척대며 걸어 들어온 그 사람은 아버지 또래 정도로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빈소에서 절을 한 뒤 우리 앞에 엎드려 오래전 아내와 사별하고 외동아들을 키워 왔다고, 화물트럭을 운전하며 그럭저럭 먹고살 만큼 살다가 회사가 어려워지며 일을 그만두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대리운전이며 신문 배달 등 안 해 본 일이 없었다고도 했다. 어느 순간엔 너무 힘들어 삶을 포기할까 생각도 해 봤지만, 어린 아들이 마음에 걸렸으므로 다시 이를 악무는 수밖에 없었다고.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모아 5년 전에 작은 고깃집을 하나 냈다고 했다. 아들도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지금은 군에서 부사관으로 복무하고 있다고 했다. 이제 고생은 끝이라고,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며 남자는 죄송하다, 경황이 없었다, 나도 내가 무슨 일을 벌인 건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리며 머리를 조아렸다.


언젠가 민영은 그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궁금해했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TV를 보던 중이었는데, 그래서 그 사람은 징역형을 받았냐, 아니면 설마 형사 합의를 해 준 것이냐,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 했다. 나는 TV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고, 민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해? 죄를 지었으면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지, 어쩌자고 그걸 용서해? 어머님 아버님은 무슨 생각으로 그러신 거래?”


나는 민영에게 그때 우리가 느낀 건 화나 분노가 아니라 슬픔과 허탈함이었다고 오랜 시간을 들여 설명했는데, 민영은 좀처럼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민영의 손을 슬그머니 내 쪽으로 끌어다가 주무르며 “아무렇지 않게 사는 게 때로는 더 큰 고통일 수도 있어…”라고 말했을 때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 내게서 손을 거두고 팔짱을 꼈다. 아마 나는 그때 민영은 이 감정에 대해 평생 알지 못할 거라고, 그러니 저러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는 영원히 평행을 이룰 수밖에 없겠지, 끝내 어떤 접점도 만들지 못하겠지, 그렇게 단정했다. 그러나 이제는 민영도 본능적으로 알 것이다. 무언가를 잃은 사람에게 ‘합당한 처벌’ 같은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남은 건 결국 우리가 누군가를 영영 잃었다는 불변의 사실뿐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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