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2022.04.26
타인의 삶에서 반복적으로 조연을 맡다 보면 내 인생에서조차 주연이 될 수 없을 것만 같아진다. 마음대로 되는 게 딱히 없는 시기를 보내며 조금은 특별할 줄 알았던 나의 생애가 얼마나 초라하고 별 볼 일 없는지 깨달았다. 자기 비하나 연민보다는 서글픈 메타 인지에 가깝달까. 한동안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럴 수 있지'보다 '어쩔 수 없지'가 입에 붙어 간다. 이 와중에 제대로 담에 결려 답답한 맘을 달래고 몸을 다지기 위해 나섰다. 봄바람이 무척 세찬 날이었다. 숨이 시원하면서도 은은하게 따뜻했다. 역동적으로 파도치는 호수는 내 마음 같아 묘하게 쓸쓸함을 덜어 주었다. 참개구리의 울음소리도 같이 울어주는 것만 같아 고마웠다. 엇갈림 덕분에 맞닿은 많은 것들에서 위로를 구했다.
얼마 전엔 우연히 '겹벚꽃'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다른 벚나무보다 조금 늦게 피는 꽃이 가진 꽃말의 뜻풀이 중 하나는 "수줍음이 많아 이성의 인기는 그다지 끌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음속 깊숙한 곳에는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있군요"라고 한다...* 누군가에 대한 호감을 드러내면 상대방의 호의조차 상실하게 된다는 통계적인 일반화가 강해져 솔직하기는 점점 더 어렵고, 그럴 만한 마음도 잘 생기지 않는다. 그 어떤 감정도 살아감 그 자체보다 앞서진 않는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사랑은 포기할 수 없는 삶의 목표다. 연애는 과정보단 결과로 판별되지만, 사랑은 과정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이루지 못한 사랑도 사랑이기에 비록 평생토록 상대가 없는 조연일지라도 스스로 주인공임을 새긴다. 많은 벚꽃이 지고 난 뒤에야 흐드러지게 피는 겹벚꽃처럼 나의 진심도 부디 제때 만발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