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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옥 Oct 18. 2023

단편소설,「귀가」 03

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선정작

엄마도 아버지도 모두 들떠 보였다. 차가 막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어머니가 아버지의 입에 인절미를 하나씩 넣어 주었다. 아버지는 기어박스에 콩고물이 떨어지는데도 군말 없이 떡을 받아먹었다. 아버지의 볼이 불룩 솟았다가 꺼지길 반복했다. 아침을 먹은 지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볼이 미어져라 떡을 먹는 아버지가 대단했다. 내비게이션엔 목적지까지 한 시간 이십 분이 소요된다고 나왔다. 엄마가 봉지에서 떡 하나를 꺼내 뒷자리에 앉은 내게 건넸다. 내가 고개를 가로젓자 엄마는 밥을 직접 찧어 만든 것이니 먹어 보라고 재촉했다. 하는 수 없이 떡을 받아먹었다. 밥알이 꽤 많이 씹혔다. 떡을 먹는 것인지 콩고물 묻힌 밥을 먹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콩고물 때문에 목구멍이 깔깔했다.


두 사람은 떡을 먹으며 현장 인근 주민들을 흉봤다. 착공 무렵에는 아무 말도 없던 사람들이 카페 외관이 완성되어 가니까 슬슬 텃세를 부리더라는 것이었다. 발전기 소리 때문에 낮잠을 잘 수 없다거나 먼지가 날려 창문을 열 수가 없다는 둥. 심지어는 마을 사람들이 자주 모일 수 있도록 카페 정원에 평상을 놓으라는 요구까지 들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이야기에 열중한 나머지 기어이 분기점에서 도로를 갈아타는 것도 잊어버렸다. 내비게이션에서 경로를 이탈했다는 음성과 함께 도착 예정 시간이 이십 분 늘어났다.      


모르는 새에 잠깐 졸다가 깼는데 어느새 시가지를 달리는 중이었다. 낡은 상가건물 벽에 각종 상회 간판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엄마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거의 다 왔으니 정신을 차리라고 말했다. 바다 냄새 같은 게 날까 싶어 창문을 열었는데 내륙과 별다르지 않아서 여기가 정말로 포항이 맞나, 잠시 생각했다. 도로 표지판에 ‘죽도시장’이라고 적힌 게 보였다. 시장 근처에 다다르자 도로가 차로 붐볐다. 공영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는 차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는 길 위에서 삼십 분을 허비하다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사설 주차장을 찾아 들어갔다. 얼핏 항구가 보이는 곳이었다. 엄마도 아버지도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면서 놀란 기색이었다. 엄마가 주차장 요금소에 가서 차량 번호와 입차 시간을 적어 놓는 동안 아버지는 주머니에서 선글라스를 꺼내어 썼다. 얼마 전에 엄마가 홈쇼핑으로 주문해 준 거라며 자랑했다.


모텔이 늘어선 골목을 빠져나오니 시장 입구가 나왔다. 위판장과 회 센터를 겸하는 거대한 건물 주위로 아케이드가 빽빽했다. 아버지는 우선 시장을 돌아본 다음 횟집에 가자고 했다. 건어물 파는 곳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바로 어시장이 보였다. 골목 양옆으로 소쿠리와 고무 함지에 물고기와 조개 따위를 담아 놓고 파는 좌판이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좁은 길에 무척 많은 사람과 오토바이까지 지나다녀서 우리는 일렬로 서서 움직여야 했다. 엄마를 사이에 두고 아버지와 내가 앞뒤로 서서 걸었다. 상인들이 우리에게 차례로 호객하는 말을 던졌는데 내게는 말을 걸지 않았다. 누구에게 결정권이 있는지 아는 모양새였다.


“슬슬 배가 꺼진다.”

“벌써?”

“이제 회 먹으러 가자.”


아버지의 말에 우리는 위판장 건물을 찾아 들어갔다. 지층은 새벽 경매가 끝나면 좌판이 깔리고 시장으로 쓰였다. 그곳에 오징어와 고등어를 파는 가게들이 있었다. 간혹 아귀와 갈치와 삼치도 보였지만 대부분은 오징어와 고등어였다. 엄마가 나를 데리고 고등어를 수북하게 쌓아 놓고 파는 가게 앞으로 갔다. 고무 앞치마를 입은 사람들이 쉴 새 없이 고등어 배를 가르고 내장을 빼서 소금을 쳤다. 그 와중에 틈틈이 호객까지 했다. 부산 고등어라고, 살이 단단하고 기름이 올라 지금이 딱 제철이라고. 엄마는 가게 앞에 쪼그려 앉아 손끝으로 고등어를 쿡쿡 찔렀다. 나는 엄마의 옆에 서서 아버지를 찾았다. 저 앞에서 혼자 횟집을 찾아 가고 있었다. 우리가 뒤에 있는지 없는지도 신경 쓰지 않았다.


“뭐 해? 배고프다니까.”


어느 순간 아버지가 우리 쪽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당신 먼저 가고 있어 봐. 고등어 좀 사 가게.”

“아 좀, 이따가 해. 그게 뭐라고 그렇게 유난이냐.”


아버지가 짜증을 내자 엄마가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몇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봤다.


“하여간 니 아빠랑은 아무것도 못 해.”


엄마가 손가락을 바지춤에 문질러 닦으며 말했다. 저럴 때 보면 아주 얄미워 죽겠다. 또 시작이구나, 싶으면서도 내심 나 역시 아버지와 비슷하게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이게 뭐라고. 고등어를 먹어 봤자 얼마나 먹는다고 여기까지 와서. 그러다가도 맛집을 찾아보자는 말을 무시하고 혼자 아무 가게에나 들어가 버리는 아버지를 보니 다시금 엄마 편으로 돌아서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이 어쩌면 저렇게 자기 마음대로일까. 종래엔 이 두 사람이 어떻게 매일 현장에 함께 나가나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맞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나는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확인했다. 오전 열 시였고, 아마 민영도 일어나 있을 터였다. 위판장 사진을 하나 찍어 민영에게 보냈다. 부모님과 고등어 사러 포항에 왔어,라는 말과 함께. 그런 말로 뭔가를 되돌릴 리 만무한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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