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를 곁들인 사이드 프로젝트 기획법
사이드 프로젝트를 기획하다 보면 ‘조금 더’의 늪에 빠질 때가 있다. 조금 더 기획하고 조금 더 다듬으면 좋은 프로젝트가 될 것 같아서 계속 생각만 하고 있게 된다. 그러나 널리 알려진 것처럼 100% 완벽한 기획은 없다. 생각은 실행하지 않는 이상 허구일 뿐이다. 막상 생각을 실행해보면 완벽하다고 착각했던 기획의 틈이 나타난다. 따라서 완벽한 기획은 실행과 개선을 통해 만들어진다. 혁신적인 스타트업이 빠르고 유연하게 문제에 접근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기획을 몇 퍼센트 정도 완성하고 나서 실행하면 되는 걸까? 빠르고 유연하게 실행하라는 말이 부족한 기획을 실행하라는 의미는 아닐 텐데 말이다. 기획이 80% 정도 완성됐다면 20%를 더 채우기보다는 빠르게 실행하고 회고하면서 개선하는 것이 낫다.
그럼 사이드 프로젝트 기획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완성하는지, 내가 직접 진행했던 사이드 프로젝트의 사례를 통해 하나씩 살펴보자.
사이드 프로젝트를 기획하기 위해서는 먼저 어떤 프로젝트를 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막막할 수 있지만 이전 글 ‘사이드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하나요?’, ‘내 관심사는 어떻게 찾나요?’를 읽어보면서 하고 싶은 사이드 프로젝트에 대한 힌트를 도출해보자.
내가 진행했던 사이드 프로젝트 ‘비밀 교환일기 클럽’은 아래의 경험과 생각들이 엮어 만들어졌다.
우연히 두 여성이 주고받은 글을 엮은 책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를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중학생 때 단짝 친구와 교환일기를 썼던 추억이 떠올랐다.
나는 얼굴을 모르는 친구와 몇 년째 펜팔을 주고받고 있었는데, 서로 정체(?)를 모르기 때문에 가족이나 친구에게 말하지 못하는 고민을 나눌 수 있었다.
나를 탐색하면서 ‘글, 느슨한 연대’가 나의 키워드라는 것을 알았다.
이러한 경험과 생각을 통해 ‘익명으로 누군가와 글을 주고받으면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나눌 수 없는 솔직한 마음을 꺼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설을 도출해냈다. 이 가설을 바탕으로 비밀 교환일기 클럽을 만들게 되었다. 비밀 교환일기 클럽은 1:1 짝꿍으로 매칭된 여성들이 익명으로 교환일기를 주고받는 온라인 글쓰기 커뮤니티다. 이 커뮤니티를 통해 여성들의 느슨한 연대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이처럼 아이디어는 내 경험과 생각 사이에 숨어 있으며, 사소한 아이디어로도 나다운 사이드 프로젝트를 기획할 수 있다.
사이드 프로젝트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면 이제 구체적으로 기획할 차례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 어떤 요소들을 고려해야 할까? 기획이 막막하게 느껴진다면 아래의 기획 항목을 천천히 고민해보고 하나씩 채워보자. 하나씩 채워가다 보면 사이드 프로젝트의 기획이 완성되어 갈 것이다.
*목적/이유: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한 항목이다. 왜냐하면 이 목적과 이유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끝까지 진행하게 하는 동기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사이드 프로젝트는 시작하면서 바로 돈이나 커리어가 되어주지 않는다. 당장 이익이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동기가 명확해야 한다.
| 사례 노트 |
비밀 교환일기 클럽을 만든 목적은 ‘교환일기를 안전하게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서 단절된 코로나 시기에 느슨한 연대를 만들어주고 싶어.’였다.
*대상: 이 프로젝트가 필요한 사람이나 참여해야 하는 사람을 떠올려보자. 대상은 좁게 잡을수록 좋다. 대상이 넓으면 프로젝트의 방향성이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비밀 교환일기 클럽을 만들 때 ‘여성, 글쓰기, 느슨한 연대’를 키워드로 대상을 좁혔던 것도 명확한 방향성을 잡기 위해서였다.
| 사례 노트 |
비밀 교환일기 클럽의 대상은 ‘속마음을 편하게 나눌 익명의 누군가가 필요한 여성, 글을 쓰면서 마음을 정리하고 싶은 여성, 꾸준히 글을 쓰고 싶은 여성, 상호작용 있는 글쓰기를 원하는 여성’이었다.
*분위기: 프로젝트가 실행되었을 때 ‘이런 식으로 진행되면 좋겠다.’ 하는 분위기를 상상해보자. 떠오르는 색이나 이미지를 찾아도 좋고, 형용사나 동사로 설명해도 좋다. 브랜드를 만들 때 무드 보드를 만드는 것처럼 분위기(무드)를 잡아두면서 떠올린 생각들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방향키가 되어줄 것이다.
| 사례 노트 |
비밀 교환일기 클럽은 다음과 같은 분위기로 운영되길 바랐다. 속마음을 편하게 나누면서 매주 힐링 되는. 비밀 친구가 생겨 설레는. 교환일기가 지루한 일상의 작은 활력이 되어주는.
