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쓸모, 2화
기호와 상징이 주는 힘을 알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배우고 익히게 되는 아주 기본적인 시그널도 있고 사회화를 통해 체득하는 고차원의 상징들도 있다. 살면서 고차원의 상징을 많이 가지게 될수록 소위 능력치라는 것이 탁월해진다. 고차원의 상징을 이해할수록 읽어내는 의미가 다르고, 본인도 고차원의 상징을 쓸 수 있게 되면 커뮤니케이션 레벨이 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소통은 일종의 진동과 파장을 통해 하는 일이기에, 상징의 레벨이 높을수록 높은 진동과 파장을 내는 고차원계와 이어지게 된다. 이건 물리학의 기본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렇게 새로운 수준의 사람과 세계가 자연스럽게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개똥철학 같은 거기도 하지만, 청소년기까지를 뺀다 하더라도 근 30년의 레슨런이 있었으니 꽤 믿을만한 생애 실험의 결과라 하겠다. 또한 평생 영업 없이 일해온 나의 비기(秘記)다.
새로운 세계를 원한다면, 내가 새로워지자.
나의 새로움은, 기존의 것들과는 다른
나의 새로운 상징들을 가지게 되는 일이다.
이번 글을 이렇게 시작한 이유는, 우리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열어주는 '첫 시그널'에 대해 언급하고 싶어서다. 처음이라는 것은 참 특별한 과정이다. 처음의 순간들마다 열렸던 '오감'의 경험들을 떠올려보자. 그 당시 감각들의 일부는 여전히 내게 남아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더 나아가 삶의 깊은 철학으로 남은 것들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처음을 이끌어주는 계기들 특히 사람 존재들에 대해 남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아래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나는 그들을 '인생의 첫 존재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내가 어떻게 나를 만들어 왔는지, 나의 쓸모를 찾아왔는지 정리해 보았다.
인생의 첫 존재, 가족
명상을 하면서 생애 첫 기억을 떠올려 본 일이 있다. 나의 첫 기억은 아기인 내가 누워있고, 큰 언니와 작은 언니가 나를 들여다보며 부엌에 계신 엄마에게 '엄마, 우리 아기 이쁘다.' 하는 장면이었다. 눈물이 스미는 따뜻한 풍경이었고 그때가 아가인 내가 오감으로 받아들인 첫 가족의 이미지였던 걸 알게 됐다. 우리 가족의 고난은 나의 초년에 다 있었다 해도 좋을 만큼, 어린 시절에 아버지의 급작스런 병환으로 가세가 기울고 오랜 병원생활로 힘든 시절을 지냈다. 그럼에도 형제자매들이 지금의 평범한 성인으로 자랄 수 있었던 데는 우리에게 '따뜻한 첫 정서'가 뿌리 깊게 내려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따뜻한 연대감이 있어야, 균형있는 나의 아이덴티티가 안정적으로 구축된다. 구성원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이 있고 그것에서 나의 정체성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조직이나 만남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따뜻한 연대감'이라고 본다. 그것 없이 만들어진 각자의 쓸모는 결국 차가운 기능들이고 열정을 낼 수 없는 것이 된다.
인생의 첫 존재, 친구
단어의 정의를 내려보는 일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 의미를 되새기며 지금 내 생각의 기준들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친구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자. 지금의 나에게 친구의 정의는, '도반'과 같은 의미이다. 도반은 도로써 사귄 친구라는 불교 용어인데, 도로써 사귄다는 것은 깨달음을 목적으로 수행을 같이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럼 대체 깨달음이란 무엇일까. 나의 존재의 의미를 깊이 있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본다. 즉, 나의 쓸모를 밝혀나가는 일이 곧 깨달음의 여정인 것이다.
좋은 도반을 만났다는 것은
공부의 모든 것을 이룬 것과 같다.
붓다의 말씀에 따르면, 평생을 두고 공부하며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에게 도반은 더없이 소중하다. 단순히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고통을 나누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깨달음을 위해 함께 실천과 애씀을 같이 하는 사람인 것이다. 나는 그런 도반과 같은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늘 애썼던 것 같다. 물론 많은 좋은 벗들이 있다. 하지만 추사에게 초의선사가 있듯,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며 서로 일깨워주기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서로를 명경지수 삼는 그런 친구는 아직 못 만난 것 같다. 최근까지도 그런 친구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평생 노력해갈 생각이다. 그런 친구는 내 인생의 첫 존재이자, 둘이 필요 없을 사람일 거다. 누구일지 모를 그를 생각하면, 나는 벌써 좀 설렌다. 왜냐... 그를 통해 완성된 나의 쓸모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인생의 첫 존재, 연인
첫 존재의 경험이 '마음의 밭'을 갈아준다고 치자면, 가장 깊고 넓게 가랑을 내는 것이 바로 연인이다.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아낌없이 내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는 것은 신이 하는 일처럼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언제 나 자신 이상으로 사랑하는 대상을 둘 수 있을까. 연인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육체를 벗어나 다른 존재에 완벽히 이입하게 되고 그의 세계를 오롯이 안을 수 있게 된다. 들어보지 못한 음악, 읽지 않았던 책,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들을 만난다. 말끔한 전형적인 도시남자가 양손으로 김치를 쭉쭉 찢어주던 모습을 보며 무너진 내 안의 벽, 새로운 세계는 그렇게 열렸었다. 낯선 외국이었던 그곳에 일상을 만들게 되기까지 나에게 없었던 감각들이 살아나던 일- 그래서 우리는 나를 혁명적으로 바꾸는 방법인 '사랑'에 열렬할 수밖에 없다. 나의 새로운 정의를 찾고 싶다면, 사랑을 하자.
인생의 첫 존재, 스승
KBS 라디오 작가로 일했던 시절, 인생 스승을 만났다. 폭발하는 에너지를 품고 라디오국 지하 음반실을 헤매던 그때였다. 1년 정도를 함께 일했던 라디오국 부장 PD님이셨는데, 내가 라디오계를 떠날 때 짧은 편지와 함께 도종환 시인의 시구절을 써주셨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삼십 대에는 그 구절을 간혹 떠올리며, '흔들려도 되는구나' 했었다. 마흔 넘어서 알게 된 것은 '흔들어주는 바람이 필요하구나'하는 것이다. 스승은 그런 존재인 것 같다. 나를 송두리째 흔들어주어, 바람을 타게 하는, 내가 꽃으로 피게 하는, 곧게 줄기를 세우게 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나의 정체성이 계절마다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다. (소상윤PD : 1987년 KBS PD 입사 / '가위바위보', '이본의 볼륨을 높여요', '이소라의 가요광장', '경제가 보인다' 등을 연출. 저서 <HOT 즐거운 반항>)
서울과 제주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커뮤니케이션 기획자. 15년간 서울에서 뉴미디어 PR과 커뮤니케이션 컨설팅을, 최근 4년간은 제주에서 문화기획 활동들을 해왔다.