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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옥 Oct 18. 2023

단편소설,「귀가」 04

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선정작

점심시간인데도 횟집엔 손님이 두 테이블뿐이었다. 가게 앞에서 삼만 원짜리 회를 맞춰 놓고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종업원이 우리 쪽으로 와서 술이나 탕은 안 시키느냐고 물었다. 엄마가 뭐라고 말하려 하는데 아버지가 회만 먹고 갈 거라고 대답했다.


“왜, 나 매운탕 먹고 싶은데.”

“이따가 출출해지면 시장에서 간식 사 먹으면 되지 뭔 밥을 그렇게 미어져라 먹으려고.”


아버지가 말했다. 엄마가 내게 매운탕 생각이 없는지 물었다. 사실 회도 탕도 그다지 당기지 않아서 어물거렸더니 엄마가 이 집 남자들은 다 똑같다고 투덜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버지는 벽에 달린 TV를 보고 있었다. ‘나는 자연인이다’가 나오고 있었다. 언젠가 아버지는 육십이 되면 반드시 산에 가서 혼자 살 거라고 했었는데, 벌써 아버지의 나이가 예순다섯이었다. 아버지가 여전히 그런 꿈을 꾸고 있나 문득 궁금했다.


“좋겠다.”


아버지가 작게 감탄했다. “진짜 좋겠다.” 엄마도 나도 아버지의 말에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엄마는 회를 기다리는 동안 반찬으로 나온 나물이며 도토리묵 따위를 먹었다. 나도 엄마를 따라 밑반찬을 조금 집어 먹었다. 조미료를 잔뜩 넣었는지 시금치고 콩나물이고 모조리 같은 맛이 났다.


“너, 아빠 친구 상준이 아저씨 알지.”


아버지가 TV에 시선을 둔 채로 말했다.


“알지.”


“걔가 작년에 산에 들어갔다. 걔는 자기 산이 있거든.”


아버지는 친구가 살고 있는 컨테이너에 가서 멧돼지 고기를 얻어먹은 적도 있다고 자랑했다. 멧돼지는 겨울이 제철이다, 뱃살이 가장 맛이 좋다더라. 엄마가 들으라는 듯 한숨을 내쉬는데도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 종업원이 식탁에 회 접시를 내려놓았다. 가지런히 썰린 광어, 전어, 밀치가 빽빽하게 담겨 나왔다. 엄마가 종업원에게 멍게는 없냐고 묻자 종업원이 서비스로 줄 만큼 멍게가 넉넉지 않다며 사과했다.


“시장 인심도 다 옛날 말이네.”


주방으로 돌아가는 종업원의 뒤에 대고 엄마가 들으라는 듯 투덜거렸다. 나는 어차피 다 먹지도 못할 텐데 나온 거나 먹자고 엄마를 달랬다. 아버지는 여전히 TV 화면만 쳐다보고 있었다. 자연인이 땅에 묻어  놓은 김장독에서 묵은지를 꺼냈다. 양념도 별로 없이 노랗게 삭은 김치는 군내가 날 것처럼 보였는데, 아버지는 그런 걸 보면서도 입맛을 다셨다. 이따금 아버지가 엄마에게 김치를 썰어서 내놓지 말라는 말을 할 때가 있었다. 손으로 길게 찢어 먹어야 맛있다고. 하지만 엄마는 아버지의 말을 들어준 적이 없다. 그게 더 번거로운 일임에도 매번 김치를 가로로 썰어서 내왔다. 그러면서 내겐 반찬 타박하는 것만큼 꼴 보기 싫은 남편도 없다고, 민영에겐 절대 그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엄마가 생각하는 우리 부부의 위기가 고작 그 정도라니 괜히 우습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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