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유정 Dec 16. 2020

슬픔공부 4_정서 문맹에 대하여

있는 그대로(तथाता, tathātā).

(사족)

이번 글이 늦었습니다. 많이요.

요즘 어떠신가요? 저는 12월을 자체 동안거(冬安居)로 지내고 있어서인지, 마음의 시계가 좀 느슨해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루틴을 만들어 보려고 하는데, 뭐... 격변기네요. 또 익지 못한 생각들을 익히느라 하루는 늘 짧은 거 같고요. 그러다 조금 익은 생각들이 있어서 이 글을 써봅니다. 그런데 말이죠. 다시 브런치 지면을 만나니, 뭔가 마음이 편안해지는데. 왜일까요? 여기가 극락이었던 건가요?



일반적으로 문자를 읽거나 쓸 줄 모르는 상태를 문맹이라고 한다. 아주 옛날에는 배움이 덜함을 가엾이 여겼고, 산업사회 들어서는 무식이 죄라고 비하하기도, 모르면 손해라고 문맹자를 탓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단어가 우리의 감정 정서에 붙으면, 더 비참한 단어가 된다.


정서 문맹(emotional illiteracy). 사전적으로 자신의 정서를 표현하거나 통제할 능력이 없고 타인의 생각이나 느낌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줄 모르는 사람을 뜻한다. 감정적인 문맹은 기쁨과 사랑과 같은 플러스 감정보다 슬픔과 분노, 실망과 같은 마이너스 심리들에 대해서 특히나 정서적 도구가 없다. 여기서 정서적 도구란, 감정들을 감지해서 표출하거나 공감하는 방식들을 말한다. 따라서 정서 문맹자들은 삶이 기능적으로는 잘 돌아간다 하더라도, 감정의 경직으로 어딘가 삐걱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관계에서 갈등을 느끼거나, 무감각한 편이라 인생에서 소중한 즐거움을 자주 놓치며 산다거나, 나아가 삶이 무감각해서 허무주의가 될 수 있다.



당신은 상대방의 기분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커뮤니케이션을 오래 공부했고 업으로까지 해오며, 설득 커뮤니케이션의 기초 중의 기초인 라스웰의 SMCRE 이론을 공기처럼 호흡해온 내게, 청천벽력 같은 얘기였다. 다시 되새겨도 '아놔...' 하는 마음이 든다. 그런데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에 와서도 반박을 못하겠다. 태생적 기질도 군인 마인드라 진취적이고 플래닝 하고 성취해내는 일에는 탁월했다. 한창 비딩 전장에 던져졌던 서른 중후반에는 그런 기질로 승률 좋은 에이전시 대표가 되어 울고 웃으며 찬란한 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시간에 여유가 생기던 서른 후반 들어서부터는 일이 채우지 못하는 '가슴'이 느껴졌다. 허전했고, 억지로 채우려 했던 감정적 관계들은 SMCRE 이론이 통하지 않았다. 기능하지 못하는 나의 기질들, 기능하지 못하고 있는 나의 정서들을 보게 되었다.


불교 경전에 '타타타(तथाता, tathātā)'라는 산스크리트어가 자주 반복된다. '있는 그대로'라는 뜻의 타타타는 한자어로 여여(如如), 진여(眞如), 여실(如實)이라고도 한다. 그 뜻들을 종합해서 보면, 선입견 없이 상태를 있는 그대로 보고 느낀다는 의미다. 내 마음에서 스며들며 물드는 감정들, 때론 솟구쳐 오르는 이 느낌들을 그대로 읽어낸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다 큰 어른이 되어서야 알아차리게 되다니... 후회되는 삶은 없었으나 그 시간들을 진여의 상태로 다 음미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토록 억울할 줄이야. 내 마음이 이럴진대, 그 순간마다 함께 했던 그 누군가들은 어땠을까. 점잖게 '넌 내 마음을 잘 모르는 거 같아.' 정도로만 얘기했던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마저 든다. 씁쓸했을 그 마음들이 어땠을지...


그러니 우리가 온전히 산다는 것은 매 순간 깨어있으며, 미묘한 변화들까지 있는 그대로 느끼는 일이지 않나 한다. 그렇게 수용의 마음이 되는 것을 일체개고(一切皆苦 · Dukkha)의 상태라 해도 좋겠다. 즉 모든 고통을 알고, 더 잘 느끼게 되는 일. 배고픔, 외로움, 아픔 등등 나와 타인의 고통을 감지하게 되는 감수성, 즉 고통의 감수성이 커지는 일. 그것이 고난이 아니라 정서 문맹 상태를 벗어나 진짜 사랑을 알게 되는 길임을 깨닫는 것.  


늘 태평하게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 속을 두드려 보면,
어디에선가 슬픈 소리가 난다.


일본 근대문학의 상징적인 작가인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한 구절이다. 고양이의 눈을 통해 본 인간의 삶은 이상했다. 왜 인간은 고양이처럼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울 때는 죽어라 울지 못하는 걸까.. 이 소설이 쓰인 100년 전에도 훨씬 그 전에도 인류가 문자를 만들고 문맹을 벗어나면서부터 진짜 SMCRE는 못해왔던 게 아닐까.



슬픔공부4.

content : ODG <입양 가족의 과거 사진 같이 보기>

comment :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 사랑으로 사는 일.


[ 슬픔공부 글 목록]

1. 안 우는 어른이 되다.

2. 인상적인 눈물들

3. 슬픔이와의 대화

4. 정서 문맹에 대하여

5. 슬픔의 메뉴들

6. 슬픔을 표현할 때

7. 슬픔을 위로하는 법

8. 그래서, 무엇이 슬픔인가

이전 06화 라이프스토리 3_두고두고 기억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