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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정 Feb 09. 2021

라이프스토리 4_입춘 카푸치노

봄에는 시나몬 파우더 듬뿍

공원 소나무가 윤기 있게 빛나는 오후다. 엊그제 입춘을 지나고, 계절의 순항이 느껴지는 흐름이다. 공원 인근에 자주 가는 카페에 원두를 사러 가야지.. 하는 핑계부터 우선 마련하고, 노트북에 읽던 책까지 주섬주섬 챙겨 집 밖을 나섰다. 1인 가구인 나는, 아직도 여전히, 집 밖을 나서는 일에 늘 목적과 이유가 필요하다. 보고할 이도, 허락받을 것도 없는데 바람처럼 들락이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자유하는 게 이토록 어렵다니, 올봄에는 더 자유하자 싶다.  



한결 태양빛이 느긋해졌다. 중간 계절들이 가지는 푸근함이다. 누군가들은 봄이 아졌 하지만, 내가 보기엔 달라짐 없이 겨울과 여름의 틈새에서 묵묵히  역할을 하고 있다. 봄은 길이보다 깊이로  일이다.  빛과 바람의 깊이를 온몸과 마음을 열어 받아들이는 것은, 사람보다 땅이 먼저다. 땅은 부지런히 변화를 수용하고 숙명에 따르며 봄을 땅의 언어로 구현해 낸다. 땅의 곧디 곧은 사랑법이다. 나는 그런 땅이 좋다.

 

거리두기 단계가 조금 풀리면서, 연구실 근처 단골 카페에도 봄이 왔다. 주인장은 매장 윈도 바깥에 큰 향나무 화분을 새로 놓았다. 그것만 보아도 이 계절을 맞는 마음이 어떤지 가늠이 된다. 한결같은 신선한 커피와 늘 같은 무드의 재즈 혹은 클래식 음반, 정성스레 음료를 내미는 손길... 누구에게든 기꺼이 배경이 되겠다는 마음이지 않을까.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픈데, 일하다 보면 순간을 놓치고 거칠어진다. 마음 밭은 더 부지런하게 갈아주어야 하는데.. 끙하고, 한숨이 나오네.


오늘은 카푸치노 위에 뿌려진 시나몬 파우더  풍미가 더 짙게 느껴진다. 입춘 지나고 달라진 오후 볕에 대한 공감인 건가. 센스쟁이, 주인장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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