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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옥 Oct 18. 2023

단편소설,「귀가」 05

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선정작

삼만 원짜리 회치고 양이 꽤 많았다. 한 뭉텅이씩 집어 먹어도 티도 안 날 만큼 많았다. 엄마도 아버지도 상추쌈을 싸서 부지런히 먹었다. 아버지가 잠깐 전화를 받으러 나가는 동안 엄마는 내게 매운탕을 먹지 않겠느냐고 재차 물었다.


“엄마 먹고 싶으면 시키라니까.”

“혼자 어떻게 다 먹으라고.”


마지못해 알겠다고 대답하자 엄마가 종업원을 불러 매운탕과 공깃밥을 시켰다. 밥은 한 공기만 시키려고 했는데 엄마가 나서서 두 공기를 주문했다. 엄마에게도 아버지에게도 탄수화물에 대한 집착 같은 게 있었다. 곡기를 먹지 않으면 끼니를 해결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 세대 어른들이야 으레 그러기 마련이라고 치부했었는데 작년에 아버지가 당뇨를 진단받은 뒤부턴 오히려 그런 게 다 무모한 짓으로 보였다. 오전 작업을 마치고 칼국수를 먹으러 갔는데 허기가 져서 밥까지 말아 먹었다는 말을 들을 때면 몸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너무 안일한 게 아닌가 염려됐다. 어째 나이가 들며 몸이 둔해지는지 크고 작은 부상도 늘어가는 것 같았다. 엄마의 엄지손톱도 그랬다. 쉬는 날인데 굳이 밖에 나다니는 것까지도 이해되지 않았다. 쉬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들 같았다.     


통화를 마친 아버지가 횟집으로 돌아왔다. 신발을 벗고 올라와야 하는데 아버지는 신발을 신은 채 입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얼른 와서 마저 먹으라고 했더니 아버지는 손을 내저었다.


“얼른들 먹고 일어나. 돌아가야 돼.”

“지금? 다 먹으려면 아직 멀었는데? 우리 매운탕도 시켰어.”

“그걸 또 왜 시켜? 빨리 가야 된다니까. 현장에 일 터졌어. 난리도 아니래 지금.”

“왜? 무슨 일인데?”


아버지가 받고 온 전화는 목공팀장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팀원들을 데리고 현장에 나와 봤더니 동네 주민 몇 명이 입구에 오물과 쓰레기를 무더기로 버리고 있더라고 했다. 이게 무슨 짓이냐는 팀장의 말에 주민들은 현장을 돌리고 싶으면 책임자를 불러오라는 말만 거듭했다고. 현장 주인이 카페 주차장으로 쓰려고 매입한 부지에 마을 진입로가 일부 포함된다는 게 그 이유였다.


“나까지 가야 돼? 당신만 가도 되잖아. 얘도 모처럼 내려왔는데….”


엄마가 말하는 동안에 종업원이 테이블에 휴대용 버너를 올려놓았다. 아버지가 종업원을 흘겨봤지만 종업원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관광지에 와서까지 다투는 노부부를 수도 없이 봐 왔을 터였다.


엄마는 완강했다. 매운탕도 못 먹었고 오징어도 고등어도 못 샀으니 지금 바로 갈 수가 없다며 버텼다. 아버지는 시외버스나 기차도 없는데 남아 봤자 어쩔 거냐고, 현장에 갔다가 다시 여기에 오려면 한밤이나 될 텐데 그때까지 자기를 기다릴 거냐고 따졌다.


“해물이야 다음에 또 와서 사도 되잖아. 고집부리지 말고 얼른 매운탕부터 무르고, 회나 좀 빨리 먹어. 지리산 갔을 때 생각 안 나?”


아버지가 동의를 구하려는 듯 내 쪽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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