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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후 Sep 01. 2021

03. 사이드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하나요?

평범한 사람이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방법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부캐의 시대이자 사이드 프로젝트 전성시대인 것 같다. N잡을 한다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남들도 다 한다고 하니 나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든다. 그런데 사이드 프로젝트, 그거 대체 어떻게 하는 걸까? 뚜렷하게 잘하는 것도 없고 스펙도 경력도 평범한 사람은 이런 시대에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물음에 이야기를 얹을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바로 ‘스펙도 경력도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전문대 졸업이라는 스펙, 사이드 프로젝트 하기에 애매한(?) 회계 경력. 그런 평범한 내가 사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회계에서 기획으로 커리어를 전환했다. 평범한 서른 중반의 여자가 어떻게 사이드 프로젝트로 커리어를 전환했는지는 이전 글(사이드 프로젝트로 커리어 전환을 한다고요?)에 자세히 기록해두었다.


그럼 평범한 사람의 대명사인 내가 어떻게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했는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사람의 인생은 멀리서 보면 직선인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구불구불하다. 그 여정에 수많은 고민과 시도가 담겨 있다. 나의 커리어 여정도 그랬다. 문예창작과에 들어가서 소설가가 되고 싶었는데 입시에 실패했다. 어린 마음에 ‘나는 글을 쓸 수 없는 사람’이라는 자기 정의를 내려버렸고, 그럼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회계를 전공했다. 당연한 수순으로 회계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회계는 답이 정해져 있는 영역이었다. 매주, 매월, 매 분기, 매년 하는 일이 정해져 있었고, 그 일이 반복되었다. 첫 회사에서 2년을 버티며 깨달았다. 답이 정해져 있고 반복되는 일은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커리어 방황이 시작된 건 그때부터였다.


일본어 공부를 한 김에 일본계 회사에서 일해보기도 하고, 아예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도 했다. 책을 좋아해서 출판 공공기관에 다니기도 했고, 일본어 번역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회사를 위해 하는 일은 ‘일에 대한 욕구’를 온전히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사람을 돕는 일을 해보고 싶어졌다.


사회문제를 다루는 기업을 검색하다가 한 스타트업에서 회계 직무에 사람을 구해서 지원했다. 그곳에서 3년 8개월 동안 일을 하게 되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회계 업무뿐만 아니라 관심사를 반영하여 교정 교열, 출판, 콘텐츠 기획까지 하게 되었다. 스타트업이어서 업무 조율이 유연했고 덕분에 다양한 업무를 경험해볼 수 있었다. 스타트업이라는 역동적인 세계에서 여러 일을 경험하면서 더 넓은 세계가 궁금해졌다. 그렇게 일하는 밀레니얼 여성 커뮤니티 ‘빌라선샤인’에 가입하게 되었다.






빌라선샤인에서 나는 그동안 쌓여왔던 커리어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려는  온갖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대표 프로그램인 커리어 기획, 콘텐츠 기획을 포함해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덕분에 빌라선샤인 시즌1 열정왕으로 뽑히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더불어 빌라선샤인 시즌1 마지막 인터뷰이가 되었다.


빌라선샤인에서는 격주로 멤버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뉴스레터를 발송했다. 인터뷰에서 ‘소설가 지망생인 회계 전공자이고, 머지않아 콘텐츠 기획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고 나를 소개했다. 이 인터뷰를 보고 한 멤버가 ‘자신도 꿈이 소설가였다’고 하자, 판 깔기의 대가인 빌라선샤인의 대표 홍진아 님이 ‘그럼 같이 글을 써보시면 되겠다’고 슬쩍 등을 떠밀었다.


내향성:외향성 비율이 9:1인 나는 평소였다면 그 제안을 크게 담아두지 않고 넘겼을 것이다. 그러나 빌라선샤인을 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고, 이 사람들과 함께 글을 쓴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였다. 누군가 글쓰기 모임을 만들어주기를 기다리다가 결국 미끼를 덥썩 물고 직접 모임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그렇게 빌라선샤인에서 글쓰기 모임인 ‘쓰소클럽’을 운영했다. 쓰소클럽 1기는 스타트업에서 일하며 배운 대로 ‘린하게’ 그러니까 최소한의 요건만 갖추고 짧고 빠르게 시도해보았다. 1기 회고 내용을 반영해서 2기를 열었고, 3기에는 ‘교환일기’라는 형식을 반영해 새롭게 기획하게 되었다. 나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앉아서 글로 풀어내고, 누군가가 정성스러운 답변을 보내주는 일련의 과정은 생각보다 큰 만족감을 주었다.


