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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정 Nov 10. 2020

라이프스토리 5_유목민입니까? 정착민입니까?

나의 쓸모, 1화

종속과목강문계로 사람을 분류해 보면, ‘이게 과연 인간인가’ 싶을 정도로 신선하다.


사람과 > 영장목 > 포유강 > 척삭동물문 > 동물계 > 진핵생물역   


그만큼 ‘분류’라는 것은 구분의 의미를 넘어, 차별화되는 속성들을 새롭게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된다. 나는 좀 일찍부터 ‘내 존재의 다름’을 늘 생각했던 거 같다. 사형제 사이에서 태어나면서부터 그건 내게 화두였다. 셋째 딸, 키 큰 애, 농악부, 팝송반 부장, 신문방송학과, 구성작가, 에디터, 카피라이터, AE, 기획자, 대표 등등 세상에 이래저래 분류되면서, 나의 다름이 만들어져 온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새로운 분류를 묻는 질문을 던져 보았다.



“넌, 유목민이니? 정착민이니?”

삼십 대 초반, 잠깐 카피라이터 명함을 가졌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명함 첫머리에 nomadic HONG이라고 붙였던 기억이 있다. 노매드라는 단어가 좀 낯설었던 2000년 초반이라, 만나는 사람들마다 의미를 물어주면 그걸로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유목민처럼, 앞으로 늘 새로운 경험을 하며 살아가고 싶어요.”


그 이름값을 치른 나의 30대는 정말 많은 경험치가 쌓인 시기였다. 내 워크라이프에서 최상의 가치는 ‘경험 우선주의’였다. 그래서 얻은 건 ‘겁 없음, 미련 없음, 온갖 프로젝트 실적’이다. 좀 더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동물적 생존력, 생태계에 대한 넓은 이해, 다른 부족과 교류 방법, 오아시스의 공유 방법’ 등 경험자만이 갖는 생존의 지혜가 남았다.



그래서 나는 명백하게 유목민계다. MBTI 같은 세세한 구분에 비하면 다소 거친감이 있지만, 주변의 지인들을 이 분류로 나눠보면 흥미로운 점들을 보게 된다. 그들이 왜 저렇게 일을 하는지, 저 문제를 왜 저렇게 붙잡고 있는지… 알고 보면, 그들은 모두 타고난 종족이 따로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어느 쪽인지 무척 궁금하다.



“당신은 유목민입니까? 정착민입니까?”


내가 정의 내려본 이 둘의 차이와 장단점은 이렇다. 유목민은 다음 목초지를 찾는 타고난 감각을 가지고 있다. 주변의 작은 환경의 징후들을 읽어내며 삶을 이어왔기에 주의력이 개발되어 있다. 다양한 난관을 헤쳐가는 삶의 기술, 폭넓은 친구관계를 통해 삶의 경험 스펙을 넓히는 기술도 뛰어나다. 그래서 이들은 확장적 지혜를 가진다. 단점이라면 진득함이나 책임감이 다소 부족할 수 있다.

정착민은 삶의 탄탄한 기반을 만들고 안착하는 사람들이기에, 온화하고 안정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한 자리에서 오래 터전을 닦으며 삶의 깊이를 더하는 장점이 있다. 꾸준히 갈고닦아 만들어 가는 일을 잘하며,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는 사람들이 많다. 완성도를 높여가 완벽한 결과물로 다듬어가는 기술을 가진다. 이들은 기다림이나 인내와 같은 수렴하는 지혜가 있다. 단점이라면 유연함이 부족하고 삶의 토대가 무너졌을 때, 인생에서 큰 혼란을 겪게 된다.



유목민과 정착민은 생활방식과 일하는 방식, 친구관계, 가치관 등이 확연히 다르다. 누군가는 유목민처럼 인생을 살고 있고, 또 누군가는 정착민의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산다. 그런 너, 나, 우리들이 이 비즈니스 필드에서 만나게 되는 거다.


앞으로 쓸모 매거진에서 내가 써나갈 '나의 쓸모'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의 기본값들을 알아가는 과정이 됐으면 한다. 그게 왜 중요하냐면, 우리의 워크라이프에서 ‘저 사람은 이래, 좀 달라.’라는 생각이 늘 우리의 쓸모를 이어지게 하니까.

 


나의 쓸모, 홍유정

서울과 제주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커뮤니케이션 기획자. 15년간 서울에서 뉴미디어PR과 커뮤니케이션 컨설팅을, 최근 4년간은 제주에서 문화기획 활동들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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