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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옥 Oct 18. 2023

단편소설,「귀가」 06

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선정작

오래전에 가족 여행으로 지리산에 간 적이 있었다. 입구 근처에 산청군 특산물을 파는 곳이 있었는데, 엄마는 그곳에서 파는 표고버섯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가게 주인이 건네주는 생표고를 씹으며 향이 좋다고, 이런 건 국물 요리에도 좋고 그냥 볶아서 먹어도 좋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아버지와 형은 그런 엄마를 뒤로하고 산으로 걸어갔고, 나는 산에 다녀와서 사도 늦지 않을 거라며 엄마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그날 엄마는 등산하는 내내 표고버섯 타령이었다. 아무래도 사서 오는 게 나았을 것 같다, 그새 문을 닫으면 어쩌냐, 초조해했다. 한 시간 정도 산을 올랐을 무렵, 엄마는 도저히 안 되겠다며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형이 곧장 엄마를 따라갔고, 아버지와 나는 삼십 분쯤 더 산을 오르다가 형의 전화를 받고 걸음을 돌렸다. 엄마가 하산하던 길에 발목을 삐었다는 것이었다. 그날 우리는 예약해 둔 펜션에 결국 가지 못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엄마는 차 뒷좌석에 앉아 표고버섯 상자만 끌어안고 있었다. 이제야 속이 시원하냐고 소리치는 아버지를 애써 외면하며 발목의 통증을 견뎌 냈다.


엄마는 내가 언제 그랬냐, 기억도 안 난다, 쏘아붙이고선 밑반찬만 먹었다. 회를 놔두고 반찬만 자꾸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아버지도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괜한 소리를 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두 사람 모두 형을 떠올리고 있을 터였다. 지리산에 다녀온 이듬해에 형이 죽었으므로. 


언제부턴가 셋이서, 결혼한 뒤론 민영까지 넷이서 어딘가에 가노라면 우리는 어느 순간 꼭 형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며 숙연해지곤 했다. 형 때문에 우리의 나들이는 번번이 망했다. 민영은 금세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엄마를 열심히 달래곤 했다. 본 적도 없는 형을 ‘아주버님’이라 일컬으며 그럴수록 당신들이 더 즐겁게,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떠드는 민영에게 매번 미안했지만, 우리 중에 그런 말을 할 사람은 민영밖에 없었다. 나도 형이 무척 보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이젠 누가 그런 말을 해야 하는 걸까.     


종업원이 매운탕 냄비를 든 채 식탁 옆에 서 있었다. 놓든 무르든 빨리 좀 결정하라고 채근하는 듯했다. 엄마가 종업원에게 탕을 놓아 달라고 손짓했다.


“남의 차 얻어 타고 오든가 걸어서 오든가 알아서들 해라 그러면. 난 간다.”


아버지가 횟집을 나갔다.


“저 인간은 늘 저런 식이지.”


엄마는 버너 스위치를 돌려 불을 댕겼다. 잔뜩 남은 회와 매운탕을 둘이서 다 먹을 수 있을까 걱정됐다. 나는 이제라도 엄마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야 하는지 매운탕이 끓기를 기다려야 하는지 고민했다. 이대로 조금만 있으면 아버지가 돌아와 엄마에게 사정사정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가 넌 네 아빠를 그렇게 모르냐, 말하며 접시에 매운탕을 덜었다. 나는 그제야 휴대폰으로 포항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교통편을 검색했다. 하루에 두 번 시외버스가 있긴 했지만 구미를 경유해서 가느라 네 시간이 넘게 걸렸다. 고등어와 오징어를 들고 네 시간이나 버스를 타야 한다는 게 엄두가 안 났다. 엄마는 매운탕을 먹느라 바빴다. 집에 어떻게 가야 할지 걱정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엄마는 코웃음을 쳤다.


“제발 오지 말아라. 그 핑계로 이혼이나 하게.”


나는 마지못해 매운탕을 한 입 먹었다. 고춧가루를 잔뜩 넣어 맵기만 하고 조미료 맛도 너무 강했다. 엄마가 정말로 맛있어하는 건지 맛있어하는 척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는 순간에도 나는 엄마가 혹 서울로 가자고 말하는 게 아닌지 걱정했다. 텅 빈 집에 가서 왜 민영이 없냐, 뭐가 어떻게 된 거냐 묻는 엄마에게 뭐라고 답해야 할까. 민영에게선 여전히 아무런 답장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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