그러나 생업에 치여 이후로 모임 운영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러다가 퇴사를 했고, 쓰소클럽의 연장선인 ‘비밀 교환일기 클럽’을 기획하게 되었다. 단순히 퇴사를 해서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가능한 건 아니었다. 네 번째 퇴사를 하면서 다졌던 각오를 지키기로 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백수 되기’가 내가 다진 각오였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백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신나게 놀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될까? 회사에 묶여서 가지 못했던 여행을 가면 될까? 물론 그렇게 살 수 있다면 무척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행복은 잘 먹고 잘 노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것'. 내가 정의하는 행복을 만들어가고 싶었다.


먼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탐색했다. 수첩에 관심 있는 키워드를 나열하고 비슷한 것끼리 묶었다. 글, 연결, 외로움, 위로, 도움, 기획, 프로젝트 관리 같은 키워드가 도출되었다. 그리고 나서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도 나열해보았다. 글, 연대감, 외로움, 프로젝트 운영, 작당 모의 같은 키워드가 중복되어 나왔다.


관심사, 좋아하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생각나는 대로 작성했다.


이 과정에서 나라는 사람의 키워드를 도출할 수 있었다. ‘글, 외로움, 느슨한 연대’라는 키워드였다. 나에게서 도출된 키워드(내부)와 쓰소클럽을 운영하면서 받았던 긍정적인 피드백(외부)이 연결되자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 아이디어를 시작으로 하여 익명으로 교환일기를 주고받는 여성 글쓰기 커뮤니티 '비밀 교환일기 클럽'을 기획하게 되었다.






쓰소클럽은 무료로 운영했지만, 비밀 교환일기 클럽은 유료로 운영했다. 비록 소액이었지만 사이드 프로젝트의 첫 수입이 발생되었다. '나의 관심사와 재능이 타인의 필요와 만나는 지점에서 이익이 발생한다'는 말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2021년 8월 현재 비밀 교환일기 클럽 4기가 진행되고 있다. 나의 아이디어와 가설에 기꺼이 시간과 돈을 내어준 사람들 덕분에 여기까지 이어왔다. 그리하여 커뮤니티 기획과 운영을 경험했고, '커뮤니티 기획자'라는 이력을 당당히 추가할 수 있었다.


세상만사가 대체로 그렇듯이 일은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아주 사소해 보이는 작은 스위치를 켜보면 작은 불빛이 켜지고 조금 앞에 있는 다른 스위치가 보인다. 그 스위치를 켜면, 또 다른 스위치가 보이고 그 스위치를 켜기 위해 나아가다 보면 이전의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세계가 그 앞에 펼쳐져 있다.


내 삶을 바꾼 사이드 프로젝트는 인터뷰에서 시작되었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내가 뭐라고...'하면서 인터뷰를 거절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삶을 바꾸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작은 스위치도 기꺼이 켜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뭐라고...'라는 자기 검열 따위는 저 멀리 던져버리고 말이다.






사이드 프로젝트 시작하는 방법 요약  

1.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키워드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맥락으로 살아왔는지를 파악하자.

2.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어떤 영역에서 겹치는지 살펴보자.

3. 기획은 80% 쯤 되었다면 일단 실행하자. 빨리 실행하고 고치는 것이 120%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보다 낫다.

4. 프로젝트를 회고하고 참여자의 피드백을 받아 다음에 반영하자. 더 나은 기획으로 나아갈 수 있다.





다음 편 예고: 사이드 프로젝트는 나의 관심사에서 시작하는 거라는데, 내 관심사가 뭔지 모르겠는데요?


이전 02화 02. 사이드 프로젝트로 커리어 전환이 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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