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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정 Feb 05. 2021

슬픔공부 5_슬픔의 메뉴들

아무렇지 않은 내가 되기까지.

슬픔의 감정이 맺힌 이미지를 하나 꼽으라고 하면, 높은 파도가 이는 바다다. 손 쓸 수 없는 몰아침과 함께 시원하게 부서지고 다시 바다의 품으로 돌아가는 모습.


고교시절부터 대학 때까지 살았던 집은 여객선이 정박하는 항구였다. 바닷가에 인접한 낮은 산 위로 15층짜리 공공주택들이 지어졌는데, 그 느낌이 마치, 글로 표현하자면, 산 너머 산..이라고 할까. 고된 소박한 삶들이 많았던 고층 아파트, 우리 집은 그 15층의 꼭대기층이었다.


어떠한 상태에 대한 인식은 상대적인 기준일 때, 더 깊어진다. 비교 값이 있을 때, 더 집요하게 파고드는 게 감정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우리 집은 해마다 가세가 기운다.. 는 것이 느껴지는 과정을 지나고 있었다. 유년시절 풍요롭게 살았던 우리 형제들에게는 특히 비교 값의 감정이 컸다. 그때는 깊게 생각지 못했지만, 당시의 현실을 감내해야 했던 부모님들은 얼마나 힘드셨을까.. 가늠할 수 없는 절망적인 마음이셨으리라.


아버지는 해외 출장이 잦았던 직업을 갖고 계셨다. 외국에서도 한번 쓰러지셔서 입국한 적이 있을 정도로 몇 번의 좋지 않은 상황들을 지난 뒤, 아예 누워서 지내시는 시간이 여러 해 쌓이게 되었다. 항상 말끔하고 단정한 모습에 좋은 향기가 나던 아빠의 품, 그리고 손끝에서는 은은한 시가의 향이 나던 유럽의 멋쟁이 신사 같았던 내 아버지..


그러던 그가 소독약 냄새가 진한 병원복에 핏 멍울진 바늘 자국들이 남은 야윈 손등을 어린 우리에게 맡기고 늘 누워계셨다. 그때의 내 아버지, 얼마나 가슴이 아리셨을까. 수없이 인생을 한탄하다, 안타까워하다, 분노하다, 부정하다가, 체념하셨을 것이다. 아니 그 이상의 고통이셨을 거다. 어린 나는 그런 아버지의 심경들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누워만 계신 아버지를 미워한 적도 있다. 이제 그만 우리 가족을 놓아주셨으면 했던 적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항구가 보이던 바닷가 15층 집. 인생의 큰 고난의 절정에 어울리는 높이였다. 베란다에서 보이던 바다는 늘 거센 바람과 함께 방파제에 하얀 포말로 부서지던 모습, 짙다 못해 회색빛이던 깊은 슬픔의 풍경들. 그리 보였던 건 이입하고 싶었던 많은 슬픔들이 있었기 때문에..


십 대였던 나의 에고들은

안락한 가정을 상실해 느낀 슬픔을 극대화했고,

나아짐이 없는 아버지의

세상과의 이별의 수순들을 지켜보며 느낀 슬픔,

어머니의 끝없는 고단함과

버티는 마음을 보며 느낀 슬픔,

등대 없는 폭풍 치는 바다에 뜬

쪽배 같았던 우리 형제들의 마음을 보는 슬픔,

아버지를 대하던 주변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지는 과정에서 보았던 슬픔


슬픔의 계단은 늘 내리막길이라, 가속이 더 붙기 시작했다. 내 마음도 변해가는 것을 보았다. 아픈 아버지에 대한 무거움이 모든 추억을 뒤덮어 갈 때쯤, 살아가야 하는 날들의 무게가 어린 내게도 막막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때부터 '아무렇지 않은' 내가 되었던 것 같다. 어렵게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 찬란한 계절들이 내린 캠퍼스를 누비는 대학 신입생이 되었는데, 내게는 늘 거칠고 짙은 바다가 마음 한 켠에 있었다. 그래서 스무살이 된 나는, 슬픔을 외면하는 슬픔까지 배우게 되었다.


바다가  보이던 15층 집의 클라이맥스는 늦가을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그날의 찰나들이 영화의 장면들처럼 남아있다. 나는 골목을 뛰어 내려갔고, 그 순간에도 많은 생각들을 했고, 떨리는 내 손끝이 보였고, 온몸에서 피가 다 빠져나가는 듯 창백한 얼굴로 차분하게 그 상황을 맞았다. 한 생명이, 방파제에 부서지는 포말처럼 존재감을 잃는 과정들. 오랜 병환을 끝낸 아버지의 죽음은, 내 슬픔은, 그렇게 바다의 풍경에 얽혀있게 되었다.

    

이번 글을 두고,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아는 슬픔의 스펙트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자신이 없었다. 아버지 작고 후 내 삶의 여정들을 더해가며, 여러 일들에서 나는 '아무렇지 않은' 감정을 더 훈련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야 세련된 태도를 가진 사회인이 되는 줄 알았던 거 같다. 나의 슬픔은 그렇게 박제되었다.


슬픔을 안다는 것은
상실을 안다는 것이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는 것
어떤 인생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알게 된다.
또한 어떤 것과 이별하고
어떤 곳으로 이동하며
어떤 희생을 할 것인가를 알게 된다.

명상을 몇 해간 해오면서, 묶여있던 내 감정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리고 배우고, 정리했던 생각들이 있었다. 슬픔을 아는 것이 어떤 의미이며, 이 감정은 왜 그렇게 특별히 보살펴야 하는 것인지. 그래서 이 <슬픔공부>의 글들도 쓰게 된 것이다. 목적과 목표를 두고 기능적인 삶을 살아온 20대와 30대, 그 이십 년의 시간이 내게 감정적으로 풍요로운 정서를 남기지 못했던 이유도 이제 조금은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도 안다. 거친 바다의 풍경과 얽힌 15층의 슬픔들이, 나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있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슬픔은 어떤 메뉴들로 한 상을 차려내는가. 혹 단출한 한 그릇의 음식으로 나온다면, 한 가지 한 가지 메뉴들을 추가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다채롭게 맛보고 느끼는 그 순간들이, 풍요로운 감정적 포만감으로 용해될 어느 날이 꼭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슬픔공부5.

content : 씨리얼 <무연고사망과 공영장례 관련하여>

comment : 가장 쓸쓸한 마지막을 묵묵히 목도하는 일.  


[ 슬픔공부 글 목록]

1. 안 우는 어른이 되다.

2. 인상적인 눈물들

3. 슬픔이와의 대화

4. 정서 문맹에 대하여

5. 슬픔의 메뉴들

6. 슬픔을 표현할 때

7. 슬픔을 위로하는 법

8. 그래서, 무엇이 슬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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