*운영 방식: 프로젝트마다 진행하는 방식이 다르겠지만 공통적으로 다음 항목들을 고려해야 한다. 기획한 내용을 바탕으로 실행도 해야 하므로 실현 가능성도 함께 고려하자.
- 운영 채널: 온라인, 오프라인, 온/오프라인 복합 등
| 사례 노트 |
비밀 교환일기 클럽은 익명을 원칙으로 했기 때문에 전면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또 다른 글쓰기 커뮤니티였던 쓰소클럽을 운영할 때에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한 형태로 진행했다. 쓰소클럽의 목적은 ‘글쓰기 메이트와 함께 꾸준히 글을 쓴다’였기 때문에 서로 얼굴을 익히고 친분을 쌓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 운영 규칙: 프로젝트의 작동 방식, 커뮤니티의 그라운드룰, 페널티, 요금 및 환불 정책 등
| 사례 노트 |
비밀 교환일기 클럽에서는 주 1회 마감으로 진행되었고, 1:1로 매칭된 짝꿍 2인이 번갈아 가며 마감을 진행했다. 안전한 커뮤니티 운영을 위해 그라운드룰을 설정했으며, 책임 있는 참여를 유도하고자 소정의 참여비를 책정했다.
*제공사항: 참여자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로, 참여자의 참여 이유이자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과 돈을 들인 참여자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를 참여자 입장에서 고민해보자.
| 사례 노트 |
비밀 교환일기 클럽은 참여자들에게 다음 항목을 제공하고자 했다.
- 속마음을 나눌 수 있는 안전한 글쓰기 커뮤니티 제공
- 글을 꾸준히 쓰도록 하는 1:1 글쓰기 짝꿍 매칭 서비스 제공
- 일기 형식을 제시하여 글쓰기에 대한 가벼운 마음가짐 제공
*결과물: 사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어떤 결과물이 나오게 될지 예상해보자. 결과물은 텀블벅을 통한 굿즈 제작, 책자 인쇄, 커뮤니티 모임 운영 경험, 서비스 개발, 시제품 테스트, 협업할 동료 찾기 등 유무형의 다양한 형태로 얻을 수 있으므로 자유롭게 떠올려보면 좋다.
| 사례 노트 |
비밀 교환일기 클럽을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커뮤니티 기획자라는 이력을 추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외부 커뮤니티와 콜라보한 경험, 참여자의 일기를 책자로 만드는 경험,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간 경험 등 무형의 결과물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차별점: 내가 기획한 프로젝트가 기존의 프로젝트와 차별화된 지점이 없다면 조금 비틀어서 차별점을 만들어보자. 사람들이 기존의 프로젝트가 아닌 내 프로젝트를 선택할 이유를 만들어주면 더욱 경쟁력 있을 것이다.
| 사례 노트 |
비밀 교환일기 클럽을 만들려고 했던 시기에 이미 글쓰기 커뮤니티는 넘쳐났다. 하지만 익명으로 진행되며 1:1 짝꿍을 매칭해주는 커뮤니티는 (내가 아는 한) 없었다. 이 점이 속마음을 편하게 나눌 사람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글쓰기를 꾸준히 하고 싶은 누군가에게 차별점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산: 프로젝트 수입의 종류로는 참여자에게 받는 프로젝트 참여비, 제품 판매금, 서비스 제공비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생소한 프로젝트이거나 참여율이 낮은 초기 프로젝트라면 무료로 오픈해서 운영자로서 경험을 쌓고 참여자에게 후기를 요청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어쩔 수 없이 비용이 든다. 실제로 돈이 안 나가는 프로젝트라 하더라도 그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자기 인건비를 생각하면 비용이 들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 어느 부분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예상되는 지출 내역을 뽑아서 정리해보자.
- 프로젝트 수입: 유료 서비스 제공, 프로젝트 참여, 제품 판매, 크라우드펀딩 모금액 등
- 프로젝트 비용: 내외부 인건비, 홍보, 실물 제작, 리워드 제공 등
| 사례 노트 |
비밀 교환일기 클럽은 평균 6주 정도 운영되었는데, 기수별로 참여비는 1만 원이었다. 최소한의 참여비를 책정하여 문턱을 낮추면서도 참여자에게 약간의 책임감을 부여하도록 설계했다. 그 외에 나머지는 모두 무료 온라인 툴을 활용해서 별도로 비용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외부 커뮤니티와 함께 진행한 4기는 일기를 모아 책자를 제작하여 제공하는 서비스가 있었기 때문에 참여비가 3만 5천만 원으로 조금 비싸게 책정되었다.
자, 이제 기획서를 채울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내가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시간에 일단 가볍게 시작해보자.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나열해도 좋다. 쓰다 보면 차차 정리되고 하나의 완성된 기획서가 만들어질 테니 말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설득할 수 있는 기획서를 만들어보자. 나 자신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누구도 설득하지 못할 것이다.
나만의 사이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하면서 내가 바라던 나로 살아갈 기회를 만들어보자.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 어느새 나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