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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옥 Oct 18. 2023

단편소설,「귀가」 09

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선정작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엄마는 상어 이야기를 했다. 마지막으로 돌아본 위판장에 상어를 파는 곳이 있었다고, 한 마리뿐이었으나 1미터도 넘는 큰 상어였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가격은 15만 원이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엄마는 아이스박스에서 치즈를 꺼내 아버지의 입에 까 넣어 주었다. 아버지는 배가 고팠는지 그걸 얼른 받아먹었다. 회도 매운탕도 거의 먹지 못했으니 종일 굶주렸을 것이다. 둘은 재잘거리며 먹을거리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엄마는 “너도 봤지?” 하며 내게서도 동의를 구했다. 나는 알은체를 했지만 사실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보다도 밤의 어시장에서 내 기억에 남은 것은 솥을 닦는 사람들이었다.


시장 바깥쪽에 문어를 파는 집들이 있었다. 망에 담긴 문어들이 바닥에 널려 있었다. 상인들이 가게 앞에 커다란 솥을 걸어 놓고, 쉼 없이 문어를 삶아 내어 스티로폼 상자에 담았다. 어느 집은 여태 문어를 삶았고, 또 어느 집은 일을 마치고 솥과 아직 삶지 않은 문어를 정리했다. 그리고 나는 어느 한 집에서 아주 나이 많은 사람과 아주 나이 어린 사람이 함께 솥을 닦는 광경을 보았다. 나이 많은 사람은 팔십은 족히 넘어 보였고, 나이 어린 사람은 중학생 정도로 보였다. 나는 그들을 할아버지와 손자라고 생각했다. 나이 어린 사람이 호스로 솥에 물을 뿌리고 있었고, 나이 많은 사람이 몸을 숙인 채 솥 안을 솔로 닦았다. 둘은 호흡이 그리 잘 맞아 보이지 않았다. 나이 많은 사람의 얼굴과 몸에 물이 마구 튀었으니까. 함께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도 나무라거나 혼내거나 하지 않고 묵묵히 솥을 닦았다. 나는 그 광경을 한참 쳐다보았다.


“아저씨, 문어 사시게요?”


내가 거슬렸는지 나이 어린 사람이 솥에서 고개를 들고 내게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그냥 구경하는 거라고 말하고서 그 자리를 벗어나 엄마를 찾아갔다.


그 순간 나는 민영을 생각했다. 아마 과거에 민영과 이곳에 왔다면, 서로 팔짱을 낀 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문어 파는 광경을 더 오래 구경했을 것이다. 그러다 한 마리를 샀을지도 모르겠다. 집에 가서 썰어 먹자고, 소주도 마시자고 들떠서 얘기했겠지. 만약 그때 우리가 말다툼을 한 뒤였다면 문어를 사 들고 돌아오면서 슬그머니 화해했을지도 모른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고도, 대신 손등을 살살 쓰다듬는다든가 민영의 잔머리를 귀 뒤로 넘겨 준다든가 하는 식으로도 충분히 응어리를 덜어 냈을 텐데. 어쩌면 냉장고에 붙여 둔 규칙에 몇 가지 새로 적을 만한 것들을 논의했을지도 모른다. 정작 심각한 상황이 도래한 순간엔 무용지물이 될 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가급적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부부 관계를 만들어 보려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에겐 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손등을 쓰다듬고 규칙을 정돈하는 것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노력이 필요할 만큼, 우리가 입은 상처는 크다. 어쩌면 우리보다 앞서 결혼한 사람들의 조언을 찾아 듣거나, 상담이나 치료 같은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이혼을 하는 게 서로에게 가장 이로운 방법은 아닐까. 우리가 서로를 더욱 원망하고 미워하기 전에, 상실감이 사랑을 완전히 앗아가기 전에 멈추는 게 그나마 우리를 더 아름답게 기억하는 방법이지 않을까. 뜻하든 뜻하지 않든, 이별엔 언제나 노력이 필요한 법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엄마에게 돌아갔고, 아버지의 차를 기다렸다. 문득 민영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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